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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드라마


토요일 밤 10시 30분. 어떤 이들에게는 초저녁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별나라로 꿈나라로 가서 한참 단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커피를 서너 잔까지 마셔가며 버티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드라마가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끝나면 12시에 가까워질 테고, 잠 때를 놓친 나로서는 1시간여를 뒤척여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바늘까지 꾹꾹 찔러가며 TV 앞을 사수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참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드라마를 놓치고 나면 다음 날 하루 종일 무기력증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엄마가 보시기라도 한다면 “그놈의 드라마가 뭐길래!” 하실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박하다. 가마솥에서 갓 지은 쌀밥을 먹기 아깝다고 하루 지나서 찾으면 고슬고슬한 그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물기로 만들어진 그 진득진득함에 돌을 씹는 건지 밥을 씹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그것처럼 본방과 재방송의 차이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본방이나 재방송이나 처음 보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 줄거리가 달라질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본방을 볼 때의 팽팽한 긴장감과 스릴 전율은 재방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걸 알기에 기를 쓰고 10시 30분까지 참고 참았던 것이었다.
한참 국민드라마 <내 딸 서영이>가 시청률 50%를 넘기느냐 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을 때, 나도 그 드라마에 푹 빠져서 주말만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월요일이 시작되면 이번 한 주는 어떻게 버티나 하는 걱정으로 눈을 뜨곤 했었지만 <내 딸 서영이>를 보게 되면서부터 그 드라마를 기다리는 재미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빨리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기다리는 드라마가 방영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기쁨이 더 컸다.
조금이라도 글의 전개를 미리 유추해 보고자 드라마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나왔다를 수시로 반복했다. 그리고 드라마 시작 한 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그러던 그 드라마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사건의 갈등 매듭들이 하나둘씩 풀려나가자, 그때부터 공허함이 밀려왔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열창을 하고 연기에 몰입을 하다가 극이 끝나고 나면 허무함을 맛보게 된다고 하던데, 그와 비슷한 감정이리라.
<내 딸 서영이> 마지막 회가 거의 끝날 무렵이 되자 이제는 무슨 드라마를 봐야 하나 하는 걱정을 했었다. 몇 개월 동안 한 드라마에 몰입해서였을까. 더 이상은 다른 드라마는 시청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소재 고갈과 시나리오 부재를 뚫고 볼만한 드라마는 늘 한두 편은 생겨났다. <도깨비>, <백일의 낭군님>, <하나뿐인 내 편> 등등을 빠짐없이 시청했다. 얼마 전에는 <미스터 기간제>와 <왓쳐>에 푹 빠져 살았다.
고3이라면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려 다른 것들은 하지 말아야 하는 시기로 알고 있을 때도 짬을 내서 슬쩍슬쩍 봐왔던 것이 드라마였다. 고3 담임선생님께서는 고3이 하지 말아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연속극을 보는 거라 하셨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런 숨 가빴던 때에도 나의 유일한 취미였던 드라마를 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 드라마로 인해 좋은 대학으로 가는 데 걸림돌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단연코 “NO!”라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드라마들이 나에게 끼친 영향력은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살아있는 의미와 뜻을 알게 해주었고, 늘 가슴 뛰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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