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작년부터 가끔 눈을 찡그리더니,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안경을 맞춘 모양이다.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3대의 남자가 안경을 쓰게 된 것이 나로 인한 것 같아서 속이 아린데, 어린 나이에 안경을 끼고 밖에 나와서 했다는 첫 마디가 “원래 이렇게 잘 보였어?”라는 전언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해서 이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비율이 초등학생은 30% 정도고 중고등학생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지라도 60명이 넘는 한 반에 안경 쓴 동기가 3~4명에 불과했던 1960년대. 안경으로 인하여 내가 겪은 고초를 되새기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새어 나와 독성을 띤 구름처럼 주위를 맴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2.0의 시력을 유지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언덕에 있는 단층의 임시교사에서 키 순서로 배정받은 37번의 자리는 창문 옆이었다. 오후가 되면 햇살이 강해서 책을 보다가 칠판을 보려면 글씨가 어슴푸레 보이는 날이 늘어만 갔다. 커튼이나 블라인드는 생각조차 못 하고 창문에 종이를 부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아서 강한 직사광선을 고스란히 눈으로 받아내야 했다. 게다가 집에 가면 좁아터진 방에 큰방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희미한 30촉짜리 전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교실의 칠판글자가 보일락말락하여 짝꿍의 노트를 보면서 필기를 하고 있는데, 영어 선생님이 칠판에 쓰인 글을 해석하라고 지명했다. 안 보인다고는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불호령이 나고서야 안경점을 찾았다. 시력은 0.7. 지금 같으면 콘택트렌즈를 낄 수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평생 안면에 안경을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타민을 상용하고 아침마다 날계란을 두 알씩 먹는 것이 고작. 당시 일기장을 보면 안경으로 인한 불편함과 불안감으로 도배되어있다. 불편한 점을 30가지 이상이나 나열하고 일 년에 두 번씩이나 도수를 올리다가는 머지않아 실명할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다고 적혀있다.


안경을 착용한 후, 처음으로 고향에 가서 만난 어른들께 “진지 잡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드리니, 어느 분은 못 본 척 얼굴을 돌리셨고, 한 분은 “고얀 놈!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컬러TV는 고사하고 흑백TV도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눈이 나빠질 요인은 적었으며 안경을 착용한 사람 역시 극소수였다. 평생 도시라곤 가본 적이 없는 시골노인 처지에선 학생이란 녀석이 안경을 쓴다는 것은 ‘공부는 뒷전이고 시건방진 탓’이라고 오해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소경이 될까 봐 고심했던 것은 어느 정도 시력이 저하되다가 40대에 고정되는 바람에 기우에 그쳤고, 다른 친구들보다는 노안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외관상으로 보기가 싫으면 콘택트렌즈를 낄 수도 있고 성인이 되면 라식수술도 가능한데 왜 사서 가슴앓이하냐며 아내가 핀잔을 준다.


“손자 데리고 가거든 안경에 대해서는 모른 척해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어린이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오로지 부모 잘못이다. 손자에게 좀 더 신경을 쓰고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안과에서 검안을 받을 것이며, 눈에 좋다는 비타민을 꾸준히 복용시키라.”고 충고하며 불안감을 달래보지만, 자꾸만 일기장이 떠올라 심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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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나 저녁 술자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참 술기운이 무르익을 무렵, 친구는 대뜸 나에게 “그 옷은 소매가 많이 닳았는데 이제 버려도 되지 않아?”라고 물었습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순식간에 들통이 난 것처럼 나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괜한 것을 물어본 듯 겸연쩍어하며 다른 쪽으로 말을 돌리려 할 때, 나는 짧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징크스 때문이야!” 그러고 나서 나의 징크스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왜 저런 누더기 같은 옷을 버리지 않고 계속 입고 있는지가 참 많이 궁금했었던 모양이고, 어떻게 나에게 질문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갈등했었다고 합니다. 다 듣고 난 그 친구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언젠가 좋아하는 야구를 시청하면서 참으로 의아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투수가 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살짝 뛰어 지나가는 것이었지요. 한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다음에도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궁금해서 인터넷에 질문을 올렸고, 마침내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징크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특별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도 알게 되었습니다. 연속 안타 행진을 하게 되면 수염을 깎지 않는 것은 물론, 속옷도 그 기간에는 갈아입지 않는 선수가 있을뿐더러 경기가 잘 안 되고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잘 치는 선수의 배트를 얻어 슬럼프를 극복하는 예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좋은 상황은 이어져 가길 바라고, 나쁜 상황이 벌어지면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은 누구나가 똑같은 마음이겠지요.


