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먹고 나면 야구공 하나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묵직한 야구공은 살 돈은 없어, 학교 근처 체육사에서 야구공 모양을 한 테니스공을 샀었지요. 선수들이 던지는 커브 슬라이브를 유심히 봐두었다가 써먹는다며 엄지손가락과 검지 가운뎃손가락을 그럴싸하게 만들고 나서, 멋진 폼으로 포수를 향해서 던졌습니다. 하지만 커브나 슬라이브는 궤적부터 다른 공인데 항상 똑같이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 야구공을 가지고 실밥을 잡고 손목을 사용하는 공들이었지만 고사리손으로 흉내만 내다보니 그 공이 그 공이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시작한 경기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매 순간 임했던 생각이 납니다. 흙 바닥을 여러 시간 뛰어다니다 보니 옷은 흙먼지로 가득했고, 살은 새까맣게 타서 옷으로 가려진 부분과 햇빛에 노출된 부분이 확연히 차이가 났었습니다. 그래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해서 이기면 정말 기분이 좋아 방방 뛰면서 집까지 가게 되었고, 지는 날에는 집에 가는 내내 그 진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잠자리에 들면 온통 게임을 진 생각뿐이었지요.


프로야구가 하는 날은 TV를 혼자 독차지하고 누구도 다른 채널을 돌리지 못하도록 리모컨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오는 선수 한 명의 이름을 적고 수비 위치며 타율까지 받아 적었습니다. 야구하는 세 시간 동안은 오로지 TV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설가가 공 던지는 방법이라며 직접 시범을 보일 때면 그 노란 테니스공을 얼른 가져와 똑같이 잡아보기도 했습니다. ‘너희는 내일 다 죽었어! 내가 드디어 신무기를 장착하는 순간이구나!’ 까먹지 않으려고 그림 솜씨도 없으면서 노트 옆에 공 모양과 손을 서툴게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벼르고 별렀던 타자가 등장하자, 콧대를 납작하게 할 신무기에 온갖 힘을 최대한 주고 멋지게 던져봅니다. 타자의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고 삼진으로 물러날 때 그 희열과 쾌감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 내가 해냈구나! 해냈어!’라는 그 성취감은 끝내줬습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고 야구할 시간도 없어졌지만, 가끔 시청하는 야구를 볼 때마다 꼬마 시절 열정 하나로 운동장을 누비면서 야구에 미쳐 살던 그때가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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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끼리 부부동반으로 '쿤밍(곤명)'을 다녀오기로 하고 여행준비를 하던 중, 동생의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취소시키고 부랴부랴 예약한 곳이 '황산'이다. 몇 년 전, 초등학교 동기들과 동행한 '장자제(장가계)'가 그리도 좋아서 일찌감치 점 찍어 놓은 곳이기도 하다. 장가계는 올려다보아서 좋고, 황산은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가슴 깊이 묻어둔 0순위 여행지다.


지난주에 다녀온 3박 4일 여행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공항을 10여 분 거리에 두고 여행가 직원은 "비행기 연결문제로 1시간 반 정도 지연된다."고 전한다. 예정대로 출국 수속을 받고 나니 다시 30분이 지연되어, 결과적으로 4시간 넘게 면세점을 돌고 돌았다. 귀국하여 구문을 훑어보니, 아시아나 직원의 구차한 변명은 "히로시마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여객기의 활주로 이탈사고의 여파"가 우리 비행기까지 파급된 것이다.



여행객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실리도 얻지 못한 채 출국하여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청대 옛날 거리다. 책상 크기만 한 벼루 말고는 인구 25만 명의 소도시라서 그런지 인사동 골목에 비하면 조촐하다. 이곳은 1년에 70일 정도가 맑다는데, 어제의 우중충한 날씨와는 확연히 다른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하늘이다. 한 시간 걸려 도착한 케이블카 승차장에는 이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우리보다 네 배나 높은 목소리를 낸다는 한족들 사이에 묻혀서 1시간 40분간의 고생 끝에 8인승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1,600m까지 10여 분을 오르면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감탄사뿐이다. 1979년 덩샤오핑(등소평)이 반바지 차림으로 등정한 후 1985년부터 내외국인에게 개방되고, 199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대형사진이 홍보하고 있었다.


