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천상의 목소리를 잃어버려 무기력해진 남편, 무려 아홉 명의 아이들, 옛날에 글 좀 썼지만 지금은 전업주부인 에버린의 하루일상을 보자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부터 됩니다. 외상으로 달아놓은 우유를 든 에버린을 화가 잔뜩 난 남편이 밀어뜨려 바닥을 피바다로 만든 장면만 봐도 그녀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전쟁터일 것 같을지 예상이 되는데요, 이상하게도 그녀는 행복해 보입니다. 영화 <프라이즈 위너>(2005)는 슈퍼마켓 응모 콘테스트에 여러 번 뽑힌, 당시 주부였던 에버린(줄리안 무어)의 삶을 영화화했습니다.
남편 켈리는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가수라는 꿈을 접고 공장에서 일하며 공허함을 매일 술로 달랩니다. 문제는 이런 습관 때문에 하루도 에버린이 편안하게 지낼 수 없어요. 경품으로 받은 가구 제품을 부수질 않나, 아이들 우유 먹일 돈으로 술을 사는 바람에 우유는 늘 외상으로 달아놓으며 살아가는 에버린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 에버린과 그녀의 가족의 모습
시대를 잘 만났다고 해야 하나요. 당시 1950년대부터 1960년대 미국에서는 슈퍼마켓 응모 콘테스트가 많았던 시대인 데다, 걸린 상금도 많은 편이었습니다. 에버린은 자신의 글재주를 통해 목돈이 필요한 순간 매번 콘테스트로 벌어들인 상금으로 메꿨습니다. 어느새 에버린의 가족에게는 콘테스트에 응모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상금은 주로 가전제품이나 현금으로 지급되었으나, 가끔 식품을 담아가는 특전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슈퍼마켓에서 식품이나 과자를 담아오는 것인데, 늘 먹거리가 부족했던 에버린의 가족에게는 큰 선물이었어요.
▲ 골라담기에 당첨되어 담기를 준비하는 라이언
하지만 남편 켈리(우디 헤럴슨)는 공허함에 술을 마셔대고 목돈을 벌어보고자 에버린 몰래 대출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에버린은 소중한 보금자리를 뺏기게 되고, 마지막 콘테스트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다음은 왜 켈리가 목돈을 대출했는가에 대한 이유가 잘 드러납니다.
에버린 :
When were you gonna tell me about the second mortgage?
2차 대출받은 이야기는 언제 하려고 했어?
켈리 :
It's due? I had a feeling that day might be coming up.
벌써 돈을 갚아야 하는 건가. 언젠가는 그날이 올 것 같았어.
에버린 :
Is there anything left?
남겨 놓은 돈 있어?
켈리 :
I was gonna pay it back without anyone ever knowing about it.
남몰래 갚으려고 했지.
에버린 :
Is there anything left?
돈 남았냐고?
켈리 :
No. It's all... gone.
없어, 다 써버렸어.
에버린 :
They're gonna repossess the house. This is my house.
집을 내놓아야 할 거야. 힘들게 마련한 내 집인데.
켈리 :
I just... ...felt like a drowning man. Never being able to catch up... I just wanted, for once, to have a few extra dollars in my pocket.
그동안 물에 빠진 것처럼 절망스러웠어. 남들 쫓아가느라 항상 바빴어. 한 번쯤 목돈을 손에 쥐고 싶었을 뿐이야.
에버린과 켈리 부부는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명은 사고로 잃어버리고 한 명은 재능으로 가계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버린은 꿈을 잃어버린 자의 공허함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잘 알기에 남편이 삶 내내 휘청거리고 흔들려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지요. 엄마는 지금의 삶을 후회하지 않느냐의 아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자식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답을 하는 것만 봐도 에버린이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처럼 느껴지다 feel like
자신이 잘하는 것을 접고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일하는 켈리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신발을 질질 끌며 무기력하게 걷는 켈리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막상 그런 느낌을 켈리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묘사되니 더욱 그 절망감이 또렷하게 느껴지네요.
I just... ...felt like a drowning man.
이 문장은 주어(I)+동사(felt)+like+보어(a drowning man)로 이루어져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해석합니다.
켈리가 에버린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집에서 콘테스트에 나가기 위해 글 따위나 쓰면서 편안히 있지 않냐고. 난 생계를 위해 꾸역꾸역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산다며 말입니다. 에버린이 켈리와 다른 점은 억울하고 희생한다는 느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지요. 오히려 에버린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려는 건강한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면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암울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그녀의 삶 속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출처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2022
글쓴이 김지현은
미드를 보다가 애니와 영화까지 영어의 매력에 홀릭한 여자다. 영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금도 뻔하지 않은 수업을 하려 불철주야 행복한 고민 중이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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