그 후 나에게도 은근슬쩍 징크스가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내 생각과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때였을 겁니다. 49라는 숫자를 피하고자 양치질을 할 때도 왼쪽을 3번 닦고 나면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 칫솔질하고 물로 입안을 헹굴 때도 3번 아니면 5번으로 마무리를 하지 4번으로 끝내지 않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10번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쉬는 것이지 9번 하고 10번째 쉬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잘못해서 유리컵을 깼다면 그 날은 온종일 불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하나의 행동과 말에 조심 또 조심하는 것도 그때부터 생기게 되었습니다.


소매가 닳은 옷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고수했던 이유도, 그 옷만 입고 있으면 무언가 좋은 일이 벌어졌었고 항상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서 스스로 행복감에 젖게 되어 차마 버릴 수 없었다고 친구에게도 설명했습니다. 징크스라는 것은 나를 옳아 매서 행동의 제약이나 심리적인 위축을 유발할 수도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나의 행동과 말을 조심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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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여러 해 동안 아파트 통장 일을 보고 있다.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확인받는 통지서와 고지서가 여러 종류지만, 가족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유일하다고 한다. 아들로부터 손자의 취학을 알리는 통지서를 메일로 받았다. 내가 늙은이가 되었다는 것은 망각하고 손자가 이만큼 자랐다는 게 대견하고도 뿌듯하다.

2016년 3월 2일 11시에 모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있음을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사교육 1번지이고 학원 수가 가장 많은 데다가 고액과외까지 성행하는 지역이라 기쁨 반, 우려가 반이다. 손자의 장래는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비례한다는 속설이 있다지만 우린 양쪽 모두 낙제점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만 하여도 동네 교육여건이 열악하여 며느리 직장이 있는 여의도에 새로운 둥지를 튼다고 전해 듣고 내심으로는 목동 쪽이면 좋겠다고 했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사돈네가 강남구 신축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갈등이 생겼다. 손자손녀를 돌보아줄 사부인을 따르자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고, 입주 도우미를 두거나 맞벌이를 그만둘 처지도 못 되어 아들이 육아휴직을 고려한다고 해서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키듯 집안 망신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민 끝에 사돈네 근방의 노후아파트를 전월세로 들어가기로 한 모양이다.

손자는 그렇다고 치고, 유치원에 가야 하는 손녀는 더욱 난감한가 보다. 일반 유치원 설명회에 다니면서 여러 곳에 원서를 낸 며느리는 “경쟁률이 10대 1 이상이라 탈락이라도 하면 정부지원이 되지 않아 비용이 한 달에 3배 가까이 비싼 사설놀이학교 쪽을 알아봐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격세지감이지만 어렴풋이 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취학통지서 비슷한 게 있었겠지만 옆집 아이 따라 일찍 들어가기도 하고 2~3년 늦어도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문제 삼지 않았다. 동네에서 형, 누나로 부르던 언니가 예고도 없이 들어왔다가 월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날씨가 추운 4월-그 당시는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인데도 운동장 한편에 칠판을 걸어놓고 40여 명이 선생님의 꽁무니만 쳐다보면서 가갸~그기를 따라 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의 뒷주머니에 삐죽이 나와 있던 막대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 먹었는데, 그 재미로 학교에 오는 또래도 여럿이었다. 국민소득 천 불이 안 되던 가난했던 때였지만, 선행학습이나 과외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으므로 그런대로 행복했다.


