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볕이 잘 드는 옥상이 있다. 여름철 한낮에는 강렬한 태양 볕에 물이 줄줄 떨어지는 빨래를 빨랫줄에 턱 올려놔도 서너 시간이면 물기는 온데간데없고 빨래들이 바짝 말라 버린다. 5층 건물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곳에 높은 건물들이 없다 보니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온통 햇살 천지가 된다. 그래서 아는 지인들이 오면 빨래 하나는 정말 잘 마르겠다고 한마디씩 한다. 가을이 지나고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이어져 여전히 낮에는 빨래를 말릴 기회를 주고 있다.


어느 날인가, 비가 오는 때 빨래를 한 적이 있다. 30여 분 신나게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탈수까지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나서 베란다로 갔는데 아직 젖은 빨래들이 빨래 건조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옥상은 비가 와서 널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 왔다. 크게 춥지 않다 보니 보일러는 틀 수 없었다. 영상 기온이라고 하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아침에 일어나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찬 시베리아 날씨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옷걸이에 걸린 빨래들에서 쉰 듯한 냄새가 났다. 축축한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방 안에 있던 빨래는 다 마를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빨래를 하게 되었고 그때는 볕이 참 좋았다. 영상 10도까지 올라가는 날이라 봄날 같은 겨울이었다. 4시가 넘어가기 전에 빨래를 다 거둬들였다. 더 오래 널어 봐야 해가 지고 나면 애써 말린 빨래에 물기가 스밀까 봐 일찍 거둬들였다. 엄마의 빨래는 가져다 드리고 나서 나의 빨래를 가져와 하나하나 갰다. 10여 가지 빨래를 잘 개어 쌓아올려서 옷장으로 막 가져가는 순간, 빨래 냄새가 방안에 퍼졌다.


특별한 세제를 넣은 것도 아니고 좋은 첨가제를 넣어서 빤 것도 아닌데 햇볕에 말렸다는 이유만으로 무척이나 좋은 향이 스며 나온 것이었다. 그동안 햇볕에 말린 빨래를 받아들면서 나는 이 냄새를 맡았을 것이리라. 하지만 그 어느 때도 이 빨래 향을 음미할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며칠 전 방안에 널었던 빨래의 쉰내에 많이 실망해서 지금의 빨래 향이 더욱 좋게 느껴진 것은 아닐지. 한동안 옷장 가기를 멈추고 빨래를 침대 위에 두었다. 온 방 안으로 빨래의 뽀송뽀송한 향이 퍼졌다. 공기나 물처럼 소중한 태양 그 태양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느끼는 날이었다.


또 하나를 생각해본다. 태양이 주는 자그마한 선물들을 가지고도 방안을 향기롭게 채울 수 있듯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좋은 느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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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찌뿌드드하고 나른할 때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사우나’가 아닐까. 하지만 절절 끓는 온돌방 아랫목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는 것만큼 좋은 특효약도 없을 것 같다. 요즘 한옥마을이나 고택체험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유년시절의 시골에서는 해 질 무렵 집집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고, 저녁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가마솥 누룽지를 절로 떠올리게 만들면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저물녘까지 냇가에서 썰매를 타다가 양말도 태워 먹고 눈싸움까지 벌이다가 집에 들어서면 할머니가 말로는 혼을 내시면서도 손자 걱정하는 마음에 꽁꽁 언 내 손을 아랫목 이불 속으로 넣어주시던 기억이 난다.


큰 동네로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시는 할아버지, 학교에 갔다 오는 우리 형제에다 땔감을 구해 산에서 내려오는 머슴들을 위해 아랫목 이불 속에 고이 간직한 놋쇠 밥그릇, 삼대에 걸친 대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는 모습 또한 아랫목이 없으면 연출되지 못할 풍경이 아니던가. 지금은 가족들이 모여 식사 한번 하는 것이 행사로 여겨질 정도이니 그때를 떠올리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아랫목은 할아버지나 귀한 손님이 오시면 기꺼이 내어드리는 우리 소중한 온돌문화의 유산인데, 아랫목 문화를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은 실종된 아랫목의 위상과 함께 우리 할아버지들의 권위도 덩달아 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운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궁이 불쏘시개로 따스해진 아랫목에, 잘 쑨 메주로 만든 청국장과 뒷마당 장독에서 꺼내온 김장김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진수성찬이어서 큰 고봉 놋그릇에 어머니가 담아주신 밥 한 사발은 게 눈 감추듯 없어진다.


