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나라 음악쌀롱] 응답하라 1988, 그 시절을 듣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전 세계가 우리나를 주목하고 또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 쌍문동 골목길에 사는 다섯 가족의 코믹 이야기에 울고 웃었던 겨울을 기억합니다. 언제부턴가 명작드라마를 마구 쏟아내는 채널을 켜고, 금요일과 토요일만 되면 TV 앞에 앉아 그 시간을 숨죽여 기다리던 저녁. 지금은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끝으로 종영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 열쇠고리를 문방구에서 샀던 게 아득한 기억인 제겐, 드라마의 모든 장면이 영화 속 필름처럼 선명한 추억으로 새록새록 다가왔습니다.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 역대 올림픽 최고의 성적을 쏟아내며 종합순위 4위를 기록! 개회식 시청률이 89%, 폐회식 시청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온 국민의 관심이 온통 올림픽에만 집중되었던 1998년. “반갑구만~반가워요~반갑습니다~실례합니다~!” 등의 유행어를 쏟아내던 그때 시절, 88년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영구 없다!”라는 유행어로 자타공인 코미디 일인자였던 심형래 씨 주연의 《우뢰매5》를 비롯해 《다이하드》 류의 외화들이 극장가를 점령했으며, 《달려라 하니》, 《아기공룡 둘리》 등 만화영화산업의 열풍도 화려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달려라 하니》는 주제가를 가수 이선희 씨가 직접 불러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잠시 감상해보겠습니다.
영상출처 : https://youtu.be/gWJuKVGdC7Y
88년도 기준, 당시 일반 시내버스 요금은 140원이었고, 택시 기본요금은 600원, 지하철 요금은 200원이었다고 하니, 27년이 지난 지금 물가와 비교하면 시내버스는 1,300원으로 9.2배, 택시요금은 3,000원으로 5배, 지하철 기본요금은 6.2배가 인상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우리나라 사람이 (2015년 기준) 1인 연간 76개를 먹는다는 라면의 가격은 88년 당시 100원에 불과했고 짜장면은 7~800원대였다고 하니, 새삼 엄청난 물가 차이가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100원을 주면 80원짜리 라면을 하나 사고 남은 20원으로 캔디를 사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100원을 가지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설탕 듬뿍 발라진 캐러멜(우리끼리는 캬라멜)을 10개나 살 수 있었던 어마어마한 돈이었지요. 종류별로 5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두 개를 살 수 있었던 100원이란 동전의 가치가 그만큼 가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조금 부유했던 친구들은 사발면을 사 먹기도 했었는데, 사실 끓여 먹는 라면이 더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짜장면은 1년에 한 번 먹기도 귀한 음식이기도 했는데요, 필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날에 난생처음 짜장면을 먹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지금은 딱히 먹을 게 없을 때 짜장면을 시켜먹는다 생각하니 세월이 새삼스럽긴 하네요. 앞서 소개해 드린 이 시대 때 굉장히 유명한 만화영화였던 《아기공룡 둘리》에서 추억의 명곡 <라면과 구공탄(일명 라면송)>이 탄생하기도 했는데요. 둘리를 보신 분이라면 다들 추억할만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꼬불~꼬불~꼬불~꼬불~맛 좋은 라면!” 기억나시나요? 가물가물하시다고요? 한번 들어보세요.
영상출처 : https://youtu.be/_58Sa2O7reU
88년도 이 시대에는 음악도 중흥기를 맞이합니다. 정통 트로트 음악에서 밴드 위주의 음악들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장착한 댄스곡 등의 장르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기인데요, 드라마 《응답하라 1998》에서 보이던 앳된 미소년의 얼굴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88년이 낳은 스타, 지금은 고인이 된 신해철 씨를 데뷔하게 한 《mbc 대학가요제》 열풍이 엄청났었지요. 당시에 심사위원이었던 슈퍼스타 조용필 씨가 전주만 듣고도 이 노래를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할 만큼 파격적인 음악성을 보여준 명곡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수상소감을 묻는 말에 ‘빨리 집에 가서 엄마 얼굴을 보고 싶다’던 그의 순수한 멘트가 기억이 납니다.
한편, 가요제의 쌍두마차로 불리던 《강변가요제》에서는 이상은 씨의 <담다디>가 대상을 차지했는데요. 만 18세의 한양대 연극영화과 학생이었던 그녀는 178cm의 큰 키에 중성적 외모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노래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고요, 이듬해 1989년에는 <담다디>라는 같은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을 정도니 정말 폭발적인 인기였네요. 이때 금상을 받았던 참가자가 가수 이상우 씨였는데요, 최종 두 팀까지 남았을 때 이상우 씨가 진행자 뒤편에 서 있는 바람에 수상자 이름을 봤는데 ‘이상○’라고 적혀있어서 본인이 대상인 줄 알았다는 후일담도 전해집니다. 대상을 받은 이상은 씨랑 이름이 너무 비슷하긴 하네요. 강변가요제 곡 중 이렇게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은 곡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메이징한 히트곡인 이상은 씨의 <담다디>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영상출처 : https://youtu.be/QfOcoGa7BEI
1992년도 댄스음악의 한 획을 그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댄스음악의 대명사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 헌데 댄스음악의 중흥기는 그 보다 앞선 1988년도에도 이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필자 개인적 의견이지만,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댄스 여가수인 김완선 씨는 당시 열여덟이라는 나이에도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뛰어난 가창 실력으로 특히나 춤에 관한 한 독보적이었던 가수였습니다. 그에 필적할만한 남자 솔로 댄스가수는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 불리던 박남정 씨가 있습니다. 기역 니은(ㄱㄴ) 춤을 유행시키며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널 그리며>의 열풍은 당시 인기 연예인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책받침을 온통 도배할 정도였는데요, 안무와 수려한 외모, 퍼포먼스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춘 그 시대 최고의 댄스가수라 자부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럼 두 가수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한번 감상해 보실까요!
영상출처 : https://youtu.be/bs7BxOAC43c
영상출처 : https://youtu.be/kIObeRmP7Dk
음악나라 음악쌀롱의 첫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나요? 다음 호부터는 그달의 이슈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음악과 녹음 관련된 에피소드를 잘 섞어서 조금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글로 여러분들을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 곧 다가올 설 명절도 즐겁게 보내세요!
글쓴이 연하남 양동옥은
현재 음악나라 녹음실을 운영하는 현역 작곡가이자 레코딩 엔지니어, 가수, 시인이다. 10여 년 간 쌓아 온 그의 음악적인 경험담과 에피소드를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대중적인 글로 풀어낼 예정이다. 메일 ssi-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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