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한여름 아이들에게는 특권이 주어진다. 여름방학! 물놀이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엄마와 아빠와 해수욕장도 갈 수 있으며, 시원한 계곡에 발 담그고 맛있는 수박을 먹을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신나는 여름방학 나와 친구들은 특별한 모험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중2가 되어 맞이한 여름방학이었다. 중3이 되면 고등학교 입시 준비로 여름방학을 책상과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간을 비교적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중2의 여름방학을 이용하기로 했다. 친구 두 명과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과연 무얼 해보면 좋을까, 고민에 빠졌다. 내린 결론은, 강화도 한 바퀴 완주였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5대 섬으로 크기가 꽤 큰 편에 속했던 터라, 도보로 도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자전거였다. 우리 셋은 모두 동의하고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오기로 했다. 나도 부모님께 우리의 의지와 기백을 알리고 우리가 하고픈 일에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를 하셨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첫째, 2차선을 따라 중학생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먼 곳까지 여행한다는 것에 찬성을 할 수 없고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이었다. 둘째,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강화도 해안도로가 깔리기 전이었기에 도로 편이 녹록지 않았다. 행여 폭우를 만나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뜨거운 열정이 만들어 냈던 특별한 여름방학 계획이 그렇게 사그라들어갈 때쯤, 한 친구가 이런 제안을 했다.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가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떤 친구의 이름이 호명될지 귀를 쫑긋 세워 보았다. ‘ET’ 손가락으로 유명했던 친구의 이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가서 다른 곳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 그때야 나도 다른 친구도 그 전학 간 친구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였다. ET 손가락 친구의 전화번호는 자신에게 있다며 전화를 걸어보고 찾아가도 되는지 의견을 묻겠다고 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그 친구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고맙게도 그 친구와 친구 어머니께서 놀러 오는 것을 흔쾌히 승낙하셨고, 반나절 자전거 여행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놓여 있어 나를 포함한 친구 두 명도 부모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완행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라고 했지만, 시골이다 보니 한 정거장의 거리는 마을 두세 개를 지나야 나오는 거리라 만만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등하교를 위해 밟았던 페달이 그렇게 가벼웠던 적은 없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에겐 특별한 여름방학이 되어버렸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 때문에 평탄한 길을 달릴 때보다 두 배는 힘들었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다 보니 체력이 바닥날 지경이었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어버렸고,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어디 쉬어 갈 곳이 없을까 하여 여기저기 찾고 있는데, 학교가 보였다. 아담한 초등학교였다. 군 글짓기 대회에 나갔다가 들어보았던 학교 이름이었다. 직접 볼 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단 수돗가를 찾았다. 시원한 수돗물을 틀어 땀범벅이 되어버린 머리에 시원하게 물 한 바가지를 끼얹고 싶었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 찾은 수돗가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살맛 난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수도꼭지를 열자 시원한 물줄기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36. 5도 이상 뻘뻘 끓던 온몸이 빠르게 냉각되는 기분이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머리카락을 말리지도 않고 다시 길을 떠났다. 요깃거리로 가져온 초콜릿은 녹아서 흐물흐물해졌고, 어머니가 가면서 먹으라고 싸주신 달달한 참외 한 개씩을 손에 들었다. 또 한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렸다. 오랜 시간 동안 여행으로 말수도 줄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자연의 향기와 꽃나무, 그리고 사람들의 풍경은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방향을 꺾어 왼쪽으로 10여 분 더 달려서 드디어 초등학교 옛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친구는 큰 길가까지 나와 반겨주었다. 시원한 얼음이 담긴 물병을 옆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특별한 여름방학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학창시절에 한 번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것은 누구에게나 로망이다. 비록 전국을 달리지는 못했지만, 용기를 내서 먼 길까지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추억이 되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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