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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세계 과학자의 대학] 1편, 취리히연방공과대학

아인슈타인도 고배를 마신 대학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

사진출처 : https://www.s-ge.com , http://dreamreader.net

 

※ [세계 과학자의 대학]에서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나온 대학과 그들의 대학 생활, 대학의 역사 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_^)

 

21세기 최고의 두뇌, 공간과 시간 그리고 중력에 관한 획기적인 이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 아이작 뉴턴 이후 가장 중요한 물리학자 등으로 불리며 과학자들의 과학자로서 위상을 가진 아인슈타인도 대학에 낙방했던 사실을 아시나요? 전설의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진학에 고배를 마셨던 대학은 바로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ETH 취리히’라고도 불리는 세계적인 공과대학이지요.

 

1855년 스위스 정부에서 설립한 공업기술 전문학교(Eidgenossische Polytechnische Schule)가 이 대학의 전신으로 현재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http://topuniversityes.blogspot.com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군대식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합니다. 결국, 열일곱 살에 독일을 떠나 스위스로 떠나왔고 독학해서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입학시험에 응시하였습니다. 결과는 보기 좋게 낙방! 아인슈타인은 수학 외의 거의 모든 과목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대학 진학에 실패하였지만 대학 학장은 그의 남다른 수학능력에 주목하였습니다.

 

학장은 아인슈타인이 스위스 아아라우의 주립 학교 상급반에 들어가 1년을 공부하고 졸업장을 따오면 대학에 진학시켜 주겠다고 제안하였고, 아인슈타인은 최고의 성적으로 주립 학교를 졸업한 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일명 ‘재수’를 통해 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에서 다소 인간적이고 친근한 물리학자로 다가오지요?

 

사진출처 : https://metode.org

 

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천재 물리학자의 학교생활은 어땠을까요.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수학과에 입학한 아인슈타인은 대학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 외에는 수업에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험 기간에는 친구들의 노트를 빌렸고, 당시 캠퍼스 커플이자 후에 그의 아내가 된 밀레바 마리치의 도움으로 시험을 통과할 정도였다는데요, 대학 지도교수였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 교수는 그를 ‘게으른 개’라고 부를 정도로 비난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에서 5.5점을 받는 등 평균평점 5.7/6점을 받아서 6명 중 1등을 하기도 했고, 1900년 졸업시험에서는 평균 평점 4.91/6을 받아 6명 중 4등을 했다고 합니다. 정작 그를 도왔던 아내 밀레바는 졸업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얘기도 전해옵니다. 수학보다도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문제들과 실제 현상에 더 관심이 많았던 아인슈타인은 학교 수업을 등한시한 관계로 교수들에게 밉보여 타 동급생들과 달리 졸업 후 모교 조교 지원에서 밀려났고, 이후 취업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가정교사와 임시교사 등을 전전하던 아인슈타인은 1902년 베른에 있는 특허사무소에 하급 심사관으로 취직하여 특허신청서를 검토하는 일을 하였고, 근무 후에는 연구에 매달려 1905년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재미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아인슈타인의 지도교수로서 그의 불성실함을 비난했던 헤르만 민코프스키입니다.

 

사진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민코프스키는 특수상대론의 공간과 시간의 본성에 관해 연구를 진척시키고, 그것이 공간과 시공이 일체로 되는 4차원의 시공연속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시각화한 것이어서 상대성이론을 더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민코프스키의 시공간 개념이 없었다면 상대성이론은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그 둘의 관계는 악연이었던 걸까요, 필연이었던 걸까요?

 

1909년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안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인슈타인이 소위, 튕겼다고 할 수 있지요. 대학 측이 제시한 연봉이 자신이 특허사무소에서 받는 것보다 적었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연봉을 약속받고 부교수로 취임하게 된 아인슈타인은 2년 후 프라하대학으로 떠났다가 1912년 마리 퀴리(Marie Curie)의 추천으로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의 교수로 되돌아와 모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sterrenwachthellendoorn.nl

 

아인슈타인 외에도 빌헬름 뢴트겐 등 2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글로벌 대학평가에서 항상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세계적인 공과대학,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이 아인슈타인과 이런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흥미로우셨나요. 학생들의 자율적 연구 태도를 강조했던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강의는 어땠을지 100여 년 전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그의 강의실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