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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파라다이스를 찾아서

by 앰코인스토리 - 2019. 8. 27.

 

 

나의 조국 대한민국, 대학재학 시절엔 나라가 휴일도 반납하며 일하다 보니 중진국이 되었고 후배들의 노력으로 3만 불 시대가 열렸다. 보통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으니 누구의 삶을 부러워한 적도 없다. 그래서 현재 사는 이곳을 파라다이스라 부른다. 때로는 다른 파라다이스를 찾아서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어느 작가의 말에 동감하면서 비행기에 오른다.

 

이번에는 스페인 쪽이다. 가우디와 투우가 떠오르는데 어느 여행사를 수소문해도 투우를 구경하는 코스가 없는 게 아쉽다. 그러나 작년에 국회의원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이 스페인이고 ‘한국관광공사가 봄이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선정했다’고 해서 예약을 마쳤다. 경유지로 들른 두바이는 석유 덕으로 사막에 축구장의 250배나 되는 쇼핑센터와 국제금융 센터를 유치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세계 3대 음악 분수를 봐야 한다는 가이드의 홍보에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 5분간 두 번 펼쳐지는 쇼를 구경했으나 라스베이거스에 비하면 내 마음에는 다소 부족했다.
구엘 공원에서 만난 직선과 완벽한 원이 거의 없이 자연 그대로의 곡선을 살린 가우디 특유의 개성 넘치는 건축양식에 무한한 감동이 밀려오면서 마음마저 편안해졌다. 2026년에야 완공된다는 성가족성당 역시 직선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곡선이었으며, 한쪽 벽에는 예수의 처형 장면을 조각상으로 묘사해 신비감을 더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번 여행의 본전은 건진 기분이다.
이슬람 무어 왕조가 기독교에 굴복하면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물러날 테니 이곳만은 그대로 두라’고 했다는 알함브라 궁전은 스토리가 있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걸작이었다. 여러 이슬람 국가를 방문하고 그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교과서에 실린 ‘한 손엔 코란, 다른 손엔 칼’이라는 문구는 편향된 교육이었음을 실감했다. 언젠가는 가겠다고 점찍은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미하스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과 푸른 파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바다를 내려다보는 작은 마을이 흰색 벽과 분홍색의 지붕이 어우러져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는 프라도 미술관도 관람했다. 눈에 익은 고야와 렘브란트의 그림이 즐비했지만 감동이 일지 않아 심히 스스로 부끄러웠다.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경청하며 뚫어지게 그림을 주시했으나 너무 피로했다. 나의 DNA에는 미술품을 감상하는 심미안이라는 요소가 전무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돈키호테가 언덕에 있는 풍차를 보고 괴물인 줄 알고 달려들었다가 풍차 날개에 맞아 나가 떨어져 버린 에피소드의 풍차마을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다. <세비야의 이발사>로 알고 있던 이곳에는 두 가지의 명품이 더 있었다. 성당에서 만난 ‘죽어도 스페인 땅에 눕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관을 네 명의 왕이 짊어진 모습을 보고 만상에 잠겼다. 스페인 광장은 눈에 익은 직사각형이 아닌 원형에다 중앙에 그림 같은 반달형 다리가 있어서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들이나 길거리나 오렌지 나무로 뒤덮인 카탈루냐 지역을 지나, 올리브 나무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리스본을 둘러보고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 도착했다.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깎아지른 절벽 위의 빨강 등대가 수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마지막 날, 역사 깊은 톨레도의 구시가지를 꼬마 기차를 타고 돌자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10분을 못 넘긴 비였지만, 그 여운이 남긴 쌍무지개가 이별을 암시하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 부부를 믿고 동행해준, 고향으로 귀농한 친구 부부와 두 명의 와이프 친구분들! 건강이 허락한다면 또 떠나봅시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