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구남실을 아시나요?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봄가을 소풍의 단골 장소는 ‘직지사’였다. 학교에서 걸어서 왕복 30리 길이였지만, 노래 부르고 장난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가 나왔다. 우리 동네와 윗동네의 경계선에 있는 ‘구남실’. 이곳도 학교에서 25리 길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대안이 없었던 것 같다. 다리에서 내려와 조금만 올라가면 한 학년은 앉을 만한 너럭바위가 있고, 1급수의 맑은 물이 흐르는 내가 있었다. 거기다 하천 옆은 야산이었다. 선생님들이 보물찾기 놀이에 필요한 쪽지를 숨기기엔 안성맞춤인 나무와 돌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학생들이 소를 몰고 와서 방목하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오면 나도 그들과 동참했다. 목동끼리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시들해지면 골뱅이 줍기에 나선다. 돌 위나 돌 사이에 많이도 있어서 한 시간 정도면 검정 고무신에 가득했다. 그러다가 한창 더울 때는 여자아이들을 다리 밑으로 내려보내고, 사내아이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노천 목욕을 즐겼다. 물장구도 치고 물속으로 밀어 넣는 장난을 하는 것도 여름 한 철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다가 하루에 다섯 번씩 왕복하는 막차가 올라오면 산 중턱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몰아 돌아갈 시간이 왔다. 그렇게 우리의 여름은 추억을 쌓아갔다.
구남실은 다리에서부터 150m 정도의 골짜기였지만 우리에게는 어느 곳보다 소중한 자연 유산이었다. 그런 환상은 전라도로 통하는 삼도봉 터널이 뚫리고부터 없어졌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김천 인터체인지를 거쳤지만, 터널 개통으로 대전에서 진주 간 고속도로를 타다가 무주에서 나오면 되었다. 뒤쪽으로 해서 고향에 가는 길인데 나제 통문을 지나게 된다. 그 골이 얼마나 길고 깊은 지 30여 분을 내리 내달려야 했다. 숲도 울창해서 여름철에도 도로에는 그늘져 있었다. 그곳은 우리가 사는 아랫면과 윗면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당시 아랫면은 논이 많았고 윗면은 산골이라 밭이 많았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화전민들이 나무껍질로 엮어 만든 광주리와 바구니를 이고 지고 하면서 내려왔다.
지금의 구남실은 일 년에 한 번 이상을 찾아가는 선산이 있는 곳이다. 대형 댐의 위쪽 경계선이기도 하여 선산에 가려면 댐 관리소에서 열쇠를 받아와야만 한다. 수질 보존을 위해 강을 건너지 못하게 문을 폐쇄해 놓았기 때문이다. 매번 그곳을 지날 때면 꿈 많던 시절의 추억이 아른거린다. 근방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동무라도 만난다면 너럭바위에 술 한 잔 차려 놓고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구성지게 불러보고 싶다.

 

글 / 사외독자 오신환 님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