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영화로 만들어진 문학상 수상작들, 오락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소설들

by 앰코인스토리 - 2016. 6. 15.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서점가가 들썩거립니다. 「채식주의자」가 3일 만에 25만 권이 넘게 팔려나갔지요.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그런데 궁금해집니다. 팔려나간 25만 권의 책은 지금까지 몇 권이나 실제로 독자들에게 읽혔을까요. 너도나도 읽는다니 나도 한번 읽어볼까, 이런 마음으로 덥썩 「채식주의자」를 사 들고 왔다가 슬그머니 내려놓으신 분들이 꽤 많으리라 짐작합니다. “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니까 잘 안 읽히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읽어야겠다.”, “음, 공대생이라 그런가. 난 역시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는 신문기사들의 수만큼, 1분에 10권씩 책이 판매된다는 흥분된 숫자놀음만큼, 주위에서는 수많은 좌절의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당연히 어렵지요. 아직 한글도 못 뗀 유치원생에게 “이 책이 그렇게 재미있데!” 라며 「해리 포터」 시리즈를 권한들 읽을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책을 읽힐 때는 단순한 그림책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글이 더 많은 책으로 나아갑니다.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글로 쓰여 있다고 해서 누구나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던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하룻저녁에 다 읽고 독서토론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독서에는 내공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조금씩 읽어 나가야 해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열 권씩 읽는 것보다는, 약간 어렵지만 시간을 들이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책을 한 권이라도 찬찬히 읽어야 내공이 길러집니다. 평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라던가, 「한국단편문학선」을 즐겨 읽던 사람이라면 「채식주의자」도 술술 잘 읽히겠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요. 책을 사 보신 많은 분이 읽기 어렵다며 투덜거린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조금씩 읽어보면 좋겠네요.


어떻게 하면 「채식주의자」가 끌어낸 독서의 열기를 꾸준하고 즐겁게 이어가 볼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이야기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들은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들이기 때문이지요. 영화를 이미 보았든 아직 보지 못했든 상관없어요. 똑같은 이야기이지만 두 시간 이내로 압축해야 하는 영화의 서사는 몇 날 며칠을 읽어 내려도 한없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소설의 서사와는 다르지요. 만약 영화로 접한 소설이라면 소설을 읽는 재미가 더욱 쏠쏠할 겁니다. 영화로 보긴 봤는데 별로였던 기억이 있더라도, 책으로 보는 이야기는 또 다를 겁니다.


소설이 갖는 스토리의 힘을 빌려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은 많습니다. 「오만과 편견」이나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려 보세요. 소설로는 아주 짧은 이야기인 데다 낯선 땅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 속 배우의 친근한 얼굴과 독특한 캐릭터를 떠올리면 굉장히 흥미진진해지잖아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던가 「셜록 홈즈」 시리즈도 소설로 읽으면 그 맛이 무척 다릅니다. 소설을 훌륭하게 압축시켰다고 평가받는 몇몇 영화들도 있지요. 「반지의 제왕」이라던가 「호빗」 같은 대작들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상상한 그 이상을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만들어 보여주었으니까요. 


책 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소설의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뭔가 이상하고 앞뒤가 들어맞지 않아서 실망했던 경험을 갖고 계실 겁니다.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들은 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 만족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요. 아마도 텍스트로 된 소설의 섬세한 묘사와 풍부한 감성, 복잡다단한 구성을 좁은 스크린 안에서 한정된 시간 속에 축소해서 담아 놓으니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라던가,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같은 경우는 영화보다 소설이 힘이 센 작품들이지요.

 

원작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접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영화의 오락적인 기능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와 만나 데이트를 할 때 연극이나 뮤지컬보다 편하게 볼 수 있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개봉관을 사수하고, 두 시간 동안 팝콘을 우적이며 저렴한 비용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아쉬운 건, 영화보다 훨씬 더 근사한 원작 소설을 놓치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와는 또 다른 감동, 또 다른 즐거움, 또 다른 사색의 장을 열어줄 깊이 있는 소설의 세계로 안내하지요. 「모킹 제이」나 「메이즈 러너」, 혹은 「핑거 스미스」 같은 작품을 기대하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세계 3대 문학상인 노벨문학상, 공쿠르상, 맨부커상을 받았던 작가와 작품 중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친숙한 소설들을 먼저 골랐습니다. 상을 탔으니 작품성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오락성도 겸비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 &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역, 해냄출판사 


