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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귐딩이

by 에디터's 2021. 12. 30.

사진출처: 크라우드 픽

외손자가 지난달에 돌을 맞았다. 코로나로 인하여 한정식당에서 가족끼리만 조촐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여러 벌의 색동옷을 입히고 벗기느라 손자를 괴롭혔는지 많이도 칭얼거린다. 드디어 돌잡이 행사. 어미는 청진기를 유도하고 손자는 판사 봉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더해졌는지 참았던 울음보를 터트렸다. 한정된 시간이라 손자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모두에게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보름이 흘러간 지난 토요일이 할머니의 생신이라 제대로 된 손자의 묘기를 접하게 되었다. 매일 보내주는 동영상을 보니, 거실에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직사각형의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서 돌아다니고 장난감 놀이를 하거나 울타리를 오르고 내리는 게 일과였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어미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주 만나는 할머니는 기억하는 눈치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가면서 유심히 쳐다보고는 안으려고 하면 손으로 밀어냄을 반복한다. 한참을 더 두리번거리다가 손을 내민 쪽은 외삼촌이다. 올려다볼 사람은 없고 내려다보는 것이 좋은지 싫다는 표정을 하지 않는다. 자기 집보다 넓고 방해물이 없으니 이곳저곳을 뒤뚱거리며 돌아다닌다.
마음은 급하고 몸이 따라주질 않아 두 팔을 벌리고 중심을 잡는다지만 여러 사람의 걱정을 한 몸에 받는다. 손녀가 방에 들어가더니 컴퓨터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팔을 흔들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니 형도 흥을 돋우려고 여러 형태의 춤을 선보인다. 가끔 형은 보질 않고 방을 쳐다보더니 거기서는 누나가 제멋에 겨워 몸을 흔들고 있었다. 보조를 맞추던 형은 에너지가 소진됐는지 소파에 누었으나 손자는 쉬지 않고 춤을 춘다.
동생에 대한 형의 사랑도 살갑다. 과일을 먹이려고 어르고 달래는가 하면 품에 안고 얼굴을 비비면서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보살핀다. 어미는 자기가 가르친 ‘뽀뽀’와 ‘사랑해요’를 선보이는 게 자랑스럽고 가족은 박수와 격려로 보답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할머니가 “하나둘, 하나둘!” 하니 갑작스럽게 두 팔을 바닥에 뻗고 무릎은 땅에 되고는 구령에 맞추어 팔 굽히기를 쉼 없이 한다. 얼마나 힘차게 하는지 엉덩이와 종아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할머니가 걱정되어서 “그만해.”를 여러 번 반복해서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서는 행동이 대견스럽다.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앉아서 끙끙거리다가 눈치 차릴 사이도 없이 일어서고는 본인도 대단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빙그레 웃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수박을 먹고도 자두 세 개를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우니 먹성 또한 대단한 녀석이다.
외손자가 태어나기 전후, 모임의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전에는 할머니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과 다과를 즐기는 시간이었다면, 이후로는 어느 순간이나 손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기울이면서 웃음이 이어지는 행복감이다. 벌써 일 년이 지났지만, 이 녀석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답답하고 외롭고 무의미한 일상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은 우리에겐 ‘귐딩이 1호’임에 틀림없다.

 

글 / 사외독자 이성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