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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위하는 마음

by 앰코인스토리 - 2018. 10. 26.


같이 일하는 아저씨가 있다. 평소 명랑하고 붙임성이 좋아 친해지게 되었다. 나이가 우리보다 열 살 이상 많다 보니 형님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어, 성 씨에 아저씨를 붙여 ‘최 씨 아저씨’라고 부르곤 한다. 거리감이 있다며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압력을 넣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에 태어나 예의를 누구보다도 중시하는 우리로서는 형이라는 호칭을 쓰기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최 씨 아저씨는 30년 넘는 경력을 가지고 빠른 손놀림으로 일을 해오다 보니 주위의 평판도 좋다. 일이 끝나고 나면 힘든 하루의 피로를 풀고자 간단한 술자리를 갖게 되면 빠지지 않고 함께하면서 분위기를 이끌기도 하신다.
그런 최 씨 아저씨에게 최근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이 끝나기 무섭게 술자리를 마다하고 집으로 향하시는 것이다. 하도 이상해서 이유를 묻게 되었고, 아저씨는 차근차근 조목조목 얘기를 해주셨다. 부인께서 아프다는 것이었다.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다 보니 퇴근하고 나서 간호를 해줘야 한다고 하셨다. 낮에는 따님이 병실을 지켜야 해서 저녁에는 교대를 해줘야 하고, 저녁 9시가 되고 나서야 병실을 나선다고 한다. 술 좋아하고 농담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그 누구보다도 부인을 끔찍이 위하는 마음이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흰머리가 하나둘 생겨나고 주름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젊은 날 고생만 한 아내에 대한 사랑이 더욱더 불타오르고 있다는 말에 일터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동안 마음속에 가지고만 있었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이제야 겉으로 표현하고 계신 것은 아닐지. 여건이 안 되어서 비좁은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큰마음 먹고 아내가 퇴원하면 햇볕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도 하신다고 하시니 아저씨가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저씨의 반전매력을 알게 되다 보니 아저씨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국어사전을 펼쳐보게 되었다. ‘위하다’는 동사의 뜻을 찾고 싶어서였다. ‘물건이나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다’라는 예쁜 뜻이 담겨 있었다. 최 씨 아저씨가 부인을 향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면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다는 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을 것 같다.
문득 창가 위에 놓인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바쁜 일과 때문에 돌보지 못했던 선인장 위에 어린 선인장이 크게 자라 있었다. 어린 선인장이 커지고 색이 뚜렷해진 만큼, 어미 선인장은 본래의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다면 어미 선인장에 붙은 어린 선인장을 서둘러 떼어내 옮겨 심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 씨 아저씨의 아내를 위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나니 어미 선인장과 어린 선인장을 떼어 놓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신 딱딱하게 굳은 화분 안에 물을 듬뿍 뿌려 주었다. 아울러 어미 선인장과 어린 선인장 모두 함께 오래오래 살라고 창문을 열어 시원한 공기를 맛보게 해주었다. 나를 늘 좋아해 주는 가족, 친구, 친지, 은사, 지인들을 한번 떠올려 본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문자라도 해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