이 정도는 써야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작품이에요.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입니다. 199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2010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이 들어보신 작품일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실명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정부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눈이 먼 자들을 모아 정신병동에 가두기 시작하지요. 그러나 나중에는 경찰이나 군인들까지도 눈이 멀어요. 도시의 사람들은 음식을 찾으러 길거리를 헤매고 아무 데서나 배설을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창피할 것도 없습니다. 개들은 길거리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뜯어먹지요. 모두가 비인간적으로 미쳐가는 세상 속에서 실명하지 않은 단 한 명이 있습니다. 모두가 눈이 먼 세상에서 눈을 뜬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어쩌면 권력을 쥘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눈이 보인다는 걸 들키면 짐승 같은 사람 무리 속에서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라마구는 소름 끼치도록 인간적인, 혹은 비인간적인 전개로 소설을 끌고 갑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도 꽤 흥미롭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눈이 멀어서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인간의 추악한 면모와 진정한 인간성에 대해 통찰했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모두가 눈을 뜨고 있긴 한데,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대해 묻습니다. 4년 전, 모두가 ‘백색 실명’을 경험한 바로 그 도시에서 ‘백색 투표’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눈 뜬 자들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권력을 향해 공격을 시작하지요. 두려움에 떨던 정부 당국과 정치가들은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문의 백색 혁명과 그 주동자를 색출하려 합니다. 두 책 모두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의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는 대작입니다. 

그에 비해 동명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숨이 나옵니다. 원작과 비교하면 턱없이 역부족이었다는 평을 받았지요. 네, 소설을 읽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실망했던 영화입니다. 그러니 원작 소설을 읽어보세요. 웬만한 영화를 볼 때보다도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02년 맨부커상 수상작이자 이안 감독의 영화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때까지도 계속 의심했습니다. 이것은 진짜 실화일까, 아니면 실화를 바탕으로 약간 덧붙인 이야기가 아닐까, 설마 경험하지도 않고 이렇게 촘촘한 묘사가 가능한 걸까, 하고 말이지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책에서 주장하는 이야기가 실화라고 믿으며 책을 덮었던 1인입니다. 그만큼 강렬하고 흡인력이 대단한 소설입니다. 줄거리는 간단해요. 열여섯 살 인도 소년 ‘파이’가 언제 자신을 잡아먹을지 모르는 사나운 벵골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와 함께 구명보트에 몸을 싣고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이지요. 줄거리가 너무 단순하다고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노인이 바다에 나가 청새치를 잡아 돌아오는 길에 상어에게 고기를 다 빼앗겨 버린다’고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겠지만, 눈물 나는 노인의 사투라던가, 존엄한 인간에 대한 뭉클한 경외심은 이런 줄거리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파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성장 소설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인간의 믿음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굉장히 다층적인 소설입니다. 파이라는 소년의 표류기 속에 모든 존재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담겨있습니다. 

영화 <파이 이야기>는 이안 감독의 탁월한 영상미가 돋보였다는 평을 받습니다. 영화 속의 영상은 무척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다만 원래 소설에서 굉장히 다층적으로 그려내었던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이 화려한 영상 속에 묻힌 듯해서 아쉬웠지요. 영화보다 훨씬 깊고 넓은 소설 속의 파이를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1984년 공쿠르 상을 받은 ‘제인 마치’의 「연인」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역, 민음사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영화, 혹은 영화 포스터이지요.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거 야한 영화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바로 그 영화, <연인>입니다. 영화를 촬영할 당시 실제로 십 대 소녀였던 제인 마치의 표정은 반항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섹시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니, 대체 언제 적 영화야!”라며 웃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끄집어냈습니다. 아마 이 영화의 원작이 이렇게나 유명한 소설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요.

소설 「연인」은 프랑스 현대 문학의 대표적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입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을 베트남에서 보냈던 작가는 실제로 존재했던 중국인 남자와의 광기 어린 사랑을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로 되살려 냈습니다. 영화는 제인 마치가 분한 프랑스인 소녀와 양가휘가 분한 중국인 남자와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 순차적으로 사건을 진행시키지만, 소설은 베트남에서의 어린 시절과 프랑스로 귀국한 이후의 시절, 노년에 이른 현재의 시간이 뒤섞여 그려집니다. 1984년, 작가의 나이 일흔 살에 쓴 소설이라서 그런지 사랑과 욕망, 상실과 결핍에 대해 더욱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도 가볍지 않습니다. 가족의 문제, 광기, 가족 간의 억압, 폭력, 사회적인 강자와 약자의 관계, 백인과 유색인종, 전쟁, 시대적 배경, 공간적 배경, 빈부의 격차, 나이의 차이, 성과 사랑, 이런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생생한 삶이 소설 속에서 펼쳐집니다.

소설은 그해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35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판매되었습니다. 1992년 장자크 아노 감독이 제인 마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제작해 또 한 번 세계를 들썩이게 했지요.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 혹은 연인과 함께 두근거리며 영화 속 사랑의 몸짓에 흠뻑 빠져들었던 젊은 시절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면, 이번엔 소설을 권합니다. 노년의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사랑은 그저 육체적인 관능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쓴이 배나영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추천 책읽기 이벤트 이번 호에 소개된 책 중에 읽고 싶은 책과 이메일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신 독자님 중 선발해 책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