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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종합선물세트

by 앰코인스토리 - 2018. 6. 8.


명절을 다가오면 기대하는 선물이 한 가지 있었다. 혹은 서울에서 누군가 온다고 전화를 받고 나면 내심 설레었던 때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게 되는 친지나 지인의 얼굴이 반가운 것도 있었지만, 사실 더 기다렸던 것은 그분들 손에 쥐어진 선물이었다. 약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성향을 맞춘다고 비싼 술을 들고 들어오면 우리 형제들은 눈썹을 아래로 깔고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고,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쌓인 네모난 상자를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뻐했다. 손뼉을 치며 환호를 했다.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 선물, ‘종합선물세트’였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마법 램프가 부럽지 않았다. 껌, 사탕, 비스킷, 캐러멜, 초콜릿, 스낵까지 우리가 좋아하는 게 총 망라되어 있었다. 꼬마였던 우리는 기쁨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네모난 상자 안에 각가지 먹을거리가 가득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분배의 시간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종합선물세트를 가지고 한바탕 싸웠던 기억이 있었기에, 손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엄마가 심판으로 나서곤 하셨다. 네 명을 모두 불러모았다. 둥그렇게 앉게 하고는 종합선물세트를 가운데 두고 분배를 시작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 공정히 하려고 엄마는 참 많이 노력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초콜릿을 꺼내셨다. 모두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나만 조금 주는 건 아니실까? 내가 형인데 나한테 조금 더 주겠지? 서로 자신 멋대로 상상하면서 나한테 조금 많은 몫의 초콜릿이 나누어지길 바랐을 것이리라.

엄마는 현명하셨다. 자식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라는 것에 겉표지를 뜯고 초콜릿을 둘러싼 속표지도 뜯은 후 조각조각 자르셨다.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뭘 하시려고 저러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개수로 나누어 주기 시작하셨다. 불평의 말이 나올 수 없었다. “손에 오래 두면 초콜릿 녹는다. 봉지에 넣어둬!”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사탕도 캐러멜도 커다란 봉투를 뜯어서 모두 같은 개수로 나눠주셨다. 종합선물세트에 가득 찼던 먹거리가 거의 바닥을 보이자, 대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봉투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종류별로 풍성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과자를 잡고는 한마디를 하셨다. “이건 엄마 거다.” 우리에게 크게 인기 없는 과자였기에 우리 네 명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팽팽했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누구 하나 불만이 없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었다.

명절이면 가게마다 명절 대목을 보기 위해 종합선물세트를 어른 키 높이까지 쌓아 올렸던 풍경이 기억난다. 그때는 종합선물세트가 참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그 종합선물세트가 다른 품목으로 바뀌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참치나 기름 세트는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값비싼 선물세트를 가지고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은 설렘은 일지 않는다. 이게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는 것일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