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엄마와 가까운 마트에 갈 기회가 생겼다. 이것저것 살 것이 많아서 짐꾼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집까지 걸어오게 되었는데, 마침 양말이 여러 켤레가 놓인 상점을 지나게 되었다. “양말도 사야 하는데….” 말꼬리를 흐리며 이 양말 저 양말을 훑어보셨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셨는지 오래 머물지 않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가 잘 가시던 전통시장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단골 양말가게를 지나게 될 때쯤 ‘양말을 사야 하는데….’하던 엄마의 혼잣말이 떠올랐다. 지갑에서 2,000원을 꺼내 손에 쥐고 양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때는 여름이라 통풍이 잘되는 양말이면 좋겠다 싶어 발등이 시원한 양말로 몇 가지를 골랐다. “누구 주려고?” 후덕한 인상을 하신 할머니의 물음에 “엄마께 드리려고요.” 하니 “그러면 그거 괜찮아. 좋아하실 거야.” 하신다. 여자 양말은 처음 골라 보는 거라 고민이 되었는데 주인 할머니의 그 말에 꽤 안심이 되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때마침 방문을 열고 나오셨고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양말을 건넸다. “이게 뭐야?” “양말이요. 시장 지나다 엄마 생각나서 몇 개 사 봤어요.” 까만 봉지 안에 있는 양말을 꺼내 보시며 “양말이 시원하겠는걸!” 얼굴 가득 환하게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비싸지는 않지만 선물이었음에 기분이 좋으셨을 것이고, 또 하나 엄마 마음에 드는 양말로 골라 왔다는 데에 한 번 더 기쁘셨을 것이리라.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생일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어느 날, 나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친구 집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친구 부모님이 장사하러 나가신 탓에 집은 나와 친구만의 차지가 되었다. 라면도 끓여 먹고 과자도 사서 같이 먹으며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가 대뜸 “너 생일이 며칠 안 남았지?” 한다. 전혀 예상 밖의 질문에 당황을 하면서 답을 하게 되었다. “응!” 친한 친구도 아니었기에 나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선물 줄게.” 책상 서랍을 뒤지더니 작은 물병을 꺼내 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비싼 건 아닌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다. 오래 간직해!” “알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지 주머니에 넣은 그 물병을 만지작만지작하며 왔다. 만지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처럼 여러 번 비비고 나면 짠 하고 지니가 나타나 원하는 소원을 모두 들어줄 것만 같았다.
선물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되었다. 친구한테 받았던 작은 물병이 한동안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듯, 엄마에게 건넨 양말도 꽤 오랜 시간 엄마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줄 거라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비싸고 좋은 물건만이 좋은 선물로 기억되는 요즈음, 진정한 선물은 마음이 담기고 사랑을 전하는 매개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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