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VS책
북유럽 신화 vs 힌두 신화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며 인류의 처음을 기념하는 신화의 세계를 탐험해 봅니다. 전설과 신화는 무(無)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발원한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문화, 믿음과 희망을 반영합니다. 기대 이상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덤이지요. 길고 긴 겨울밤을 환하게 밝혀줄 만큼 재미있는 신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봅니다.
끊임없이 창조적인 영감을 제공하는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나무의철학
알게 모르게 익숙한 북유럽 신화
어릴 때부터 다양한 버전으로 접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하면 아직 조금 낯설지만, 요즘은 북유럽 신화가 의외로 익숙해졌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라던가 미드 <왕좌의 게임>, 최근의 마블에서 나오는 영화들까지 북유럽 신화의 여러 부분을 차용했지요.
예를 들어 영화 <어벤져스>나 <토르>에 나오는 주인공인 ‘토르’는 북유럽 신화 속 천둥의 신입니다. 힘이 세지는 메긴교르드라는 허리띠를 차고 묠니르라는 망치를 휘두르는 신이지요.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인 <라그나로크>는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운명, 세계의 멸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엘프, 드워프, 세계수인 이그드라실 같은 북유럽 신화의 등장인물과 세계관을 접해 보셨겠지요. 전설의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부터 최근의 모바일 게임에 이르기까지 북유럽 신화 속의 ‘발키리’를 만나기도 합니다.
신화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문명
신화는 재미있게도 신화가 발원한 장소의 기운을 담아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믿음을 보여줍니다. 온화하고 살기 좋은 지중해에서는 태양의 신 아폴로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같은 신들을 믿었습니다. 애증과 질투로 인해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전쟁은 신들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주로 인간들 사이의 전쟁이었고 신들은 편을 갈라 놀이하듯 인간들을 응원하곤 했습니다. 신들과 인간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거나 결혼을 하기도 하면서 교류가 잦았지요.
북유럽 신화는 춥고 매서운 겨울이 일 년의 반을 차지하는 곳에서 발원합니다. 심지어 해가 뜨지 않는 날들이 지속되는 극야가 있는 곳이지요.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아 약탈과 침략을 일삼던 바이킹들이 살았고요. 그래서 북유럽 신화에서는 사랑과 질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전쟁과 휴전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강렬해요. 게다가 영생을 누리고 환생을 일삼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라그나로크라는 종말을 맞습니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과 주인공들
북유럽 신화의 최고 신인 오딘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비견되곤 합니다. 하지만 등장할 때마다 염문을 뿌리던 제우스와 달리 오딘은 전쟁의 신으로 유명합니다. 바이킹들은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오딘의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여전사 발키리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영혼들을 모아 오딘이 기다리는 발할라 궁전으로 데려가는 역할을 맡습니다. 바이킹들이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전투 중에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만 발키리와 발할라 궁전으로 가서 실컷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망치를 든 모습으로 익숙한 토르는 오딘의 아들이자 천둥의 신입니다. 신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세지요. 오딘은 지혜롭고 영악하게 묘사되지만, 토르는 온화하고 솔직한 편이에요. 로키는 오딘의 아들이 아니고, 토르의 의형제입니다. 로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음흉하고 교활하고 꾀가 많아요. 좋아하기 힘든 캐릭터이지만 다른 신들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도 하므로 마냥 싫어할 순 없지요. 자신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재주가 있습니다.
닐 게이먼이 새롭게 각색한 북유럽 신화
모든 신화가 그렇듯 북유럽 신화도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어마어마한 판본이 존재합니다. 닐 게이먼이 쓴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재미있고 가장 매혹적인 북유럽 신화 판본’이라고 평가받습니다. 묠니르가 그려진 번쩍이는 표지도 참 매력적입니다. 도둑맞은 망치를 되찾기 위해 여자로 변장한 토르, 최고의 지혜를 얻기 위해 자신의 한쪽 눈을 아낌없이 내준 오딘, 변신과 협상과 권모술수의 대가 로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라마야나」
R. K. 나라얀 지음, 김석희 옮김, 아시아
알고 보면 빠져드는 힌두 신화의 매력
힌두교는 다신교입니다. 3억 3천이 넘는 신들이 존재하지요. 신에 대해 관대한 힌두교는 여러 신을 동시에 믿으면서도 신은 하나이며 모든 존재에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신들이 환생도 하고 변신도 하는 바람에 힌두 신화는 무척이나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자랑합니다.
