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7월이면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진다. 나무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소설책 한 권을 읽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그런데 현실은 뜨거운 뙤약볕과 마주해야 할 때가 많았다. 비가 오고 나면 한 뼘씩 크는 잡초와 땅속에 꽁꽁 숨겨져 있던 돌멩이들이 얼굴을 내민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은 배가 늘어난다. 일손 구하기 어려운 여름철에는 고사리손들까지 함께해야 한다. 아침을 먹고 나자마자 일은 시작이다.
해가 막 떠올라 그 열기는 대단하지 않지만, 머리 위까지 올라서면 그야말로 푹푹 찌는 날이 될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로 엄마는 토시와 수건을 꺼내주신다. 중무장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밀짚모자를 건네받는다. 얼굴을 다 감싸 안고도 남을 정도로 큰 모자다. 커다란 챙이 사방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막아줄 것이다. 커다란 모자이다 보니 무겁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었지만, 짚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쓴 듯 안 쓴 듯 알 수 없을 정도의 무게였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다면 하루에 한 개나 만들 수 있을까 싶다. 크고 가벼운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모자의 끈도 턱 아래로 내렸다. 바람이 불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지 위해 턱끈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다. 이윽고 우리 가족은 물 한 주전자를 듣고 밭으로 향했다. 많은 비가 온 뒤라 토사가 휩쓸려 내려가다 보니 곳곳에 돌부리가 아무렇게나 드러나 있었다. 밭 여기저기 나 뒹구는 돌멩이를 먼저 걷어내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못 쓰는 용기에 돌을 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 처음에는 신이 났다.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돌멩이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햇빛은 머리 위로 향하고 있었다. 가벼워 보였던 밀짚모자도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흐르는 땀방울은 늘어가고 있었다. 수건을 가지고 연신 땀을 닦아내 보지만 흐르는 땀은 멈추질 않는다. 그나마 커다란 밀짚모자 덕택에 강력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시원한 바람이 가끔 불어오다 보니 빨갛게 익은 얼굴의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오만상이 찌푸려져 있고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질 때쯤, 엄마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밥이 다 되었어요. 점심 먹고 하죠?” 아버지한테 하는 얘기였다. 사방을 둘러보던 아버지는 그 정도면 되었다는 표정으로 “밥을 먹으러 가자.”라고 하셨다.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우리는 집으로 달려 나갔다. 마루에 도착하자마자 모자부터 벗겨냈다. 반나절 동안 턱끈을 하다 보니 끈을 벗겨 낸 자리에는 선명하게 끈 자국이 남아 있었다. 모자는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챙 부분과 뚜렷한 색깔 차이를 보였다.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모자들이 마루 위로 뒹굴었다. 일단은 세수부터 하는 게 급선무라 모자에는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엄마가 봤었다면 “옆으로 잘 정리하고 씻어야지!”라며 잔소리를 하셨으리라.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모자를 찾았다. 더운 날이다 보니 땀에 젖었던 모자가 어느새 말라 있었다. 밀짚모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새로운 모자를 꺼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농사꾼에게는 항상 필수품처럼 따라다녔던 밀짚모자의 쓰임새를 새롭게 알 수 있었다. 한번 툭툭 털자 새것처럼 말끔해 보였다.
다시 밭으로 향했다. 7월의 햇살은 오후에 되어도 식을 줄 몰랐다. 다시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땀방울이 이마 송글송글 맺힌다.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햇살을, 밀짚모자는 막아주고 있다. 대신 밀짚모자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바람만은 예외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쑤실 때쯤,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어간다. 그 많던 돌멩이를 한쪽으로 몰아냈고, 밭을 점령했던 잡초들은 싹 걷어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힘든 하루였지만 보람도 컸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온종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밀짚모자에는 땀 냄새가 가득하다. 내일 하루 잘 말리고 나면 뽀송뽀송한 밀짚모자를 다시 쓸 수 있을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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