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로 마음의 아픔을 줄일 수 있다는 논문이 최근 발표됐다. 심리학자 네이든 드왈은 심적 고통을 겪는 62명을 대상으로 21일간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게는 매일 타이레놀을 2알씩 복용하도록 했고, 또 한 그룹에게는 아무 약효가 없는 약을 처방했다(물론 양쪽의 약 성분은 미리 공개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타이레놀 그룹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아픔을 느끼는 정도가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다. (출판사 서평 중에서)
우리나라의 성형 열풍은 해외 관광객에까지 알려진 모양이다. 작년 성형외과 진료를 위해 2만 5천 명 가까운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4년 만에 10배나 증가한 수치다. 성형외과가 모인 강남거리에는 이들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여러 개의 호텔이 신축 중이다. 이제 한국인은 다 했으니 성형업계가 중국인으로 돌아섰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일수록 외모에 더 큰 가치를 둔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인은 하루 세끼조차 먹지 못하는 아프리카 사람들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 여러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에 매달리고 명품 옷과 가방을 걸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인의 행복감은 전 세계 꼴찌 수준이다.
“행복은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같다. 반드시 녹는다. 행복은 돈도 명예도 자산도 아니고, 결국 사람이 자산이다.”
- 서은국 교수의 저서, 「행복의 기원」 중에서
왜 행복해지려고 하는가
오랫동안 행복의 심리에 대해 연구한 서은국 교수가 펴낸 「행복의 기원(21세기북스, 2014)」을 보면 왜 이런 딜레마가 생기는지 알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인간은 왜 행복해지려고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왜 행복해지려고 하는지를 알게 되면 뜻밖에 손쉬운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 사진 출처 : http://www.imagazinekorea.com/
1977년에 발생한 비극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 위치한 스페인령 캐너리 군도에서 역사상 최악의 항공사고가 일어났다. 미국의 팬암과 네덜란드의 KLM 항공사의 747 여객기가 활주로에서 충돌해 583명이 사망했다. 조종사들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충돌이 일어났지만 이렇게까지 대형사고가 발생할 상황은 아니었다. 사고는 활주로에서 일어났고 충돌 후 수십 분 후에 기체가 폭발했다. 비행기에서 탈출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승객들은 그 기회를 놓쳤다.
왜 그랬을까? 승객들은 화염에 휩싸인 비행기 안에서 탈출구를 찾아 뛰어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언다’고 표현한다. 포식자 앞에서 일시적으로 얼어버리는 것이 동물의 본능 중 하나다. 오랜 세월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이 습성 때문에 이날은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뇌는 원시인의 뇌다.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의 여정에서 갈라선 것이 약 600만 년 전이고,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며 문명을 가진 것이 6천 년 전부터다. 비교를 위해 600만 년을 1년으로 압축한다면, 인간이 문명생활을 한 기간은 365일 중 고작 2시간 정도다. 우리는 1년 중 2시간에 불과한 이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만 우리의 뇌는 그렇지 않다. 식량문제가 해결됐지만 아직도 우리 몸은 지방이나 달콤한 음식에 정신을 못 차린다. 식량이 부족했던 때 우리에게 긴요했던 생존장치가 이제 약보다 병이 된 것은 우리 뇌가 문명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뇌가 행복을 느끼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행복은 뇌가 쾌락이나 즐거움 같은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불행은 고통이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는 것이다. 쾌와 불쾌의 감정은 행동할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주는 신호다. 음식, 짝짓기 등 생존에 유익한 활동에 매진하라고 알려주는 것이 행복감이고, 뱀, 절벽, 썩은 음식 등 치명적인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불쾌감이다. 그래서 아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오래 살 수 없다. 반대로 골골팔십(골골한 사람이 80세까지 장수)이다.
행복의 원천은 사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행복과 불행의 감정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사랑할 때, 친구들과 어울릴 때, 칭찬받고 인정받을 때, 사람들은 가장 행복해하고, 죽음, 이별, 짝사랑에 직면할 때나 버림받을 때, 욕먹거나 비난받을 때,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한다. 즉, 사람은 행복감을 통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이게 잘 안될 때는 불행한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를 생각해내려면 다시 원시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함께 있을 때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한 진화생물학자(Trivers)에 따르면, 매가 혼자 있는 비둘기를 습격할 때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80%다. 하지만 비둘기가 다른 친구 10마리와 함께 있을 때는 60%, 50마리와 함께 있을 때는 10% 이하로 사냥 성공률이 떨어진다. 동시에 동료의 존재는 식량 확보에도 유리하다. 우리의 뇌는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 설계되었고, 그런 행동을 촉진하기 위해 쾌감과 불쾌감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바로 사람의 성격, 그중에서도 사람을 좋아하고 잘 사귀는 외향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이해가 간다. 또 뇌가 사회적 고통이나 신체적 고통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부분에서 인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와 관련해 몸의 통증을 치료하는 진통제가 사회적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것이 입증됐다. 신체적 통증이나 사회적 고통 모두 생존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끼리 뭉치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행복도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뭘까?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가 경제수준보다 행복도가 특히 낮다. 행복지수를 국제 비교한 결과를 보면 개인주의 문화가 행복감이 크고 집단주의 문화에서 행복감이 작다. 그것은 사람이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스트레스의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내 마음대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회식이나 체육대회 등 억지로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다. 사람으로 인해 행복해하는 것보다 사람에게서 고통받는 것이 더 크다.
게다가 집단주의가 강한 국가에서는 집단, 즉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본다. 삶의 가치기준이 내가 아니라 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의 기준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여기는 것, 즉 돈, 명예, 권력, 외모 등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가지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첫째,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은 다르다. 절대 빈곤은 고통스럽고 불행하다. 하지만 돈이 늘어난다고 해서 계속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노벨상을 받은 카네만 교수의 연구를 따르면 가계소득이 7.5만 달러를 넘으면 소득과 행복의 관계는 사라진다고 한다. 한국의 GDP나 물가지수를 고려하면 연 소득 4,000~5,000만 원 정도가 넘으면 돈이 행복에 이바지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둘째, 목표를 성취하는 것과 목표 성취 후의 삶은 다르다. 백설공주가 왕자님과 결혼해도 평생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목표를 성취할 때는 짜릿함과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 이후의 삶에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행복감은 곧 사라진다. 여러 심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복권 당첨, 입학, 승진 시 느낀 행복감은 3개월 이상 지속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은 강도(강하게 느끼는 것)가 아니라 빈도(자주 느끼는 것)다. 물질적 목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어리석은 이유다.
이런 사유를 거쳐, 저자는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주 식사하며 놀러 다니는 것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뇌과학을 몰랐던 파스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한 걸 보면 말이다.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저 : 서은국
출판사 : 21세기북스(북이십일)
영상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vsBbM1J3j58)
글쓴이 이병주는 _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다. 여러 기업체에서 강의도 하지만 글 쓸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느낀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항상 노력한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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