저녁 밥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소죽 끓인 아궁이에서 노릇노릇 잘 익은 군고구마와 꽁꽁 얼었지만 달콤한 감까지, 가족들이 희미한 등잔불 밑에 모여 앉아 주전부리를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겨울의 낭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던 이벤트 중의 이벤트였다. 밤이 되면 한이불을 덮은 형과 동생끼리 발장난을 치고, 커서도 우애 있게 지내라고 옛날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기억 등 가족들이 정감을 나누던 추억은 지금까지도 아랫목의 온기와 함께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지금은 시골이라도 아궁이에 불을 때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주택이 현대화되었지만, 귀농하여 전원생활을 시작하시는 분 중에는 이런 아궁이를 만들어서 예전의 향수를 자아내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벌써 11년 전의 일이지만, 가끔 찾아뵙던 시골집 부모님도 아궁이를 고집했다. 보일러를 놓아 드린다고 해도 그때마다 사양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늙은이에겐 뭐니 뭐니 해도 아궁이에 불 때는 아랫목이 최고”라고 하셨다.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궁이에서는 장작이 빨갛게 불타오르고, 온 마을을 하얀 눈이 살포시 덮으면 시골의 겨울밤은 더욱 깊어갔다. 긴긴 겨울밤, 동면하는 산짐승처럼 타닥거리는 장작불 소리 들으며 포근한 잠을 청할 수 있는 축복이 다시 한 번 찾아오기를…….


나이 들어 잠 못 드는 날이 잦아지면서 더욱더 그 시절이 그립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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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뜻의 ‘kid와 ‘어른’의 adult를 합쳐 ‘키덜트’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아하니 이 키덜트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1980~90년대를 살았던 꼬마들이 2000년을 훌쩍 넘기고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그 옛날의 향수를 많이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좋을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은 꽤 많았던 것 같다.


나의 꼬마 시절도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용돈 하라고 1,000원을 쥐여주면 학교 앞 문방구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TV 만화에서 보았던 《독수리 5형제》며 《마징가 제트》가 아로새겨진 조립 장난감이 있는 선반에 제일 먼저 눈을 돌렸다. 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모형이라 가격만 맞으면 언제든 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때마침 돈이 생겨 원하는 조립 장난감을 살 수 있게 되자 뛸 듯이 기뻤었다. 팔이 움직일까? 다리가 움직일까? 목은 자유자재로 움직이겠지?

설레는 마음에 이것저것 상상하면서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하게 되었고,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박스를 열어 《마징가 제트》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틀에 있는 오른손 주먹을 조심스럽게 떼어내어 암수를 맞추어 결합하고 깔끔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보겠다고 연필 깎는 칼까지 옆에 두고 접합 면을 다듬었다. 뭐 하나 부러질까 봐 약한 부분을 떼어 낼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팔을 만들고 다리를 이어 부치면서 제대로 된 모양으로 완성되어 가자 형언할 수 없는 설렘이 물밑 듯이 밀려왔다. 한참 동안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다 보니 손발에 쥐가 나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TV에서 보는 것과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로봇이 완성되고 스티커를 붙이고 나니 근사한 완성품이 되었다. 비록 걸을 수는 없지만 TV에서 볼 때처럼 버튼만 누르면 주먹이 발사되고 주먹 안에 큰 칼을 꽂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책상 위에 두고 한참을 째려보았다. ‘요 녀석 너는 오늘부터 나와 영원히 가는 거다!’ 조립 장난감 만드는 재미에 빠져들자 설날 세뱃돈을 타면 비행기를 샀고 삼촌이 놀려 와서 용돈이라고 쥐여주면 탱크를 사서 만들고 심부름해서 용돈을 받으면 헬리콥터를 샀다. 점점 어려운 장난감에 도전하게 되었고 본드 칠을 하기도 했고 물감도 칠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짓수가 늘다 보니 나중에 처치 곤란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될 때쯤 장난감은 모두 치우란 엄마의 말씀에 여기저기 만들어 놓았던 장난감을 한데 모으자 사과박스 3~4개가 필요했다. 이제 성인이 되어 조립 장난감에 대한 흥미는 잊고 살고 있지만 키덜트 시장이 커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처럼 그 옛날 조립 장난감에 열성을 보였던 꼬마들이 많았었던 거 같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긴 하지만, 추억만은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아닐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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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


살아있음에 감사해 하며

살아왔음에 감사해 하며

살아갈 날들에 고마워하며...


이렇듯 저렇듯

우리네 삶


머물러있는 자아만이 나를 나무라면

그 시건방짐에

몇 곱절 경의를 표하건만...


도약의 나래를 펼치는

그런 또 다른 자아가 있기에

우리는 이 삶 결국 살아내는구나!


살아 있음에 감사해 하며...


