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두 명의 테크놀로지스트
집적회로 IC 최초발명가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
▲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
사진출처 : https://goo.gl/x0ft7Y
1983년 처음 나온 휴대전화는 지금에 비하면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흔히 ‘벽돌폰’이라고 불리기도 했었지요. 지금의 휴대전화와 비교해보면 조금 우스꽝스러운 크기의 모습인데요, 휴대전화가 등장한 지 3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눈부신 IT 기술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최초로 개발하여 상용화했던 ‘마틴 쿠퍼’는 미래의 휴대전화는 더는 휴대전화가 아닐 수 있으며 사람의 귀 안에 심는 전화기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칩’을 귀 안에 심어 그런 일들이 가능해진다는 것인데요, 전자산업의 혁신적 발전의 계기가 된 트랜지스터 발명과 집적회로 IC (Integrated Circuit)의 발명이 없었다면 이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 집적회로 IC
사진출처 : https://goo.gl/m2zev5
잭 킬비 (Jack Kilby, 1923~2005)와 로버트 노이스 (Robert Noyce, 1927~1990)가 바로 이런 일들을 가능케 만든 발명의 주인공들입니다. ‘집적회로 발명가’라고 하면 이 두 사람을 함께 거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킬비가 노이스보다 6개월 정도 앞서서 집적회로 원리를 발표하긴 했지만, 노이스는 킬비보다 한 층 더 완성도 높고 실용성 있는 집적회로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한동안 ‘집적회로 최초 발명자’라는 타이틀을 놓고 발명품 특허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친이 아마추어 무선 기사들과 협력해 고객들과 종종 통화하는 모습을 보았던 킬비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전자공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1950년 위스콘신 대학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58년 그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될 TI에 입사하게 됩니다. 바로 그곳에서 집적회로를 발명하게 되는데요, 신입사원은 여름휴가가 없었던 회사의 규정상 킬비도 여름휴가를 얻지 못한 채 출근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억울한 일이기도 할 텐데요, 1980년 킬비는 모 잡지 인터뷰에서 이때를 회상하며 집적회로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모두가 휴가를 떠나버리고 사방이 조용하던 그때쯤이었다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 잭 칼비의 도면 스케치가 담긴 노트
사진출처 : https://goo.gl/Uia802
▲ 잭 킬비가 만든 최초의 집적회로
사진출처 : https://goo.gl/IMbDh4
1959년 킬비는 반도체 공정을 이용해 소자들을 한 개의 게르마늄 칩 위에 집적하고 작동시키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하고, 그해 2월에 특허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개발한 방법은 칩 위의 부품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알루미늄 선을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대량 생산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비슷한 시기에 집적회로 연구를 하던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는 부품을 회로에 집적 결합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나타났습니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던 벨 연구소의 쇼클리와 결별한 뒤 노이스는 1957년 말, 동료들과 함께 페어차일드 회사를 만들게 됩니다. ‘실리콘밸리’ 타운의 역사가 쓰이기 시작한 셈이지요. 그곳에서 노이스는 동료들과 함께 실리콘 산화물을 이용해 막을 입히면 외부의 오염을 크게 차단해 예민한 회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실리콘 산화물 코팅에 홈을 내서 전선을 이으면 트랜지스터 사용에서 발견되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리콘 블록의 홈을 저항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증명해내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듭 실험하여, 마침내 1959년 1월, 노이스는 노트 4페이지를 가득 채운 집적회로의 그림을 완성하게 되지요.
▲ 로버트 노이스 집적회로
사진출처 : https://goo.gl/myhwUr
▲ 로버트 노이스 특허 대표 도면
사진출처 : https://goo.gl/TZ69bL
비슷한 발명 시기 때문에 긴 법정 다툼이 있었지만, 이는 개인 간의 감정싸움이 아닌 각자 속한 회사 간의 분쟁이었기에 결국 두 회사는 서로의 권리와 명예를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특허권을 공유하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이후, 노이스는 동료인 ‘무어’와 자신의 이름을 따 ‘노이스-무어 일렉트로니스’를 설립했다가 이름이 ‘잡음이 많다’라는 뜻으로 들릴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1968년 회사명을 ‘인텔(Intel)’로 바꿉니다.
1983년 TI에서 공식 은퇴한 킬비는 그 이후로도 컨설팅 협력을 계속하며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다양한 전자기기 발명으로 60여 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의 기술상인 과학훈장과 기술훈장을 동시에 받은 몇 안 되는 과학기술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킬비와 노이스의 집적회로 개발은 20세기 최고의 발명 중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반도체 산업발전의 진정한 개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기려 킬비에게 2000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었습니다. 노이스는 1990년에 사망해 수상의 영예는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킬비는 노벨물리학상 수상 연설에서 노이스의 성과를 잊지 않고 언급하여 지켜보았던 많은 사람에게 훈훈한 마음을 안겨주었습니다.
“엔지니어의 동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바로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라고 말하며 과학자보다는 엔지니어로 불리길 원했던 킬비처럼, 노이스 역시 ‘리스크에 친숙한 사람들’이란 뜻으로 테크놀로지스트로 불리길 원했다고 합니다.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동시에 최고의 기술 동반자였을 두 사람.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의 도전 정신은 어려움과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엔지니어들의 멋진 모습입니다.
글쓴이 한지숙은
글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믿는 자유기고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거울 대신 키보드로 표정 연습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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