만능 에너지의 그 이름,
'바이오'
해양, 태양, 풍력 등 자연 현상을 활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면 일반적으로 열이나 전기로 전환되어 활용되는데요, 앞서 다루었던 해양이나 태양만 보더라도 대부분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전기는 우리 삶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계 제품도 화석연료에서 전기를 활용하는 제품으로 변화되는 추세이지요. 특히, 전기 자동차가 화석연료에서 전기 에너지로 전환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하여 아직 화석연료가 필요한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나 선박, 그리고 대형 트럭 등 엄청난 무게를 감당해내야 하는 기계는 전기 에너지보다는 화석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무거운 무게를 버티기 위해서는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야 하는데 배터리 용량이 늘어날수록 배터리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기 전기 트럭 모델은 짐을 싣는 공간보다 배터리를 싣는 공간이 더 컸을 정도이니까요.
에너지뿐만 아니라 화석연료는 제품을 생산해내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생활 제품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합성수지, 즉 플라스틱이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해양, 태양, 풍력 등 자연에서 에너지를 고효율로 얻어낼 수 있을지라도 아직은 완벽히 화석연료를 대체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이와 같은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분야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하는 ‘바이오 리파이너리’입니다. 바이오 리파이너리(Bio-refinery)는 단어 그 자체로 석유화학산업을 대체하는 의미로 불리고 있는데요, 바이오 에너지로 시작해서 이제는 석유로 만들어진 화학 제품들도 대체 가능해지도록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이오 리파이너리가 대체 무엇이길래 에너지뿐 아니라 화학 제품까지 대체 가능할까요?
바이오 리파이너리는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하여 화학 제품과 바이오 연료 등을 생산해내는 기술입니다. 이전에는 석유 정제(oil refinery)를 통하여 휘발유, 경유, 그리고 합성수지 등 수많은 화학 제품을 만들어 냈는데요, 이것을 바이오매스 자원을 활용하여 전면 대체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바이오 리파이너리 산업에서 바이오매스는 석유화학산업의 석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에너지부터 살펴볼까요?
바이오 에너지는 크게 세 가지 에너지로, 바이오가스, 바이오 에탄올, 바이오 디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중요한 이 에너지들은 각자의 특징에 맞게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요,
첫 번째, 바이오가스입니다. 바이오가스는 농업 산업 유기 폐기물이 혐기성 소화를 거쳐 만들어지는 메탄, 이산화탄소, 수소 등을 말합니다. 여기서 혐기성 소화는 유기물이 무산소 상태에서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유기성 물질이라면 혐기성 소화를 활용하여 바이오가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하수의 슬러지나 축산 분뇨와 같이 처리하기 쉽지 않은 많은 유기물이 바이오가스의 원료인 바이오매스로 활용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혼합물 가스를 이용하여 발전기를 돌려 전력을 생산하거나 열 또는 연료로 활용하기 위해 열병합 발전소에서 활용될 수도 있지요. 실제로 친환경 도시로 잘 알려진 스웨덴의 함마르비시에서는 난방과 전력을 하수처리장과 쓰레기 소각장에서 배출된 열과 가스로 충당하고 있는데요, 독일의 펠트하임 마을 또한 바이오가스 공장을 활용하여 난방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두 번째, 바이오 에탄올은 식물의 탄수화물을 미생물과 효소를 활용하여 에탄올로 발효시키는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연료입니다. 휘발유와 혼합하여 차량의 연료 첨가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석연료와 비교하여 환경 오염 물질 배출량 즉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등의 배출량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지요. 또한, 식물로 연료를 얻어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재생 가능한 에너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이오 디젤은 콩기름, 폐 식물 기름 등 식물성 기름이나 소, 돼지 등의 동물성 지방을 원료로 하여 만들어 낸 것입니다. 메탄올 용매를 활용하여 지방과 당분을 얻어내는데요, 얻어낸 지방과 당분을 다시 분리하고 분리된 지방을 활용하여 바이오 디젤을 만들어 냅니다. 바이오 디젤은 바이오 에탄올과 마찬가지로 디젤자동차의 경유에 혼합하여 많이 사용됩니다. 자동차 연료뿐 아니라 난방 연료용으로 개발되어 있고, 다른 기계 장치의 연료와 혼합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바이오 에너지의 특징들은 다른 재생 에너지가 열과 전기로만 전환되어 사용되는 것과 달리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 없이 저장 가능하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에너지로 활용되는 자원이 아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대체품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바이오 에너지에서 바이오 리파이너리로 의미가 확장된 것도 바이오 플라스틱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대신 식물에서 바이오매스를 활용하여 플라스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점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바이오매스를 활용하여 고분자 플라스틱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요, 기존의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생산에 있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바이오 플라스틱의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바이오 플라스틱은 기존의 플라스틱과 유사한 강도와 기능을 뽐내는데요, 심지어 플라스틱의 고질적인 문제인 분해 기간에서도 300년에서 500년이 걸리는 기존의 플라스틱 분해 기간보다 훨씬 짧은 50년에서 100년이라고 합니다. 이제 현명한 소비자들은 플라스틱 소재가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가며 구매해야겠지요?
