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의 ‘인생대학’
파리 소르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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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원소를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인 마리 퀴리는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한 번 받기도 어려운 노벨상을 각기 다른 분야(물리학상, 화학상)에서 두 번이나 수상한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과학자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은 마리 퀴리는 그녀의 모교인 파리대학(University of Paris)의 최초 여성 교수라는 타이틀까지 당당히 따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그녀가 인생 전반에 걸쳐 깊은 인연을 맺은 대학, 파리 소르본대학교(Université Paris Sorbonne)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파리대학은 1257년 콜레주 드 라 소르본을 시작으로 1885년에 재설립되어 1971년 13개의 대학으로 나뉘게 되었는데요, 현재는 파리 제4대학과 파리 제6대학의 통합 후, 소르본대학교라는 이름으로 파리대학교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소르본대학교의 뿌리인 파리대학교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교,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와 더불어 서구권 최초의 대학 중 하나입니다. 서구권 최초의 대학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소르본대학 또한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남편의 성을 따라 ‘퀴리부인’이라고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마리 퀴리의 본명은 마리아 살로메아 스클로도프스카(Maria Salomea Skłodowska)입니다. 마리 퀴리는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왕국의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다섯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었고, 마리아의 집안은 가문의 재산을 폴란드의 독립운동을 위해 모두 다 써버린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마리아와 그녀의 남매들은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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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리 퀴리는 절대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요, 그녀는 바르샤바의 한 기숙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 나갔지만 대학 입시에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당시 폴란드 대학들은 여학생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학구열이 남달랐던 마리 퀴리는 학업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기 위해 여학생의 입학을 허가하는 프랑스의 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프랑스 대학으로의 입학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2년 동안 폴란드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고, 1년 반 동안 추가적인 벌이를 하며 3년 반의 고된 시간을 버텨 파리 유학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로 건너온 그녀는 바르샤바 근처에 있는 산업과 농업 박물관의 실험실에서 화학 실험을 하며 스스로 과학을 공부했고, 1891년 11월 3일 스물네 살의 나이에 드디어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교정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유학 생활 동안 마리 퀴리는 영양실조에 시달릴 만큼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학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래도 뛰어난 성적으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힘들었던 대학 생활을 마치고 1893년 소르본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소르본대학교에서의 인연은 그녀의 졸업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는데요, 소르본대학교가 마리 퀴리에게 ‘인생대학’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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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는 소르본대학에서 세계적인 수학자인 푸앵카레와 물리학자인 리프만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스승 리프만의 실험실에서 강철의 자성을 연구하기 시작한 마리 퀴리는 그곳에서 평생의 배우자인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를 만나게 되었지요. 피에르 퀴리 역시 과학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던 청년이었습니다. 마리 퀴리에게 피에르 퀴리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과학적 동지이자,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인생의 동반자였습니다.
퀴리 부부는 과학에 대한 넘쳐나는 열정으로 과학사의 한 획을 그었는데요, 마리 퀴리는 남편인 피에르 퀴리가 발명했던 전압기를 이용해 우라늄에서 나오는 광선이 분자들 간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라늄 원자 자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부부의 합동 연구는 많은 업적을 낳았는데요, 1898년 12월 26일에 부부는 협동 연구 끝에 발견한 방사능 원소 라듐의 발견을 공표했고, 이 업적으로 퀴리 부부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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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까운 사건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생하게 됩니다. 남편 피에르 퀴리가 1906년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하게 됩니다. 마리 퀴리는 피에르에게 보내는 헌사로, 소르본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지냈던 죽은 남편의 직위를 이어받아 소르본대학을 세계 굴지의 실험실로 만들 것을 결심하고 소르본대학교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습니다.
소르본대학교는 마리 퀴리가 고등교육을 받고, 일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방사능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를 펼치는 과정, 최초의 여성 교수 등 마리 퀴리 인생의 전반에서 빼놓을 수 없이 인연이 깊은 대학입니다. 그래서인지 소르본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인 파리 제6대학교의 이름이 피에르 앤 마리 퀴리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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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 이후로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 파리의 소르본대학교. 총 32명의 노벨상 및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아직도 그 명성을 이어 나가고 있지요. 이 시간에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위대한 연구들이 소르본대학교 실험실에서 펼쳐지고 있을 거라 기대하며, 제2, 제3의 여성 과학자들이 소르본대학교에서 배출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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