한 시간여를 걸으면서 눈요기를 하고는, 신이 빚은듯한 거암 괴석에다 기송까지 품은 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오악을 돌아보면 다른 산들이 눈에 안 차고, 황산을 돌아보면 오악이 눈에 안 찬다."는 명나라 지리학자 서하객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상에서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황산의 숨은 비경을 엿볼 수 있는 서해 대협곡 탐방시간이 다가왔다. 주어진 자유시간은 두 시간, 일행은 여성 11명에 남성이 5명이다. 여성 6명은 출발점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동행한 여성 3명과 남성 2명도 중도 포기했다. 1,600m 출발선에서 1,450m를 오르내리는 1환까지 나를 포함한 3명이 다녀왔고, 1,380m 지점인 2환의 모노레일 반환점까지는 40대 부부만이 완주했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잔도에서 바라보면, 멀리서는 웅장한 바위산이 다가오고,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아래로는 아기자기한 만물상이 펼쳐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기가 막히는 여러 폭의 산수화다. 너무도 청명한 날씨 탓에 골짜기를 휘감아 도는 운해를 볼 수는 없지만, 신비한 속내는 속속들이 눈에 들어왔다. 깎아지른 절벽에는 난간조차 없는 곳이 많아 약간만 비틀거리면 천 길 낭떠러지라, 현기증이 염려되어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고 심호흡을 거듭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설치해 놓은 view point를 한 곳도 빠짐없이 모두 들렀다. 이런 절경을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수직 절벽에 도대체 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중국의 기술력이 여전히 궁금하다.


그래도 2%의 아쉬움이라면, 1환의 반환점을 2환의 반환점으로 착각하고 돌아선 것과, 편하게 내려오면서 절경을 볼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동조한 여행객들 때문에 계약서에 적힌 코스의 다양한 풍경을 더 감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탈 수 있다는 50인승의 태평 케이블카는 1시간 45분을 기다려야 했고, 하강하면서 본 풍경은 오를 때 운곡 케이블카에서 본 것과 대동소이했다.



나머지 이틀간은 예상대로 흐리고 비가 내렸다. 황산 근교에 있는 5A급(우리로는 5성급)국가 지정문화재 4곳과 박물관을 답사했다. 500억 원(?) 가치의 아름다운 분재와 당대 500인의 나무조각상을 보유한 '포가화원'을 제외하고는 봐도 그만 보지 않아도 섭섭할 것 같지 않은 문화재들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 한국인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지난해만 17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외국 비행기로는 KAL과 OZ만 운행된다는 이곳이야말로 후회 없는 관광지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숙제를 해결하고 나니, 더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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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나는 좋은 말, 아름다운 말을 보면 메모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심지어, 그 좋아하는 드라마보다는 정말 잘 만든 광고가 흥미롭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 냈을까? 어떻게 이런 말을 넣을 생각을 했지?’ 혼자서 감탄하며 놀라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시간 날 때마다 하는 일은 ‘좋은 네이밍을 지어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네이밍을 짓는 것이지, 온종일 머리를 쥐어짜도 의미와 뜻에 부합하는 단어를 끄집어내기는 어렵다. 의뢰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야 하고, 단어도 한두 개, 그리고 거기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강렬한 느낌까지 받게 하여야 하니, 이건 글을 쓰는 창작과정과 맞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쥐어짜 내도 나오지 않던 단어가, 책을 펴면서 우연히 본 낯선 단어로 인해 그 고민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혹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 속에서 찾아질 때의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 ‘아! 이거네!’ 까먹을까 싶어서 서둘러 휴대전화를 챙겨 저장한다.


막상 그 단어들을 다 꺼내 이렇게 저렇게 짜 맞추는 시간이 다가오면, 또 한 번 많은 생각을 한다. 과연 이 단어를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일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각인될 수 있는 단어가 될까? 고민의 터널 속에서 한참을 헤맨다. ‘괜찮아. 이 정도면 됐어.’라고 생각하고 응모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 보면, 뭔가 좀 허전함을 느끼게 되고 다시 한 번 수정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예전에 어떤 개그맨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수없이 반복하고 대본을 수정해서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무대 오르기 전까지 대본을 또 한번 수정한다고 말이다. 농부가 씨앗을 뿌려 김을 메고, 잡초를 뽑으며 들짐승을 쫓고, 비와 바람의 악조건을 이겨내며 튼실한 열매를 맺게 되듯, 하나의 완벽하고 멋진 말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수많은 과정과 노력이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머리 쓰는 일은 좀 그만해야겠다 싶다가도, 오늘 배달되어 온 신문 속에서 낯선 단어를 찾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이 일에 많은 애정을 품고 있구나 느끼게 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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