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위한 시
왜 시를 읽어야 할까
시인을 흠모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시를 짓는 사람, 시를 읊는 사람이 참 멋져 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우리는 더는 시인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사람을 특별히 멋지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시를 읽는다고 말하면 고고하거나 고루한 사람은 아닐까, 낡은 시를 들먹이는 꼰대는 아닐까,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지나 않을까 생각합니다. 때로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경제적으로 무능할 거야,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일 거야, 이렇게 지레짐작하기도 하지요. 혹은 반대로 시를 읽을 시간이 있다니 먹고살 만한가보다, 혹은 연애라도 시작했나, 아직도 참 낭만적이구나,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아, 시는 왜 우리의 일상과 이토록 멀어진 걸까요. 어쩌면 시인의 현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015년의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전업 시인의 연봉이 214만 원이라고 합니다. 월급이 아니라 연봉입니다. 요즘도 시를 잡지에 기고하면 한 편에 5만 원, 많이 받아야 7만 원이라고 해요. 시간과 노력이 경제적 효용 가치로 환원되는 시대에 시는 얼마나 무용한지요. 왜 시를 왜 읽는지 조사하면 ‘입시를 위해서’라는 대답이 1등으로 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시를 읽어야 할까요. 최근 EBS에서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기획특강을 했습니다. 연사로 출연한 김용희 교수는 고진하의 <나무>, 김기택의 <흰 스프레이> 같은 시를 예로 들며 시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시는 순수한 유희이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인간의 본성을 일깨우며,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시를 읽어야 한다는 강의였지요. (유튜브에서 검색하시면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럿입니다.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의 말을 빌리면 “문학은 쓸모없는 것으로 쓸모 있게 하는 것”입니다. 시는 어떠한 이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럴 때 순수한 유희가 가능합니다. 시는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문학평론가인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의 4부에서 ‘시는 없으면 안 되는가’라고 묻습니다. “시가 그토록 대단한가. 그렇다면 시는, 있으면 좋은 것인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소설과 영화와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다면 시 역시 그렇다. 그러나 언어는 문학의 매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매체다. 언어가 눈에 띄게 거칠어지거나 진부해지면 삶은 눈에 잘 안 띄게 그와 비슷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계속 시를 쓰고 읽을 것이다. 시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시가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그 마음은, 없으면 안 된다.”라고 씁니다.
시인이자 문학동네 시인선의 책임편집자인 김민정은 어느 인터뷰에서 “시집에 목적을 묻는다면 애초에 시집은 만들어질 수 없다. 세상에는 돈에 앞서 존재해야 할 그 무엇이 있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희경 시인은 「누가 시를 읽는가」라는 책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가수이자 작곡가인 니코 케이스는 말한다. 우리에겐 “시를 할 권리가 있다”고. 그렇다. 우리에겐 ‘시’를 ‘함’으로써 더 나은 지금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인간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더 나은 모습에 대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누가 시를 읽는가. 질문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읽는다. 살아 있겠다고 선언하는 존재들이 읽는다. 만약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물어보고 답을 추구했다면, 그게 바로 시다!”
시대가 암울하고 불행할수록 역설적으로 시는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각박하고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더욱 시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감의 언어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공대생의 마음을 울린 시 강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지음, 휴머니스트
조지훈의 ‘사랑’이라는 시를 읽고는 가슴이 두근거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요즘엔 시 한 편 읽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왠지 시를 읽으려면 깊게 공부를 해야 할 것 같고, 은유나 비유에 통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정재찬 교수님이 이 책을 쓰셨나 봅니다. 지나간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추억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어떤 말보다 가슴을 후비는 욕 한마디를 시구절에 덧붙이며 우리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현대 시들을 해석해 주는 책입니다.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부제가 와닿습니다. 실제 강의에서는 종강이 아닌데도 수업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하지요.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다시금 가슴이 울리리라 확신합니다.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윤동주, 소와다리
최근 소와다리라는 신생 출판사에서는 초판본 시리즈를 출판해서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침체한 출판시장에서, 그것도 시집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과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당시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초판본의 표지, 오래된 서체로 인쇄된 한자가 세로로 찍힌 내지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일본 유학 중에 독립운동 및 한글창작 혐의로 체포되어 조사 과정에서 이를 부인하지 않고 겨우 스물일곱으로 옥중에서 요절한 청년, 생전에 시집 한 번 낸 적이 없던 윤동주 시인의 원초적 시어를 찬찬히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어내려가지 않더라도, 책장에 꽂혀 있으면 가끔 들춰보게 되는 그런 시집입니다.
쓸쓸한 날에 마음을 달래는 시 한 편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
김선경, 메이븐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요.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정말 그럴 때가」, 이어령)라는 느낌이 들 때,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들 때, ‘세상 일이 하도 섭하고 억울’'(「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나태주)하다는 느낌이 들 때 말입니다. 30년간 글을 쓰고 책을 만든 에디터이자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의 저자인 김선경 작가는 이런 느낌이 들 때마다 시를 읽으며 힘을 내곤 했습니다. 고단할 때 읽던 시를 서로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집을 엮었습니다. 시선집을 내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이 책이 사랑을 듬뿍 받는 이유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들을 보통의 눈높이에서 엄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로하는 시를 만납니다.
어렵지 않게 권하는 아름다운 시선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고은강 외 49명, 문학동네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문학동네시인선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128권째의 시집을 내고 있습니다. 일부러 가독성이 떨어지는 폰트를 사용해서 언어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고, 제목만 읽어도 감성 돋는 문장형 제목으로 뭉클하게 만드는 시집이지요. 시집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어 어울리는 감성을 골라 모으고 싶게 만듭니다. 2017년에 나온 100권 기념 티저 시집은 컨셉이 독특합니다. 101권부터 150권까지를 책임질 시인 50인의 시와 짧은 산문을 한편씩, 총 100편의 글을 실었습니다. 제목은 오병량 시인의 시 한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되는 경험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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