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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테마 피플] 에비타, 성녀와 악녀 사이를 부유하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0. 7.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María Eva Duarte de Perón, 1919년 5월 7일 ~ 1952년 7월 26일), 아니 에비타(Evita)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것 말고는 뚜렷한 직책이 없었는데도 오늘날 세계의 많은 사람이 에비타를 기억한다. 살아 있을 때 이미 아르헨티나의 신화가 되었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과 마돈나가 출연한 영화를 통해서 세계적 전설로 남은 에비타를 소개한다.


▲ <사진 1> 에바 페론

출처 : australfilms.com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라고 노래하는 여인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뮤지컬 <에비타>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곡이니.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애칭이고, 앞의 곡은 칭송과 욕설을 한몸에 받았던 그녀의 심경을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달콤한 부와 명성을 누렸으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그녀의 짧고 화려한 삶을 들여다보자.


부와 명성은 내가 끌어들인 게 아니에요. 세상은 내가 바랐다고 여기지만, 그것들은 허상이에요. 약속했던 해결책이 되지 못했죠. 해답은 항상 여기 있었어요. 나는 당신들을 사랑해요. 당신들도 나를 사랑하길 원하죠.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And as for fortune, and as for fame I never invited them in. Though it seemed to the world they were all I desired. They are illusions. They're not the solutions they promised to be. The answer was here all the time. I love you and I hope you love me. Don't cry for me Argentina.



동영상 <Don't Cry For Me Argentina - Madonna - Lyrics>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XYymFWsBxk0)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세상에는 사랑받고 싶어


1919년,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가 태어났다. 에바의 아버지는 작은 마을 로스톨도스의 부유한 농장주인 후안 두아르테였다. 그러나 에바의 어린 시절은 풍족하지 못했다. 어머니 후아나 이바르구엔이 아버지의 정식 아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바는 후안과 후아나 사이의 넷째 딸이었고, 아래로 여동생이 한 명 더 태어났다. 에바와 자매들은 아버지에게 법적인 딸로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에는 버림을 받았다. 어머니와 다섯 딸은 ‘후닌’이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지내야 했다.


▲ <사진 2> 물방울 모양의 수영복을 입은 에바

출처: en.wikipedia.org


소녀 시절의 에바는 어머니 쪽 친척들의 도움으로 살며 학교에 다녔다. 예쁘장한 외모의 에바는 그에 걸맞은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학교 연극이나 연주회에서 빛을 발했고, 아예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1935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진출해 모델, 연극배우,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나간다. 에바 페론에게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얼굴을 무기로 밑바닥을 전전하던 가난하고 악착같은 소녀 이미지가 덧씌워 있다. 그러나 절반 정도는 사실이 아니다. 에바는 스무 살 무렵 이미 유명한 연예인으로 자리 잡았었고,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후안 페론과 에바의 첫 만남은 1944년에 이루어진다. 당시 후안은 아르헨티나의 노동부 장관이었고 같은 해 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 해에는 6,000명 이상이 숨진 산후안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후안 페론이 기획한 이재민을 위한 모금회에 에바가 참석했다. 스물다섯의 아름다운 아가씨는 단숨에 후안을 사로잡았고, 이듬해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한다. 후안에게는 사별 후 두 번째 결혼이었고 그는 에바보다 스물네 살이 많은 중년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천사


에바 페론이 된 에바는 남편과 함께 대통령 선거를 준비한다. 후안 페론은 육군 대령 출신으로, 군사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노동조합이 그의 주요한 지지 기반이었고, 에바와의 결혼으로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게 된다. 이때부터 에바는 어린 시절의 애칭 ‘에비타’로 널리 알려진다. 후안은 다른 군부 세력들의 견제를 받아 체포되는 시련을 잠시 겪고 나서 1946년 과반이 넘는 득표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된다.