국민소득 5천 불 미만인 때에도 외벌이로 자식 두 명 키우고 공부시키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건만, 3만 불을 눈앞에 둔 지금은 최고학부 나와서 맞벌이를 해도 비정규직에 치솟는 집값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일방통행식 육아지원정책에 어느 젊은 부부가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자녀를 낳겠다고 하겠는가. 중고 여학생 10명 중 3명이 “자녀 출산은 필수가 아니다.”라고 버젓이 말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 부부는 고심 끝에 매달 정해진 날에 월급처럼 받던 용돈을 손자가 입학하는 달부터 받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아쉬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받은 것만으로도 고맙고 큰 병만 얻지 않으면 밥은 먹을 수 있는 처지를 다행으로 생각하자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나저나 손자와의 거리가 배 이상으로 멀어졌고, 열공하다 보면 만날 기회가 줄어들 것이 명약관화하여 “할아버지가 손자 보고 싶어서 눈물깨나 흘리겠네!” 했더니 살포시 다가와서 눈을 맞추고는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영상 통화하면 되잖아요!” 한다.

폴더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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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볕이 잘 드는 옥상이 있다. 여름철 한낮에는 강렬한 태양 볕에 물이 줄줄 떨어지는 빨래를 빨랫줄에 턱 올려놔도 서너 시간이면 물기는 온데간데없고 빨래들이 바짝 말라 버린다. 5층 건물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곳에 높은 건물들이 없다 보니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온통 햇살 천지가 된다. 그래서 아는 지인들이 오면 빨래 하나는 정말 잘 마르겠다고 한마디씩 한다. 가을이 지나고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이어져 여전히 낮에는 빨래를 말릴 기회를 주고 있다.


어느 날인가, 비가 오는 때 빨래를 한 적이 있다. 30여 분 신나게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탈수까지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나서 베란다로 갔는데 아직 젖은 빨래들이 빨래 건조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옥상은 비가 와서 널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 왔다. 크게 춥지 않다 보니 보일러는 틀 수 없었다. 영상 기온이라고 하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아침에 일어나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찬 시베리아 날씨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옷걸이에 걸린 빨래들에서 쉰 듯한 냄새가 났다. 축축한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방 안에 있던 빨래는 다 마를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빨래를 하게 되었고 그때는 볕이 참 좋았다. 영상 10도까지 올라가는 날이라 봄날 같은 겨울이었다. 4시가 넘어가기 전에 빨래를 다 거둬들였다. 더 오래 널어 봐야 해가 지고 나면 애써 말린 빨래에 물기가 스밀까 봐 일찍 거둬들였다. 엄마의 빨래는 가져다 드리고 나서 나의 빨래를 가져와 하나하나 갰다. 10여 가지 빨래를 잘 개어 쌓아올려서 옷장으로 막 가져가는 순간, 빨래 냄새가 방안에 퍼졌다.


특별한 세제를 넣은 것도 아니고 좋은 첨가제를 넣어서 빤 것도 아닌데 햇볕에 말렸다는 이유만으로 무척이나 좋은 향이 스며 나온 것이었다. 그동안 햇볕에 말린 빨래를 받아들면서 나는 이 냄새를 맡았을 것이리라. 하지만 그 어느 때도 이 빨래 향을 음미할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며칠 전 방안에 널었던 빨래의 쉰내에 많이 실망해서 지금의 빨래 향이 더욱 좋게 느껴진 것은 아닐지. 한동안 옷장 가기를 멈추고 빨래를 침대 위에 두었다. 온 방 안으로 빨래의 뽀송뽀송한 향이 퍼졌다. 공기나 물처럼 소중한 태양 그 태양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느끼는 날이었다.


또 하나를 생각해본다. 태양이 주는 자그마한 선물들을 가지고도 방안을 향기롭게 채울 수 있듯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좋은 느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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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찌뿌드드하고 나른할 때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사우나’가 아닐까. 하지만 절절 끓는 온돌방 아랫목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는 것만큼 좋은 특효약도 없을 것 같다. 요즘 한옥마을이나 고택체험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유년시절의 시골에서는 해 질 무렵 집집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고, 저녁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가마솥 누룽지를 절로 떠올리게 만들면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저물녘까지 냇가에서 썰매를 타다가 양말도 태워 먹고 눈싸움까지 벌이다가 집에 들어서면 할머니가 말로는 혼을 내시면서도 손자 걱정하는 마음에 꽁꽁 언 내 손을 아랫목 이불 속으로 넣어주시던 기억이 난다.


