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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민들레 홀씨


“엄마, 나 이거 한번 꼭 해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서관을 찾아온 20대의 청년이었다. 도서관 잔디밭에서 민들레 홀씨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린 꼬마가 아닌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라 잠시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같이 도서관을 찾은 엄마역시 아들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은 채 청년은 민들레 홀씨를 불어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얼굴 가득 번져 나갔다.
“사실 나 어린 시절부터 민들레 홀씨를 부는 거 꼭 해보고 싶었어요.” 청년은 마음속에 꼭꼭 숨겨 놓았던 비밀을 털어 놓는 것처럼 조근조근 말을 이어 나갔다. 청년의 엄마는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청년의 손을 잡고 황급히 잔디밭을 빠져나갔다. 청년이 빠져나간 자리 위에는 바람을 타고 민들레 홀씨는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문득 버킷리스트가 생각났다. 한동안 유명세를 탔던 단어이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의 목록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에는 눈을 감기 전까지 해 보지 못하고 마는 일들은 꽤 많을 것이다. 꼭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마음속에서만 꼭꼭 담아 둘 수밖에 없었던 일들은 누구나 몇 개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로소 돈이 생기고 시간이 허락할 때쯤이면 남들의 이목과 시선에 용기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도 하다.

 

중학교 도덕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구구절절한 체험담이 오늘은 더욱더 또렷하게 기억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라는 믿음이 있으셨기에 선생님은 배우고 싶었던 악기를 위해 자는 시간을 한 시간 줄이셨다고 하셨다. 그런 노력 덕분에 1년 후 선생님은 트럼펫으로 원하는 곡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실력을 쌓게 되셨다고 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게 된다면 조금 힘들더라도 그때 해보려고 최선을 다해 보라며 힘주어 강조해주셨다. 세월이 한참 흘러 그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때 선생님께서 하시고자 하셨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것보다 학원과 공부에 내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주말만이라도 학원을 보내지 말자는 법안을 내놓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좋은 학교를 거쳐야만 좋은 직장으로, 그래야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깨진 지 오래되었지만, 높아져만 가는 청년 실업률을 보면서 우리 아이에게 놀이터 대신 학원을 선호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엄마와 아빠가 아이 손 잡고 가까운 놀이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면 어떨까 싶다.

 

민들레 홀씨 청년의 해맑았던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 비록 해보고 싶은 일을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실천할 수 있어 아쉬움이 남았겠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오늘 하루만은 무척 행복한 하루였으리라. 나도 오늘은 잊고 살았던 내 꿈을 꺼내 봐야겠다. 그리고 하나하나 실천해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