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가 이 나이가 되었지만, 오늘도 그러다가 10분 늦게 63빌딩의 프런트에 도착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승강기 앞에서 중견 탤런트 임○○ 씨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80대 부부를 에스코트하여 57층으로 오르던 그분은 깔끔하게 생긴 외모답게 친절하게도 58층을 눌러주고 축하 인사도 해주었다.
사돈과 인사를 나누기도 바쁘게 사회자는 잃어버린 10분을 되찾으려는 듯 단상의 의자로 몰아세웠다. 우리 앞으로는 회갑연이나 돌잔치에서 익히 보아왔던 과일과 케이크 등 장식품이 사진발을 좋게 받도록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머리와 옷매무새를 챙길 시간도 없이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소리는 요란하고, 난생처음으로 권총처럼 생긴 것으로 불을 붙이고 끄느라 여러 번을 반복했다. 축하 노래를 듣고 자식들의 삼 배도 받았다.
손주 차례가 되니 그새 지루했던지 머리를 숙이고 몸을 꼬면서 “절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며 며느리 주위를 맴돈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한 번의 절을 받았다. 사회자가 말하는 삼 배는 ‘일 배는 낳아주어서 고맙다는 뜻이고, 이 배는 키워주신 데 대한 보답이며, 마지막은 효도하며 모시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절한 후에 받은 축하인사 답례로 아들 부부에게는 “100살이 아니라 120살까지는 사시라고 해야지.”하고, 딸 부부에게는 “손주 하나 안겨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가끔 아내에게 “오늘 밤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는데, 120살이라니.” 앞으로 두고두고 책잡힐 생각을 하니 후회막급이다.
올 초에 며느리가 “아버님, 칠순 준비를 어떻게 할까요?” 묻기에 “여행 경비는 한 푼도 안 받을 것이니 잔치는 30명을 생각하고 호텔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100시대라고 해서 그런지 칠순 잔치를 하는 분들이 적어서 사돈 부부만 초청한 조촐한 행사가 되었으나, 태생이 음주와 가무에는 끼도 흥도 없는 몸이라 나쁘지는 않다. 아들은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피곤한 몸이라 행사를 준비하기에는 무리고, 며느리도 직장과 애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도 명소를 골랐으니 고맙고 사랑스럽다. 사돈께서 “칠순을 축하하며, 건강과 장수를 위하여!”를 외치면서 와인 잔을 부딪치며 중식을 시작했다. 주식으로는 스테이크와 바닷가재가 나왔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 연회를 즐기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비친 한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손자손녀와 태권도 겨루기를 끝으로 추억으로 남을 한 페이지를 접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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