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国为什么会产生志怪小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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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소설로서의 신화’에 이어 ‘지괴소설(志怪小说)’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조비(曹丕, 187~226)가 편찬하였다고 전해지는 지괴소설집인 『列異傳』에 실린 《宋定伯》 이야기입니다.
남양사람 송정백(宋定伯)이 젊어서 밤길을 가다가 귀신을 만났다. 정백이 귀신에게 물었다. “누구요?” 귀신이 대답하였다. “나는 귀신이오.” 이번에는 귀신이 정백에게 물었다. “그럼 그대는 누구요?” 정백은 거짓으로 “나도 귀신이오.”라고 대답했다. 귀신이 정백에게 물었다. “어디 가는 길이오?” “완 시장에 가는 길이오.” 이에 귀신이 말했다. “나도 완 시장에 가려던 참이었소.” 몇 리쯤 갔을까, 귀신이 정백에게 말했다. “걸음걸이가 너무 느리니 서로 업어 주기로 합시다.” “그거 좋지.” 귀신이 먼저 정백을 업고 몇 리를 가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대는 너무 무거워서 귀신이 아닌 것 같아.” “난 죽은 지가 얼마 안 돼 몸이 무거운 거야.” 이번에는 정백이 귀신을 업었는데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서로 번갈아 가며 업어주었다. 정백이 다시 말했다. “나는 죽은 지가 얼마 안 돼 귀신이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모르겠소.” “우리들은 사람의 침을 제일 싫어하지.” 이들은 계속해서 같이 갔다. 가는 도중에 물을 만나자 정맥은 귀신에게 먼저 건너라고 했다. 귀신이 물을 건너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정백이 물을 건너는데 텀벙텀벙 소리가 났다. “어째서 그렇게 소리가 요란한가?” “죽은 지가 얼마 안 돼 물을 건너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 완 시장에 도착할 즈음, 정백은 갑자기 귀신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는 꼭 붙잡았다. 귀신이 소리를 지르고 캑캑거리며 풀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정백은 못 들은 척했다. 정백이 완 시장에 도착하여 귀신을 땅에 내려놓으니 귀신은 양으로 변했다. 정백은 그 양을 팔아 치우고 다시 귀신으로 변할까 봐 침을 뱉고는 1,500냥을 받아 떠났다.
『列異傳』, “南陽宋定伯, 年少時夜行逢鬼. 問曰: “誰?” 鬼曰: “鬼也.” 鬼問: “卿復誰?” 定伯欺之, 言: “我亦鬼也.” 鬼問: “欲至何所?” 答曰: “欲至宛市.” 鬼言: “我亦欲至宛市.” 共行數里, 鬼言: “步行太極, 可共迭相擔也.” 定伯曰: “大善!” 鬼便先擔定伯數里. 鬼言: “卿太重, 將非鬼也?” 定伯言: “我新死, 故重耳.” 定伯因復擔鬼, 鬼略無重. 如其再三, 定伯復言: “我新死, 不知鬼悉何所畏忌?” 鬼曰: “唯不喜唾. ” 于是共行. 道遇水, 伯因命鬼先渡. 聽之, 了無聲. 定伯自渡, 漼漼作聲. 鬼復言: “何以作聲?” 定伯曰: “新死不習渡水耳, 勿怪. ”行欲至宛市, 定伯便擔鬼至頭上, 急持之. 鬼大呼, 聲咋咋索下. 不復聽之, 徑至宛市中. 着之, 化爲一羊. 便賣之, 恐其變化, 唾之得錢千五百乃去.”
[주석] 김진곤 편역, 『이야기 小說 Novel-서양학자의 눈으로 본 중국소설』, 예문서원, 2001, pp.12-13. 원문과 번역 참고.