▲ <사진 3>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는 에바

출처: australfilms.com


후안과 에바 페론의 집권기에 대한 평가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다. 페론 정권은 1947년 7월 아르헨티나의 외채를 모두 갚았다. 페론 집권기 동안 병원 4,000여 개, 학교 8,000여 개를 설립했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했다. 이 시기에 빈부 격차가 줄어들고 양성평등이 확립되었다. 에바는 이 기간에 영부인이라기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부통령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에바 페론 재단을 만들어 각종 자선사업을 지원했고, 여성페론당을 통해 여성운동에도 이바지했다.


빛나는 영광 뒤에는 그림자도 짙다. 페론 집권기 이후 경제 대국이던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페론 부부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라는 구호가 독재를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페론 부부는 스스로 자신들을 우상화했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그러던 1952년, 후안 페론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에바는 자궁암과 척수백혈병으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그녀 나이 불과 만 33세의 일이다.


동영상 <Eva Peron's Final Speech (1951)>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Dr7ymWtnHWc)



죽어서도 남편의 후처까지 대통령으로 만든 여성


에비타의 죽음은 아르헨티나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장례는 한 달이나 치러졌고, 에바의 시신은 미라로 만들어졌다. 후안 페론은 에바의 죽음 이후 빠르게 몰락했다. 페론 부부의 허세와 부패가 서서히 드러난 탓일까. 후안 페론의 탄압에 분노한 가톨릭계가 군부와 손을 잡았고, 군부에 의해 대통령에서 쫓겨난 후안은 1955년 망명길에 올랐다. 새 군부는 살아 있는 후안 페론뿐 아니라 죽어 버린 에바 페론도 무서워했다. 그녀의 시신은 탈취되어 여기저기를 떠돌았고, 나중에는 남편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에바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아르헨티나의 정치경제는 점점 도탄에 빠졌고 호시절에 대한 막연한 향수는 더욱 강해졌다. 후안 페론은 망명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1973년에 다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된다. 그의 새 아내인 이사벨 페론이 부통령으로 지명되어 옛날의 에바처럼 후안과 함께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지 열 달도 안 돼 후안 페론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이사벨이 그 자리를 잇는다. 이사벨은 국민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남편의 전처인 에바의 시신을 대통령 관저로 옮겼다. 그러나 이사벨 페론은 다시 쿠데타로 대통령직에서 2년도 안 돼 물러났다. 그제야 에바 페론의 시신도 24년 만에 가족 묘지에서 쉬게 되었다.


▲ <사진 4>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

출처 : wikimedia.org 


‘불꽃 같은 삶’이라는 물린 문구가 에바 페론의 일생만큼 어울리기도 어려울 것 같다. 사생아, 밑바닥 삶, 연예인, 영부인, 짧은 생애, 그리고 죽어서도 이용당한 시신까지, 뭇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다. 에비타는 세상의 사랑을 받겠다는 야심이 있었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에 따르는 노력을 했다. 자신을 업신여긴 사람들에 대한 복수에 가차 없었고, 당시 남미와 유럽 사교계의 여왕답게 사치를 즐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아르헨티나의 아이들, 빈민과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거룩한 악녀’ 또는 ‘비천한 성녀’라는 모순된 설명이 잘 어울리는 것은, 살펴본 바와 같이 그녀의 삶 자체가 모순을 품고 있어서다.


에비타처럼 극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삶 대부분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그다지 일관되지 않은 편이다. 어느덧 한 계절이 넘어가고 있다. 삶의 모순과 화해하며 자신에게는 겸손해지고 타인에게는 너그러워지는 가을 되시길.


동영상 <1951-1952 The Final Year of Evita Peron>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4JjZ3VEp8mw)



글쓴이 김희연은 _ 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다. 사회, 문화, 경제 분야에 두루 걸쳐 갖가지 종류의 글을 쓴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서 늘 고마운 마음을 품은 한편으로, 쓸데없는 글로 인해 웹이나 인쇄매체에 들어가는 종이와 바이트, 그리고 독자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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