어린 시절 필독 도서 목록에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있었지만 <힌두 신화>는 포함되지 않아서 그런지 힌두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종종 영화와 게임에서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이나 등장인물들을 만나는 것처럼 힌두 신화의 신들도 의외로 익숙하실 거예요.
아마 주요한 3신의 이름은 다들 들어보셨겠지요.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와 질서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입니다. 또 인도 음식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코끼리의 머리를 한 가네샤라던가, 강의 여신 강가의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인도네시아의 국장이자 항공사 이름이기도 한 가루다, 절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야차도 힌두 신화의 등장인물이고요. 캄보디아의 압사라 댄스나 발리의 께짝 댄스도 모두 힌두 신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준 라마야나
힌두 신화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2대 서사시로 불리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입니다. <라마야나>는 악마를 물리치는 라마 왕자의 모험 이야기이고, <마하바라타>는 바라타 왕국의 후손들이 대권을 놓고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라마야나>는 흔히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와 비교되곤 합니다. 그만큼 훌륭한 동양의 서사시이자 고전이에요. <라마야나>의 기원은 BC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최근 연구를 통해 기원전 4세기 즈음에 지어졌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라마야나>는 인도를 비롯해 네팔, 말레이시아,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같은 아시아의 나라들로 퍼져나가면서 각 나라의 종교와 언어, 문화에 맞게끔 변형되어 받아들여졌습니다. 태국의 경우 현재 왕조인 라마 왕조의 이름을 <라마야나>에서 따왔고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회랑에 가면 라마 왕자가 악마와 전투를 벌이는 ‘랑카의 전투’ 장면이 새겨져 있지요. 중국의 문학작품 <서유기>의 손오공도 <라마야나>의 원숭이 장군 하누만이 모델입니다.
존경받는 주인공 라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10개의 머리를 가진 악마 라바나는 영생을 추구하며 고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의 고행에 감명받은 브라흐마가 라바나에게 영생 대신 변신의 능력을 줍니다. 그리고 어떤 신들도 그를 죽일 수 없으리라는 약속을 하지요. 라바나는 교만해져서 인간뿐 아니라 천신들까지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원숭이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게 되지요.
라바나가 처치 곤란이 되자 브라흐마는 비슈누를 찾아갑니다. 신은 라바나를 죽일 수 없으니 인간으로 환생해 라바나를 물리쳐달라고 비슈누에게 부탁하지요. 그래서 비슈누는 라마 왕자로 태어납니다. 훌륭한 인품과 활쏘기 실력을 갖춘 라마 왕자는 알고 보니 비슈누 신의 현신이었던 거예요.
랑카의 왕이자 악마들의 왕 라바나는 라마 왕자의 아내인 시타를 납치합니다. 라마 왕자는 시타를 찾으러 가는 길에 원숭이의 왕 수그리바와 원숭이 장군 하누만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라바나를 무찌르고 시타를 구합니다.
흡입력 있는 나라얀의 <라마야나>
소개해 드리는 <라마야나>는 인도의 소설가인 나라얀이 간결하게 압축해 재미있게 써낸 책입니다. 영어로 작품을 쓴 최초의 인도 문학가인 나라얀의 소설은 안톤 체호프, 윌리엄 포크너, 오 헨리, 플래너리 오코너 같은 작가들의 작품과 비견될 정도예요.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도 그렇지만, 나라얀의 <라마야나>도 흡입력이 굉장합니다. 인드라가 천 개의 눈을 가지게 된 이야기라던가, 원숭이 형제 발리와 수그리바, 하누만의 이야기 등이 액자 구성으로 소개되어 수많은 등장인물이 얽히고설키는 힌두 신화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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