앞에서는 바이오 리파이너리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는데요,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료 역할을 하는 바이오매스, 즉 바이오 리파이너리를 가능케 하는 바이오매스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바이오매스의 정제 과정에 따라 여러 형태의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는데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가스, 에탄올, 디젤, 심지어 플라스틱까지 생산 가능하니 가히 새로운 석유라고 불릴 만합니다.
바이오매스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1세대부터 4세대까지 기술적 난이도에 따라 그 구분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1세대의 바이오매스는 이미 상용화를 마친 상태로 바이오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곡물은 우리 인간이 섭취 가능한 유기물로서 식량으로 활용될 수 있기에, 그 활용이 제한적입니다. 만약 곡물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생산한다면, 시장의 곡물 가격에 영향을 미쳐 다른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는 2세대 이후의 바이오매스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바이오 관련 연구들은 이 바이오매스를 어떻게 하면 에너지로 효율적으로 변환할 수 있을까 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3세대인 미세조류는 다른 바이오매스와 달리 수확이 빠르기에 경제성을 극도로 높일 수 있는 바이오매스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은 2000년 초반부터 ‘바이오매스 연구개발법(Biomass R&D Act)’을 제정하여 연간 1억 5천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바이오매스 산업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유럽 2020 전략’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 및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바이오산업의 확장하고 있지요. 아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일본은 ‘바이오매스 일본종합전략’에서 바이오매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전략 로드맵과 함께 여러 세부과제를 선정하였고, 정책 도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세계의 바이오 시장 트렌드에 발맞추어 바이오 리파이너리 분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데요, 더욱 효율적인 바이오 리파이너리 기술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여러 분야의 공학자들이 앞다투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바이오 리파이너리 분야 연구 현황은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있을까요?
2023년 3월 KAIST 이현주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와 이상엽 교수 공동연구팀이 전기화학적 이산화탄소 전환기술과 미생물을 이용한 바이오 전환기술을 연계하여 이산화탄소로부터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냈다고 합니다. 이산화탄소를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전기화학-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전기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전해조와 미생물의 배양이 일어나는 발효조가 연결되어 전해조에서 이산화탄소가 포름산으로 전환되면 이 포름산을 발효조에 공급하여 미생물이 바이오 플라스틱인 폴리하이드록알카노에이트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합니다.
연구팀은 기존의 전기 화학반응의 낮은 효율과 까다로운 미생물 배양조건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의 문제와 비연속적인 공정을 이산화탄소 활용으로 극복해내었다고 하는데요, 이산화탄소로 포름산을 만들어 미생물의 생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전기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생리적 호환이 가능한 양극 전해액(physiologically compatible catholyte)’을 개발하여 미생물에 공급되도록 하였습니다. 세포 건조 중량의 83%에 달하는 높은 함량의 바이오 플라스틱. 이는 기존 시스템 대비 20배 이상의 바이오 플라스틱 생산성을 보인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1세대 2세대는 장점도 존재하지만, 한계와 단점이 뚜렷한 상황입니다. 식량으로 쓰이는 식물을 온전히 에너지를 위해 쓰는 것이 윤리적인 문제도 있지만, 식량으로 쓰는 식물을 생산하면서 불가피하게 세계 식량 시장의 가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이오매스로 사용하기 위하여 경작하고 벌목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바이오라는 본연의 목적을 훼손한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렇기에 3세대 이상의 바이오매스를 개발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서상우 화학생물공학부 교수팀이 정규열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팀과 공동 연구로 석유 자원을 대체할 해조류 기반의 친환경 바이오 연료 및 화합물 고속 생산 원천 기술을 개발해냈다고 합니다. 바로 3세대 바이오매스의 핵심 기술을 개발해낸 것이지요. 연구팀은 해조류를 고속 대사할 신종 미생물을 발굴하고, 그것에 최적화하기 위한 유전자 조작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존의 미생물에 비해 2배 이상 빠른 성장 속도와 바이오매스로의 전환속도로 해조류뿐만 아니라 기존의 포도당을 이용한 미생물 발효 공정에도 획기적으로 효율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하는데요, 그 무엇보다 3세대 바이오매스의 개발이 절실했던 우리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바이오 리파이너리에 활용할 곡물이나 목재 등 1, 2세대 바이오매스 자원을 수확하기에 적합한 넓은 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에 3세대 미세조류는 최적의 자원이 아닐까 합니다. 이와 함께 훌륭한 연구자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진취적 연구는 핵심 비밀병기가 되지 않을까요? 세계 바이오 시장에서의 대한민국의 선전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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