글 / 품질보증2팀 박영진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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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식사문화는 낯부끄러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큰 소리로 떠들거나 어지럽게 뛰어다녀도 나무라는 부모를 찾아보기 드물다. 간혹 누군가 아이를 제지하기라도 하면 부모가 나서 아이 편을 들기 일쑤다. 부모는 ‘내 아이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녀의 식당활보를 방치하고, 종업원은 손님을 자극하면 매상이 떨어질까 봐 못 본 척한다. 그 사이에 아이는 점점 더 무례해지고 거칠어져 가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예절 중에서도 식사예절을 중시했다. ‘밥상머리교육’이라고 따로 부를 정도로 나의 삶 깊숙이 식사예절이 자리 잡고 있다. 식사마다 할아버지와 맏손자인 내가 겸상을 했으며, 나머지 식구들이 둥근 상에 둘러앉고 머슴은 윗목에 자리 잡았다. 어머니는 부족한 밥이나 찬을 챙기고 숭늉을 준비하기 위하여 보통은 부엌에서 홀로 식사를 하셨다.

수저는 할아버지가 들기 전에 들어선 안 되고, 밥알과 국을 흘려서도 안 되지만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야 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식사 중에는 말을 삼가고 반찬은 투정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 했으며 간혹 올라오는 조기 같이 귀한 것은 어른이 주기 전에는 넘보아서는 안 되었다.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친 사람이 숭늉을 배달하는 것은 불문율이다. 이중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기는 날에는 “버르장머리 없는 상놈!”이라고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른에 대한 공경과 자녀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게 된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경쟁적인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과 횟수가 줄어들고 특히 식사를 함께할 여유가 줄어든 것이 사회문제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밥상머리교육을 중시했던 우리가 한국에 온 외국인들 입에서 “저렇게 공공예절이 없는 아이를 내버려두는 한국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까지 온 것이 아닐까.

주로 외할머니와 식사를 같이 하는 여섯 살 손자는 밥상머리교육을 잘 받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식사한다고 상을 펴면 행주로 골고루 훔치고 수저를 사람 수에 맞추어 가지런히 놓고는 자기자리를 물어서 식사하기를 기다린다. 먼저 먹으면 물을 마시고 소리 없이 일어나서 소파로 간다.


밥상머리교육 못지않게 중요시했던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들려줬던 ‘무릎교육’이다. 우리 형제들은 잠들기 전에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옛날이야기’를 할머니한테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할아버지로부터는 ‘마당에 늘어놓은 벼가 비에 떠내려가도 공부에만 전념하여 급제했다’는 선비의 이야기를 배웠다. 나는 손자 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훗날 이들에게 전해 줄 이야깃감으로 「이솝우화」와 「어린왕자」, 「노란 손수건」과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같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들을 소중하게 보관해 왔으나, 이제 이 물건들이 소용이 없게 된 것이 못내 서운하다. 핵가족화로 손자 손녀와 떨어져 산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어린이집이나 TV와 전자기기가 더 재미있고 실제처럼 학습시키고 있기에 내가 담당할 분야가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나는 ‘밥상머리와 무릎교육’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회상하곤 하는데, 내 손자손녀는 먼 훗날 이 할아버지를 어떤 사연으로 기억해 줄 것인가.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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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딸네 집에서 만난 손자에게 봉투를 내밀면서 말했다.

“이 돈 가지고 맛있는 것 사 먹고 할아버지한테 얘기해줄래?”

노란색 할머니를 세어보더니 금방 얼마인지를 알아차린다. 올 초 ‘모두의 마블’이라는 장난감을 사주었더니 올 때마다 보따리를 싸와서는 시도 때도 없이 성가시게 한다. 손자는 아들과 며느리하고도 가끔 즐기기 때문에 규칙을 줄줄 외우는 터라 자주 헷갈리는 내가 밥이 된다. 한번 게임을 하는데 1시간 반이 걸리므로 시간 보내기에 그만한 놀이가 없는 데다가 게임 진행을 돈으로 환산하기 때문에 5개월이 지난 요즈음은 할머니보다 계산이 빠르고 정확하다.

“한국 돈을 거기 가서 어떻게 쓰라는 거야?”

“엄마가 바꾸어 줄 거야.” 

“할아버지 선물은 뭐로 사 올까?” 

“내 것은 안 사도 되지만 친구들과 동생 것은 사야지.”

“동생은 젤리 사주기로 했고, 선물할 친구들은 벌써 적어놓았어요.”

