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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글레노리 노란우체통] 혹스베리강 우편배달

by 에디터's 2022. 7. 14.

사진출처 : unslash.com

혹스베리강 우편배달
- 나의 두려움은 압화되었다

브루클린에서 배를 타고 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다. 7월은 시드니 겨울의 중심. 연일 우중이었지만 오래된 약속이었다. 홍수 끝에 척박한 황토색 강의 흐름을 따라 섬들은 강의 체수를 닮지 않고 초록빛을 울타리처럼 감고 있었다. 오랜만에 바싹 든 겨울 햇살에 섬들은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배의 여정에 동승했다.

옛 어른들이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 했다. 그 말도 세월 따라 탈색되는가. 나는 변하고도 아직 살아있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이층 선상에 오를 때 미량의 멀미를 느꼈을 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왁자지껄 흥겨워하는 일행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선상 서비스로 나오는 커피와 비스킷 맛을 온전히 다 느낄 정도니 이만하면 싱싱했다.

‘탄다’라는 말이 귀에 와 닿기만 해도 알레르기를 일으켰던 긴 세월. 배를 탄다는 말은 남의 등에 업혀서 뛰어가는 일만큼 불편하고 속이 울렁거리는 일이었다. 더구나 배를 타고 골골샅샅 섬을 돈다는 말은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이 시답지 않은 공포감은 어릴 때 겪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사건 이후로는 타거나 오르거나 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렸었다.

설악산 권금성에 올라갈 때도 내려다보는 일에 질려 중도에서 주저앉았고, 유원지에 물놀이를 가자 해도 매번 손사래를 쳤으니 원성이 쌓일 수밖에, 앵초처럼 생생하게 겪지 않은 일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오사카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4년 전, 8월 어느 날이었다. 그 두려워하는 습관이 바뀌는 기회를 겪었다. ‘탄다’와 ‘돈다’에 대한 알레르기 체질이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았는데 관점을 바꾸는 데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오사카 항 하버 빌리지에 있는 산토리 뮤지엄에서였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 작품 앞이다. 그 건축가의 팬인 남편 성화에 못 이겨 여행 일정 중 하루를 겨우 뺀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일까. 뭔 사정인지 문이 닫혀 내부를 보지 못하고 거대한 콘크리트 누드 외벽과 치솟은 유리벽 주변만 돌다 말았다. 아는 말이라곤 곤니찌와, 한 마디뿐이어서 누구한테 사정을 물어볼 처지도 아니었다. 난바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기대감을 버리고 해안 돌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나 하고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공중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대관람차. 하늘 발목에 아슬아슬하게 높이 매달려 있는데도 웬일인지 무섭다기보다는 아름다운 장식품처럼 보였다. 목을 꺾어가며 올려다보니 옆에서 남편이 함께 타보자고 했다.

대관람차는 서서히 땅에서 멀어져 가더니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어느새 꼭대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속도와 시간을 가늠해보기도 전이었다. 하버의 이국적인 풍경이 두려움에 앞서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었고, 그 파노라마 그림 속으로 조용히 빠져들었다.

공중부양 느낌에서 스릴이 사라진 그날 이후일까. ‘탄다’의 강박증은 한결 수월해졌다. 할 수 없다가, 할 수 있다 로 바뀐 대관람차 사건은 이제야 생생한 상처 꽃이 마른 꽃잎으로 남게 되는 터닝 포인트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번지점프나 청룡열차를 감히 타보겠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배를 타고 섬을 방문하는 일은 해볼 만했다.

 

색 고운 햇살이 갈수록 활짝 피었다. 배는 푸르고 흰 강바람을 거슬러 가다가 섬마다 가볍게 들렸다. 혹스베리리버 기차역 근처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차례차례 섬사람들에게 술과 음료를 내려주고, 개인 편지와 물건이 든 가방을 서로 주고받았다. 개다리소반 같은 선착장에서 일어나는 명랑하고 유쾌한 일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빼고 재미 삼아 내다보다 배가 떠날 때는 손을 흔들곤 했다. 섬 사람에게는 주요 일상이 우리에게는 즐거운 퍼포먼스가 된 셈이다.

턱수염이 수북한 잉글리시 선장은 마이크를 들고 식민지 시대 이후, 1ᆞ2차 세계대전 시점을 근거로 섬의 역사와 유례를 시종일관 설명해주었다. 건성건성 흘리다가 귀에 꽂히는 몇 마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스트맨 보트(Postman Boat)는 일과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쥐고 굽이굽이 섬 허리를 돌아 한낮의 혹스베리강을 한 땀 한 땀 누볐다.

섬에 뿌리를 박은 주민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호기심이 바짝 일었다. 그들은 몸만 섬 사람이지 대부분 도회지 삶을 살고 있었다. 개인 선착장에 묶어 둔 소형보트를 타고 나와 마트에 가고 아이들 등하교를 시키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 길도 다리도 없는 섬에 안착하며 그림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부러웠다가 금세 거리감이 생겼다. 그들이 문명의 최대 수혜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뒤집어서 저들이 우리를 구경거리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 피안으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 질투심이었을까. 사실은 약간의 열패감과 부러움에 가까웠다.

하지만 곧 그 마음을 접었다. 겉으로 멀쩡한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들은 모르는 공포감 하나를 깊이 누르고 살았듯이 이 또한 그들의 사생활에 대한 나만의 억측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지 않은가. 섬을 주거지로 택한 그들에게도 어떤 마른 꽃잎이 아프게 박혀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마당이 제법 넓고 뒤로는 산이 널찍이 보이는 우리 집에 오는 지인마다 “시가 절로 나오겠어요.”라는 말에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절로 쓰인 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새벽 4시가 다되어 가도록 마감에 쫓기어 잠을 미루고 글을 주워 담고 있는 나 같은 글 넝마주이에게 말이다. 그러니 나 또한 그들에게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었다.

 

열한 명이 무사히 배에서 내렸다. 잔잔한 바람과 터키색 물감을 쏟아 부은 듯, 한 장짜리 드넓은 하늘의 기운이 무엇보다 컸다. 나만 느끼는 것이었을까. 배에서 땅으로 마지막 발을 뗄 때 감사가 절로 나왔다. 그새 얼굴을 익힌 선원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해산하기에는 너무 이른 오후 한 시. 바다를 끼고 동네 한 바퀴 도는 일로, 언젠가 우리의 기억을 소환해 보기 위해 단체 사진을 몇 장 찍는 일로, 이 동네 별미인 피시 앤 칩스 한 통을 거덜 내고서야 우리는 겨우 헤어졌다. 아련해진 섬 빛을 가득 품고 돌아오는데, 연말만 되면 잊지 않고 보내주는 선배의 꽃 카드가 생각났다. 한 해 동안 잘 말려 둔 꽃들로 손수 만들어 보내주곤 했는데, 한 쪽 다리를 저는 선배의 불편함을 알고 있는지라 그 누른 꽃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항상 각별했다. 혹스베리강의 긴 책갈피 속에서 꽃으로 앉아있는 인고의 섬들이 한 장의 멋진 카드로 그려지는 귀가길. ‘타다’와 ‘돌다’에 대한 나의 두려움도 석양빛 마른 꽃문양이 되어 조용히 스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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