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BS 스페셜 방송을 보게 되었다. 아이돌 스타였던 멤버들의 이야기였다. 아이돌 1세대 스타였다던 HOT 토니안부터 최근까지 잘 나가던 스텔라 가영까지, 많은 아이돌 가수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GOD, 신화, SES, 핑클, 소녀시대나 얼마 전 재결합했던 HOT와 젝스키스는 아직도 그 명성이 식지 않고 있지만 우후죽순 생겼났던 기획사들과 그 안에서 활동했던 가수들은 잠깐 반짝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멋진 의상과 춤으로 많은 팬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도 남모를 고통과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이 막바지로 진행될 때쯤, 그들에게 공통 질문이 하나 주어졌다. “언제 가장 행복했었나요?” 그들 대부분은 “무대에 등장하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무대에서 공연하던 그 3~4분간이 가장 짜릿했습니다.” “무대에 섰을 때 관객들의 그 많은 환호는 희열과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등의 대답을 했다. 모두가 무대에 서 있는 그 순간이 대체로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말이다.
문득 친구 한 명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게 되었던 죽마고우였다. 고등학교 때에도 같은 반을 두 번이나 할 정도로 친구로서 인연이 깊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수학을 참 좋아했다. 어느 날 문제집에서 참 어려운 문제를 찾아냈다며 나에게 한번 풀어보라고 내밀었다. 거의 30여 분을 끙끙거리며 씨름해 보았지만 전혀 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뒤에 해답지를 보자고 설득을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스스로 풀어 보겠다며 그 제안을 거부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친구는 쉬는 시간마다 그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환한 미소를 가득 안고 나에게 달려왔다. 드디어 그 문제를 풀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식을 풀어 가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풀이 과정을 마치고 정답을 찾아내자 그 친구의 얼굴에는 미소가 입가로 번져 나갔다. 그 친구가 느꼈던 희열과 전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냈을 때 짜릿함을 온몸으로 느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기분이다 하면서 방과 후 떡볶이를 자신이 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프로그램 말미에 진행자는 아이돌 스타에게 다시 묻는다.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 스타를 하시겠어요?” 대부분이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산이 좋아 험준한 산을 찾는 산악인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른다. “왜 산을 찾으시나요?” 그네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산이 좋아 가는 거지요.” 그렇다. 연습생들이 긴 시간 동안 고통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이돌 스타로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얻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더 큰 목적이라 생각한다.
죽마고우 친구가 안 풀리는 수학문제 하나를 가지고 사흘 밤낮을 씨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친구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발판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수학을 좋아하고 그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풀어낼 수 있는 그 순간을 즐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요즈음 삶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씩 들고 있는데 나도 순간의 짜릿함을 느껴 볼 수 있도록 내가 잘하는 무대는 무엇이 있을까. 부지런히 찾아봐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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