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 방학 방학에 대한 기쁨은 채 1주일을 가지 못했다. 시골에서 방학은 방안에서만 보내기엔 무척이나 답답하고 지루했다. 하지만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엄마는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면 1주일 동안 골골해야 했고, 눈밭을 헤매고 다니다 보면 양말이며 바지며 두꺼운 외투까지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기 위해서는 찬 바람을 뚫고 30여 분을 걸어야 했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면 주로 찾는 곳이 집 앞에 쌓아 올린 낟가리 자리였다.
추수가 다 끝난 밭에는 겨울철 소의 먹잇감으로 주기 위해 볏짚을 집처럼 쌓은 낟가리가 있었다. 겨우내 소들에게 먹여야 했기 때문에 꽤 높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 낟가리의 높이가 높다 보니 찬바람은 막아주고 해가 드는 양지에서 햇빛을 쐬고 있노라면, 군불을 땐 온돌방처럼 따스했다. 혼자면 심심할 것 같아서 잘 놀고 있는 동생들을 꼬셔서 데리고 나가게 되었고,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흰둥이도 안아서 낟가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며칠 전 많은 눈이 온 탓에 대지는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고, 연속되는 영하권 날씨에 눈이 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낟가리의 양지바른 곳은 사정이 달랐다. 햇살이 오랫동안 비춘 탓일까? 눈이 얼다 녹다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진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길이도 다양하고 굵기도 서로 달랐다. 동요 고드름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고드름 안은 수정처럼 맑고 깨끗했다. 장난꾸러기 동생들은 신이 나서 고드름을 뚝뚝 꺾어 서로서로 칼싸움을 했다. 하지만 서너 번 부딪히자마자 부러져 땅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나도 하나 가장 작은 고드름을 잘라 우리 흰둥이에게 보여 주었다. 강아지는 맛 나는 먹거리를 인양 고드름을 이리저리 핥았다. 그 모양이 참 귀여워 보였다. 어느새 동생들도 고드름을 똑똑 잘라 입 안에 넣고 오도독오도독 깨물고 있었다. 막냇동생이 건네는 고드름을 받아 나도 깨물어 보았다. 아무런 맛도 없었지만 깨물면 깨물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올해 최강한파가 찾아 왔다고 TV에서는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얼마 전, 눈이 온 탓에 어느 집 처마에는 작은 꼬마 고드름이 얼어있었다. 눈 구경이 쉽지 않은 요즈음이라 고드름 보기가 어려운데, 참 오랜만에 보게 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낟가리에서 보았던 그 맑디맑은 고드름은 아니겠지만, 그 모양만은 변함이 없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고드름 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고드름의 추억이 오늘은 또렷해진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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