1. 志怪小說과 그 등장배경
‘志怪’란 말은, 문자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를 기록한다.’라는 뜻입니다. 위의 송정백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혹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산해경> 등의 소설로서의 신화에 이어 지괴소설은, 내용과 구성면에서 신화와 비교하자면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비록 후세의 소설과 비교할 때 아직 초보적인 단계일지라도 중국 소설사에서 상당한 발전이며 주목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괴소설이 등장하고 유행하였던 위•진•남•북조(위•촉•오 > 5호16국 > 남북조, 221∼589)는 시기적으로 보면 한(漢)나라가 멸망하고 수(隋)나라가 들어설 때까지 360여 년간의 역사 구분을 말하는데, 수많은 나라가 일어섰다 망하는 이른바 대혼란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마련인데요, 리후이잉(李輝英)의 『중국소설사(中國小說史)』에 보면 지괴소설의 등장 배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대의 신선고사의 대량생산은 진한秦漢 이래의 신선神仙 사상을 통한 방사方士(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의 선전, 그 후 또 제왕들의 추종과 신뢰하는 바(진시황, 한무제의 장생불로의 신약 제조방법에 대한 심취 등)가 대체로 모두 중요한 원인으로 기원하였다. 최고 위치의 제왕은 인간의 모든 영화와 부귀를 마음껏 누렸으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수명을 길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명을 연장하고 재난과 화를 피하기 위해 음양오행과 일체의 무술巫術, 도교의 화를 면하는 변법을 서로 결합하였으며 이런 이유로 방술과 도교가 크게 흥성하였다. 불교가 동한東漢(후한)시기에 중국으로 들어와 윤회, 인과응보, 복덕과 죄악 위주의 소승小乘불교로 안착하여 중국 민간 도교의 부록符籙(부참符讖: 길흉화복 등을 비밀로 적어놓은 글)과 제사에 안성맞춤이었는데, 음양무술과 결합하여 신귀괴이적 설법이 상당히 유행하게 되었으며,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고 소설에 영향을 주었다. 이는 위진남북조부터 수 대에 이르기까지 귀신지괴소설(지인志人소설 포함)의 형성을 만연하게 하였다. 위진 사대부의 연단복약煉丹服藥(불로불사약의 제조에 관한 일종의 연금술 및 복용)의 풍토에 이르기까지 역시 이것과 관련이 있다.
[주석] 李輝英 編著, 『中國小說史』, 香港東亞書局出版,1970, p.42. 第三章 <魏晉南北朝隋的鬼神志怪小說>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 상황 아래, 일종의 도피처로서 도술을 연마하고 추종하였는데 당시의 권력층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만큼 혼란한 정국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지괴소설의 등장은 그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위의 宋定伯 이야기는 원래의 『列異傳』에는 宗定伯으로 실려 있었으나 중국 지괴소설의 대표작 간보(干寶, ?~351)의 『수신기(搜神記)』에 이르러 宋定伯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럼 이번 호에는 중국 지괴소설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다음 호에는 『搜神記』의 내용 중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서 여러분에게 한번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기억해두기 : 역사 인물
인물 : 조비(曹丕)와 삼조(三曹)
소개 : 위의 『列異傳』을 편찬하였다는 조비(曹丕, 187~226)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중국의 삼국시대(위•촉•오) 위(魏나)라 조조(曹操, 155~220)와 그의 정실부인인 변부인(卞夫人)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입니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났으며, 이는 아버지인 조조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한 말기에 헌제(獻帝, 181~234)에게 황위를 선양(禪讓) 받아 국호를 위로 고치고 초대 황제인 위문제(魏文帝)가 되었으며, 아버지인 조조를 위무제(魏武帝)로 추존합니다. 그리고 조비의 동생 조식(曹植, 192~232)이 있는데, 조식 역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그 정도가 오히려 조비를 능가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인 조조가 한때는 조식을 너무 총애한 나머지 조비가 적장자임에도 불구하고 태자 자리를 조식에게 준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식은 머리가 더 똑똑하였지만 술을 좋아하고 때로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조조의 눈 밖에 남으로써 결국 조비가 황위에 오르게 됩니다. 황제에 오른 조비는 늘 동생인 조식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죽이려 하였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칠보시(七步诗)》입니다. 조식을 불러들인 조비는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어 보이면 죽음을 면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조식은 아래와 같은 시를 읊었습니다.
煮豆持作羹,漉豉以为汁 콩을 삶아 갱을 만들려면, 여과하여 즙으로 만들어야 하네
萁在釜下燃,豆在釜中泣 콩깍지는 솥 아래서 타고, 콩은 솥 안에서 눈물 흘리네
本自同根生,相煎何太急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건만, 서로 들볶음이 이리도 급한지
[주석] 七步诗(魏晋曹植古风), 百度百科
요약하자면, 한 부모에서 나서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인 것을 한탄한 것인데, 이에 조비도 느낀 바가 있어 조식을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비도 문학적으로 뛰어났는데, 현재 전해지는 시는 약 40수 정도로 특히, 7언시(七言詩)인 《연가행(燕歌行)》이 유명합니다. 그 내용은 당시의 보편적인 사회 상황인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석] 연가행
▲ 三曹 (汉魏政治诗坛三领袖)
사진출처 : 百度百科
삼조(三曹)라는 말은 조조, 조비, 조식을 일컫는 말로써, 건안문학(建安文学, 196∼220)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른바 풍골(風骨,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생기와 감화력 및 언어 표현상의 간결하고 굳센 특징을 말한다)의 특징이 있으면서 상당히 완성도 있는 시문을 완성하였는데,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한말 시문학의 성과 면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WRITTEN BY 송희건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배움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로써 인의를 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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