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찌뿌드드하고 나른할 때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사우나’가 아닐까. 하지만 절절 끓는 온돌방 아랫목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는 것만큼 좋은 특효약도 없을 것 같다. 요즘 한옥마을이나 고택체험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유년시절의 시골에서는 해 질 무렵 집집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고, 저녁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가마솥 누룽지를 절로 떠올리게 만들면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저물녘까지 냇가에서 썰매를 타다가 양말도 태워 먹고 눈싸움까지 벌이다가 집에 들어서면 할머니가 말로는 혼을 내시면서도 손자 걱정하는 마음에 꽁꽁 언 내 손을 아랫목 이불 속으로 넣어주시던 기억이 난다.
큰 동네로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시는 할아버지, 학교에 갔다 오는 우리 형제에다 땔감을 구해 산에서 내려오는 머슴들을 위해 아랫목 이불 속에 고이 간직한 놋쇠 밥그릇, 삼대에 걸친 대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는 모습 또한 아랫목이 없으면 연출되지 못할 풍경이 아니던가. 지금은 가족들이 모여 식사 한번 하는 것이 행사로 여겨질 정도이니 그때를 떠올리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아랫목은 할아버지나 귀한 손님이 오시면 기꺼이 내어드리는 우리 소중한 온돌문화의 유산인데, 아랫목 문화를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은 실종된 아랫목의 위상과 함께 우리 할아버지들의 권위도 덩달아 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운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궁이 불쏘시개로 따스해진 아랫목에, 잘 쑨 메주로 만든 청국장과 뒷마당 장독에서 꺼내온 김장김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진수성찬이어서 큰 고봉 놋그릇에 어머니가 담아주신 밥 한 사발은 게 눈 감추듯 없어진다.
저녁 밥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소죽 끓인 아궁이에서 노릇노릇 잘 익은 군고구마와 꽁꽁 얼었지만 달콤한 감까지, 가족들이 희미한 등잔불 밑에 모여 앉아 주전부리를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겨울의 낭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던 이벤트 중의 이벤트였다. 밤이 되면 한이불을 덮은 형과 동생끼리 발장난을 치고, 커서도 우애 있게 지내라고 옛날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기억 등 가족들이 정감을 나누던 추억은 지금까지도 아랫목의 온기와 함께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지금은 시골이라도 아궁이에 불을 때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주택이 현대화되었지만, 귀농하여 전원생활을 시작하시는 분 중에는 이런 아궁이를 만들어서 예전의 향수를 자아내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벌써 11년 전의 일이지만, 가끔 찾아뵙던 시골집 부모님도 아궁이를 고집했다. 보일러를 놓아 드린다고 해도 그때마다 사양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늙은이에겐 뭐니 뭐니 해도 아궁이에 불 때는 아랫목이 최고”라고 하셨다.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궁이에서는 장작이 빨갛게 불타오르고, 온 마을을 하얀 눈이 살포시 덮으면 시골의 겨울밤은 더욱 깊어갔다. 긴긴 겨울밤, 동면하는 산짐승처럼 타닥거리는 장작불 소리 들으며 포근한 잠을 청할 수 있는 축복이 다시 한 번 찾아오기를…….
나이 들어 잠 못 드는 날이 잦아지면서 더욱더 그 시절이 그립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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