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습니다. 가족 또는 개인이 운전과 정비를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어지간한 봉급생활자라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쌉니다.”
포드 자동차의 예전 경영방침을 잘 말해주는 이 유명한 슬로건은, 생전에 헨리 포드가 어떤 기업가적 정신으로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한 자동차 왕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발명은 물론 노동과 시간, 분업화를 통하여 이윤 추구의 극대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그는, 사업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헨리_포드
헨리는 1863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부근의 디어본이라는 마을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가난과 굶주림을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해 온 가족이었지만, 헨리가 태어날 무렵에는 이미 디어본 일대에서 알아주는 토지 자산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헨리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두 가지 큰 만남의 사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증기 자동차를 처음 보게 된 것과 아버지로부터 시계를 선물 받은 일이었습니다. 시계가 흔치 않았던 때에 시계 속의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쉴 틈 없게 돌아가는 것을 본 헨리 포드는 호기심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깊은 인상은 훗날 그가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며 노동력을 극대화하는 포드주의 생산 시스템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떠나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디트로이트에서 수습 기계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취직한 곳에서는 일주일 만에 해고를 당하였습니다. 공장의 업무를 단순하게 고치는 것만으로도 작업 효율이 증대되고 인력을 감축하여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바람에,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것이지요. 그때의 경험으로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노동조합을 창의력을 가로막는 집단으로 여기며 평생 불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처음 보았던 증기 자동차의 매력으로 헨리 포드는 증기기관에 대해 좀 더 배울 수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큰 드라이독 기계공장으로 직장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간 뒤에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갖고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잡지를 꾸준히 읽었습니다. 당시 독일의 니콜라우스와 고틀리에프가 개발한 가솔린 엔진에 대해 접하고, 자신도 언젠가 가볍고 조그마한 가솔린 엔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다루었던 증기 기관과는 다르게 가솔린 기관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전기에 대한 지식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래서 다시 짐을 싸 들고 디트로이트로 향합니다. 그때는 결혼한 아내와 함께였습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에디슨 조명회사에 취직하여 퇴근 후에는 가솔린 엔진 개발에 몰두하였습니다. 회사에서도 좋은 기술력으로 인정을 받아 본사의 주임기사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포드와 에디슨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에디슨은 누구보다도 포드의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지지하고 격려해주었고, 훗날 자동차로 거부가 된 포드는 고마움으로 에디슨의 초기 실험실을 그대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모든 비용을 자신이 내어 에디슨의 전구발명 50주년을 기념하는 빛의 축제를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포드_모터_컴퍼니
1896년 6월의 어느 날 새벽, 집 뒤뜰 실험실에서 끙끙대던 헨리는 드디어 자신이 직접 만든 2기통짜리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포드1호’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00년대 초기만 해도 미국에서 500여 개가 넘는 자동차 제조회사가 생겨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상황이었기에 아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까닭이었겠지요. 자신이 만든 가솔린 엔진 장착 자동차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동차 제작자 겸 카레이서였던 윈튼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업자들에게 카레이싱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헨리는 이것을 기회로 여겨 그와 경주해 보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은 40마력의 강한 엔진 자동차를 가진 윈튼이 헨리의 26마력짜리 2기통 자동차를 가뿐히 이길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헨리 포드의 승리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투자자들이 헨리에게 모여들었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처음 새운 회사 ‘헨리 포드(Henry Ford Co.)’였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공동으로 새운 기술자 때문에 투자자들과 갈등을 겪다가 결국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와 결별하게 됩니다. 그 후 석탄 상인이었던 맬컴슨과 손잡고 또다시 회사를 설립하여 큰 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부자를 위한 고급형 자동차를 만들기를 원했던 맬컴슨과의 의견 충돌로 또다시 회사를 나오게 됩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포드_모터_컴퍼니
그 후, 그는 계속 자신이 만족하고 추구하는 자동차가 완성될 때까지 실험을 멈추지 않았고, 모델 A, B, C, F, K 등 여덟 가지 모델을 만들면서 마침내 1908년 10월 1일 포드자동차 T형 모델을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흔했던 비포장도로도 거뜬하게 달릴 수 있는 성능의 자동차였지요. 사람들에게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헨리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 지향했던 자동차에 대한 그의 생각, 바로 값싼 자동차를 만들어 어지간한 중산층 봉급자도 살 수 있도록 단가를 낮추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로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바로 ‘포드주의’였습니다. T형 모델 한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생산해서 생산단가를 줄이고 한 기계에서는 한 가지 부품만 생산 조립하게 하는 철저한 분업화 과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포드_모터_컴퍼니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시간과 노동을 철저히 저당 잡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점심시간도 화장실 가는 시간을 포함해 딱 15분으로 제한하고 근무시간 중에 휘파람을 불거나 말하는 것도 엄격히 금하고 이를 감시하기 위해 내부 감시자들을 두기도 했습니다. 감시자의 눈을 피해 사람들은 일명 ‘포드 속삭임’이라는 대화법으로 대화하기도 했는데.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복화술로 대화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작업장 내부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기도 합니다. 특히, 아이러니 한 일은 포드는 자신의 회사 노동자들은 부업이나 겸업을 금지했는데요, 포드 자신도 젊은 시절, 받은 월급이 적어 하숙비조차 감당하지 못할 때 퇴근 후에 그의 주특기였던 시계를 수리하며 부업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벌곤 했었는데 그것을 잊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현대 문명인 자동차를 통하여 한결 빨라진 생활권과 편리함을 선물해준 핸리 포드. 그와 동시에 컨베이어 벨트에 묶여버린 인간과 시간이라는 근현대사회의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주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지금 여러분이 내고 있는 대가는 무엇인가요.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은 올해, 여러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글쓴이 한지숙은
글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믿는 자유기고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거울 대신 키보드로 표정 연습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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