내년에 초등학생이 될 손자는 2년 전에 싱가포르를 다녀왔고, 이번에는 9일 일정으로 미국에서 교수로 있는 이모한테 놀러 간다. 내 시대와는 모든 게 천양지차로 변했기에 여행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내가 처음 영국으로 해외출장을 간 70년대는 반공방첩이 국시였기에 본가는 물론 처가까지 경찰서에서 신원조회를 나왔다. 중국 연변에 언니(장모님이 초청하여 왕래하다가 지금은 아들딸 가족까지 수도권에서 잘 살아가고 계신다)가 사는 장모님께서는 가슴앓이를 한 나머지 조사 나온 경관에게 닭을 잡아주고 봉투도 준비했음을 여행을 다녀온 몇 년 후에야 알았다. 손자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카카오톡으로 통화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편했다. 며느리는 시차 때문에 며칠간은 정신을 차리기조차 힘들었다는데도 손자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철철 넘쳤다.


귀국한 지 달포 만에 손자가 내게는 17년산 밸런타인을, 할머니에게는 화장품을 가지고 나타났다. 얼굴을 만져보고 가슴에 코를 대어 보면서 말했다.

“승하야. 미국서 무엇을 먹었는지 맞춰볼까? 킹크랩, LA갈비, 버거킹….”

“버거킹은 아니고, 만두처럼 생긴 멕시코 음식이 제일 맛있었어요.”

옆에서 며느리가 말한다. “승하야, 버거킹도 먹었잖아.”

손자가 오기 전, 이 녀석이 머물거나 거쳐온 곳마다 추억이 될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항공사 사보에 붙어있는 세계지도에다 손자가 여행한 코스는 빨간색으로, 같은 시기 사위가 영국과 미국을 다녀왔기에 파란색으로 내가 다섯 번 다녀온 코스는 검은색 볼펜으로 선을 그어놓았다.

“승하는 서울서 출발해서 LA에서 디즈니랜드를 구경하고 이모와 같이 댈러스를 거쳐 루이지애나를 다녀왔지. 세 곳을 다녀온 셈이네.”

이모는 LA에 세미나 참석차 와 있었다.

“디즈니랜드에서는 굴속에 들어가니 킹콩이 나타났는데 무섭기는 했지만 그게 제일 좋았어요. 댈러스에서는 밖에 나가지 않았으니 세 곳이 아니고 두 곳을 다녀온 거야.” 

파란색 선을 손으로 짚어가면서 그런다.

“고모부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갔다가 왔기에 엄청 멀리 돌아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양손으로 둥글게 말아 쥔다.

“할아버지, 지구는 둥글잖아요. 런던에서 LA까지는 가깝거든요.”

내가 설명할 것을 손자가 해주고 있으니 ‘내가 바보가 된 건가, 손자가 똑똑한 것인가?’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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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0 08:4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곤하게 잠자고 있는 새벽, 여기저기 가려워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떠서 불을 켰다. 다리와 팔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모기였다. 한여름이 다 지났기에 이제는 모기 걱정 없이 살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어느새 모기 한 마리가 들어와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탓에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가 심심치 않게 모기를 발견하고는 ‘추워서 들어 왔나 보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잠시 열어놓은 방문 틈을 비집고 들어 온 모양이었다. ‘아! 그때 다 잡았어야 했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더 자야 내일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3~4군데 모기 물린 자국을 보니 모기를 꼭 잡고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려운 팔과 다리를 긁으며 둥그런 부채를 하나 잡아 들고 방안 구석구석을 누볐다. 나타나기만 하면 언제든 세게 후려쳐 잡으리라는 피 끓는 열정을 가슴 한편에 담아 두고서. 그런데 어디 숨었는지 모기는 도통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옷걸이에 걸린 옷을 흔들어 보고 어두운 구석 모서리를 찾아서 한참을 지켜보았지만 모기는 모습을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지만, 몰려 오는 잠으로 눈꺼풀이 무거울 뿐 소득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피곤해 잠시 침대에 눕는다는 것이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깊은 잠으로 빠져들지 않았을 때, 귓가에 “윙~윙~!” 소리가 순간적으로 들렸다. 다시 나타난 모양이었다.


모기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이 얼마나 강했었는지 순식간에 눈을 떠 사방을 둘러보았다. 방안 구석구석을 지켜보다가 침대와 맞닿은 벽을 보는 순간, 그렇게도 기다렸던 모기란 놈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벽에 붙어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최대한 조심조심 다가가 한 번에 해내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한 동작으로 모기를 향해 부채를 내리쳤다. 벽에는 선홍빛의 피가 빨갛게 번져 있었다. ‘아까운 내 피들!’


다음날, 새벽에 모기와 씨름을 한 탓으로 기상시간이 한 시간 늦어 버렸다. 아침 내내 허둥지둥거렸다. 모기에 물린 팔다리에는 수시로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밤새 마음 졸이며 어디 있나, 어디 있나, 숨바꼭질을 하던 모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그 모든 것을 그나마 상쇄시켰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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