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광주 최초의 영적 지도자 <오방 최흥종기념관>
<이이남 스튜디오>를 나온 걸음이 인근의 <오방 최흥종기념관>을 향합니다. 빨간색 벽돌 건물이 단정하게 자리한 이곳은 개화기 광주 최초의 영적 지도자로 한평생 한센병(나병) 퇴치와 빈민구제, 독립운동, 선교활동, 교육활동 등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온 오방 최흥종을 기억하는 공간입니다. 광주의 정신적 지주이자 근대 광주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2019년 10월 개관하였습니다. 이후 시민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으로 오방 최흥종의 삶과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는 등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요, 민족독립운동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선교운동가로서, 평생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사신 선생의 일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념관의 전시는 크게 상설전과 기획전으로 구분됩니다. 상설전은 <새벽의 빛>, <여정의 시작>, <신행일치의 길>, <영원한 자유인> 이렇게 총 네 파트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어요. 먼저, <새벽의 빛>에서는 전시 관람에 앞서 그 내용을 간략하게 알 수 있는 프롤로그 형식의 영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총 6분의 러닝타임, 일평생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산 오방 최흥종의 생, 그 위대함을 미리 느껴봅니다.
영상 관람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전시실 내부 관람을 시작합니다. 먼저 <여정의 시작>에서는 청년 최흥종이 유진벨과 포사이드 선교사를 만나면서 기독교인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과정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광주 불로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부랑아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는데요, 그런 그가 유진벨 선교사를 만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신앙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던 1909년 추운 겨울, 흉측한 몰골을 한 한센병 환자를 부축하고 오는 포사이드 신부를 만나고 그의 자애로운 모습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 속에 깨달음을 얻은 최흥종은 이후, 광주 최초의 목회자로, 환자의 아버지로, 독립운동가로, 사회운동가로 고독한 성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신행일치의 길>에서는 오방 최흥종 선생의 독립을 향한 열정과 참 목회자의 길, 가난한 자와 병든 자의 아버지로 살던 삶, 그리고 교육으로 미래를 꿈꾸는 교육자의 면모를 다룹니다. 광주 3.1운동의 밀명에 서울에 올라와 3월 5일 남대문 역전 시위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1년의 옥고를 치운 일화, 이후 1923년 주 YMCA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기독교 청년운동에 앞장섰으며 1927년 신간회 광주 지회장,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위원장직을 역임하는 등 민족운동에도 헌신하였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소외된 이웃에게 향한 그의 헌신적인 마음이었어요. 당시 한반도에는 나환자가 많았어요. 흉측한 모습과 전염에 관해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 그들의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는데요, 일평생 가난한 자와 병든 자의 아버지로서 사랑을 실천한 그의 삶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오방 최흥종은 교육에 대해서도 특히 신경 썼는데요, 교육 운동의 선각자였던 그는 민족을 일깨우기 위해 청년과 여성, 어린이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교육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 YMCA 운동을 통한 청년교육은 농촌지도자를 양성하고 야학을 여는 등 농촌계몽 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민족 앞날을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한 어린이와 여성 교육에도 앞장섰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자유인>에서는 참 자유의 길, 오방의 의미와 그의 죽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1935년, 최흥종은 육신의 한계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호를 ‘오방(五放)’이라 정하고 지인들에게 자신의 사망통지서를 발송합니다. 이후 그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무등산 오방정에 칩거하며 병자와 빈민들을 위한 활동에 전념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주를 방문해 최흥종 목사에게 남긴 휘호 ‘화광동진(和光同塵)’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로,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라는 뜻으로 “자기의 뛰어난 지혜와 덕을 감추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 준다”라는 오방 최흥종의 신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최흥종 선생의 호 오방(五放)은 다섯 가지 얽힘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 다섯의 생활신조는 가족에 대해서 나태함을 버리는 가사에 방안, 사회에 대한 안일한 태도를 버리는 사회에 방일, 재물에 예속되는 것을 버리는 경제에 방종, 정치에서는 원칙 없이 포기하는 것을 버리는 정치에 방기, 마지막으로 종교적으로 옮겨 다님을 버리는 종교에 방랑을 뜻합니다. 기도하고 있는 오방의 조각상 뒤로 그 뜻을 살펴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1966년 5월 14일 죽음을 맞이한 오방 최흥종 선생님. 큰 별이 진 광주는 슬픔에 휩싸였으며 그 넋을 기리기 위해 광주 최초로 사회장을 거행합니다. 광주의 모든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거리에는 그 마지막을 함께하는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해요. 오방 최흥종 선생님은 1962년 국민훈장에 이어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1995년에는 그 유해가 국립 현충원 독립지사 묘역으로 이장되었습니다. 광주 정신적 지주이자 근대 광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방 최흥종 선생님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기념관. 그곳을 나오는 발걸음이 한층 먹먹해집니다.
Travel Tip. 오방 최흥종기념관
✔️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64 (양림동 108-2)
✔️ 매일 09: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연휴, 추석 연휴 휴무)
✔️ 062-654-1920
✔️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obangmuse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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