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딸랑! 주머니 안에서 백 원짜리들이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고 있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발걸음과 보조를 맞추듯 울리는 소리는 꽤 상쾌하다. 지금은 무겁다는 이유만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동전이지만, 주머니 가득 100원, 500원짜리가 있으면 행복감이 절로 생길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100원짜리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버스를 한번 타려고 해도 100원짜리 가지고는 엄두를 낼 수 없고,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를 집으려 해도 100원짜리 한 주먹 가득 계산대 점원에서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100원짜리도 한때 참 귀하신 몸일 때가 있었다. 1원, 5원짜리 동전이 있을 때는 더더욱 큰 형님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어린 꼬마들에게 100원짜리 서너 개면 종일 오락실에서 진을 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심부름을 하고 받은 몇 개의 100원짜리는 문방구에 가면 많은 것을 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야 할지 사방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면, 조바심 난 문방구 주인아주머니는 “요즈음 인기 있는 로봇이다.” 은근슬쩍 들이밀었고 그 짧은 순간 갈등과 고민이 반복되었다. ‘과연 뭘 사지?’ 미적거리는 것이 미안해서 더 미루지 못하고 주인아주머니가 골라준 장난감을 집고 나서 100원짜리 몇 개를 건넬 때면 끝없이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내 돈 100원짜리….’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학년이 올라가면 엄마는 우리 사 남매에게 연초에 선물을 주셨다. 빨간색 돼지저금통. 큰 돼지저금통은 꽉 채우는 게 지루할 수 있다는 소신이 있으신 엄마 덕분에 중간 크기의 돼지저금통을 선물로 받곤 했다. 가장 먼저 돼지저금통을 꽉 채운 사람에게는 100원짜리 몇 개의 보너스도 있을 것이라 하셨다. 지폐가 귀했던 때라 대부분이 100원짜리 동전이 주를 이루었다. 처음 100원짜리가 돼지저금통 바닥에 떨어지면 참 큰소리를 냈다. “땡그랑! 땡그랑!”
언제 저 넓고 깊은 저금통 안을 꽉 채우지!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명절 때 받은 용돈을 넣고, 심부름으로 받은 100원짜리 넣고, 참고서 사고 남은 동전을 넣다 보니 돼지저금통도 점점 배가 불러 올랐다. 돼지저금통을 반 정도 채우고 나서는 흔들어 보면서 참 기뻤던 때도 있었다. 동생 몰래 동생 돼지저금통을 보며 어느 정도 채워졌나? 눈대중을 해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쯤 가득 찬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르게 되었을 때 벅차오르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쏟아지는 동전들을 보며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참 열심히 노력했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사 남매의 가득 쌓인 동전들을 보면서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셨던 엄마의 얼굴은 아직도 선하다.
이제는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편의점에서도 남은 동전은 포인트로 적립되고, 모바일 페이가 일상화되면서 동전을 딱히 지니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면 뭔가 쥘 수 없는 허전함은 남아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땡그랑 울리던 그 동전들의 소리는 자꾸만 그리워진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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