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우울한 날들이 있다
마음속 슬픔이를 진지하게 바라보기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들이 찾아옵니다. 슬며시.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우울이 맴돌다가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어떤 우울은 꽤 오래도록 주위에 머뭅니다. 가볍게 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점점 무거워집니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다가 우울한 줄도 몰랐는데 어느 날 문득 눈물이 뚝 떨어집니다. 마음을 짓누르는 우울의 압박에 소름이 끼칩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우울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당장 정신과에 가봐야 하는 걸까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울은 정신병이 아닙니다. 우울은 정신질환입니다. 정신질환과 정신병은 다릅니다. 똑같은 ‘정신’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영어로 정신질환은 ‘mental illness’라고 하고, 정신병은 ‘psychosis’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읽으면 ‘멘탈’과 ‘사이코’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신질환’에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안장애와 같은 비교적 덜 심각한 병이 포함되고, ‘정신병’에는 정신분열증을 뜻하는 조현병, 망상장애, 환각과 환청이 있는 심각한 병적 상태가 포함됩니다. 우울증은 몇몇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 정신병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우울이라도 아픕니다. 아픈 건 아픈 겁니다. 똑같이 감기에 걸려도 누군가는 자고 일어나면 거뜬하지만, 누군가는 며칠 동안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끙끙 앓습니다. 우울하면 그만큼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지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꽤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영화 「올드보이」에 나왔던 문장이 떠오릅니다. “웃어라, 모든 사람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던 기억도 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밝은 모습, 웃는 모습, 잘나가는 모습만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오히려 더 꼭 끌어안아 주어야 할 내면의 어두움, 찌질함, 복잡함, 우울함, 괴로움, 불안함은 꾹꾹 눌러 감춰버립니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꼭 기쁘고 즐겁고 밝고 명랑한 감정만 드러내어야 하는 걸까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다섯 가지 감정이 캐릭터로 등장하지요. 기쁨이(즐거움)는 주인공 라일리를 즐겁게 하고, 버럭이(분노)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대응합니다. 까칠이(혐오)는 해로운 것들로부터 보호해주고, 소심이(공포)는 다치지 않게 해줍니다. 그런데 슬픔이는 걸핏하면 주인공을 슬프게 만들고 엉엉 울게 놔둡니다. 처음엔 슬픔이가 등장할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 정도로 이런 민폐 캐릭터가 다 있나 싶습니다. 하지만 슬픔이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게 해주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며,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합니다. 슬픔을 겪은 후의 기쁨은 더욱 충만해지고, 감정들은 더욱 깊고 다채로워집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마음속 슬픔이를 인정하고 다독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마음속 우울은 우리가 외면했던 슬픔이와 비슷합니다. 우울을 못 본 척하면 행복해지기 어렵습니다. 최근 서점에 우울을 주제로 한 책들이 늘고 있습니다. 더는 우울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나 봅니다. 오래전부터 책에는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었지요. 이를 독서치료(비블리오테라피, Bibliotherapy)라고도 합니다. 무더운 날에 더 우울해지지 않도록 시원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들을 권합니다.
내 안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지음, 흔
정말 눈길을 끄는 제목입니다. 그리고 끄덕이게 되지요. 모순된 감정이지만 이런 기분을 많은 사람이 느꼈나 봅니다. SNS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베스트셀러가 된 책입니다. 저자는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만, 대부분은 심각하게 우울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 저자가 정신과 선생님과 만나 나누었던 대화들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꽤 여러 면이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쪽 면을, 누군가에게는 저쪽 면을 보여주곤 하지요. 때론 잘 가려놓고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도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저자의 이야기에 대입하면서 불안하고, 우울하고, 질투하고, 괴로워했던 나의 감정들을 돌아보며 위로받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 만나는 따뜻한 글귀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전문우 지음, 누림북스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는 그냥 피곤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일에 대한 즐거움과 의욕을 잃고,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졌습니다. 점점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예민해져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우울증 증상이 심각했던 시기에 저자는 책을 읽었습니다. 마음의 병이나 사회적 편견에 관한 책, 세계 명작에서부터 우울증을 정면으로 다룬 책, 영화, 뮤지컬, 노랫가사, 시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 세상을 저버릴 생각까지 했던 저자는 신기하게도 우울증에서 벗어났습니다. 스스로 독서치료를 한 셈이지요. 저자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이 위로받았던 구절들을 엮어 책을 썼습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울증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가족과 친구, 연인들을 위한 책입니다.
나이가 드는 만큼 더욱 균형감각이 필요할 때
「어른이 처음이라서 그래」
하주원, 팜파스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와 비례해서 지혜가 자라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우리가 미처 배우지 못했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하나씩 일깨웁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삶이 상당 부분 결정되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른들은 자신의 성격, 어린 시절, 지금까지 해왔던 경험들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펼쳐질 삶이 뻔하다고 여기고, 삶은 더는 달라질 게 없다고 체념하지요. 하지만 스무 살에게도 일흔 살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생각을 바꾸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물론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성장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조금 딱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읽다 보면 쏠쏠한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오늘은 내 마음이 먼저입니다」
웰시 지음, 레드박스
요즘 보기 드문 ‘진지툰’입니다. 만화는 만화인데 내용이 허투르지 않습니다. 마음을 그리는 심리상담사로 활약하고 있는 웰시 작가는 감정이야말로 내 상태를 가장 잘 알려주는 신호라고 말합니다. 더는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감정의 끄트머리를 콕 집어내어 가만히 바라봐 주라고 독려합니다.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들여다보면 정말 내가 몰랐던 내 감정이 툭 튀어나와 내 옆에 앉아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꺼내놓고 한참 바라보면 이게 어떤 감정인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잘 나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기분이 들 때,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자꾸 상처받을 때, 보장 없는 미래를 위해 끝없이 오늘을 희생시키는 거 같아 답답할 때, 만화를 통해 그려진 크고 작은 고민거리를 읽다 보면 조금 더 홀가분해진 나와 만나게 됩니다.
글쓴이 배나영은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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