큰 동네로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시는 할아버지, 학교에 갔다 오는 우리 형제에다 땔감을 구해 산에서 내려오는 머슴들을 위해 아랫목 이불 속에 고이 간직한 놋쇠 밥그릇, 삼대에 걸친 대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는 모습 또한 아랫목이 없으면 연출되지 못할 풍경이 아니던가. 지금은 가족들이 모여 식사 한번 하는 것이 행사로 여겨질 정도이니 그때를 떠올리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아랫목은 할아버지나 귀한 손님이 오시면 기꺼이 내어드리는 우리 소중한 온돌문화의 유산인데, 아랫목 문화를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은 실종된 아랫목의 위상과 함께 우리 할아버지들의 권위도 덩달아 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운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궁이 불쏘시개로 따스해진 아랫목에, 잘 쑨 메주로 만든 청국장과 뒷마당 장독에서 꺼내온 김장김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진수성찬이어서 큰 고봉 놋그릇에 어머니가 담아주신 밥 한 사발은 게 눈 감추듯 없어진다.


저녁 밥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소죽 끓인 아궁이에서 노릇노릇 잘 익은 군고구마와 꽁꽁 얼었지만 달콤한 감까지, 가족들이 희미한 등잔불 밑에 모여 앉아 주전부리를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겨울의 낭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던 이벤트 중의 이벤트였다. 밤이 되면 한이불을 덮은 형과 동생끼리 발장난을 치고, 커서도 우애 있게 지내라고 옛날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기억 등 가족들이 정감을 나누던 추억은 지금까지도 아랫목의 온기와 함께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지금은 시골이라도 아궁이에 불을 때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주택이 현대화되었지만, 귀농하여 전원생활을 시작하시는 분 중에는 이런 아궁이를 만들어서 예전의 향수를 자아내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벌써 11년 전의 일이지만, 가끔 찾아뵙던 시골집 부모님도 아궁이를 고집했다. 보일러를 놓아 드린다고 해도 그때마다 사양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늙은이에겐 뭐니 뭐니 해도 아궁이에 불 때는 아랫목이 최고”라고 하셨다.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궁이에서는 장작이 빨갛게 불타오르고, 온 마을을 하얀 눈이 살포시 덮으면 시골의 겨울밤은 더욱 깊어갔다. 긴긴 겨울밤, 동면하는 산짐승처럼 타닥거리는 장작불 소리 들으며 포근한 잠을 청할 수 있는 축복이 다시 한 번 찾아오기를…….


나이 들어 잠 못 드는 날이 잦아지면서 더욱더 그 시절이 그립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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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뜻의 ‘kid와 ‘어른’의 adult를 합쳐 ‘키덜트’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아하니 이 키덜트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1980~90년대를 살았던 꼬마들이 2000년을 훌쩍 넘기고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그 옛날의 향수를 많이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좋을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은 꽤 많았던 것 같다.


나의 꼬마 시절도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용돈 하라고 1,000원을 쥐여주면 학교 앞 문방구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TV 만화에서 보았던 《독수리 5형제》며 《마징가 제트》가 아로새겨진 조립 장난감이 있는 선반에 제일 먼저 눈을 돌렸다. 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모형이라 가격만 맞으면 언제든 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때마침 돈이 생겨 원하는 조립 장난감을 살 수 있게 되자 뛸 듯이 기뻤었다. 팔이 움직일까? 다리가 움직일까? 목은 자유자재로 움직이겠지?

설레는 마음에 이것저것 상상하면서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하게 되었고,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박스를 열어 《마징가 제트》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틀에 있는 오른손 주먹을 조심스럽게 떼어내어 암수를 맞추어 결합하고 깔끔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보겠다고 연필 깎는 칼까지 옆에 두고 접합 면을 다듬었다. 뭐 하나 부러질까 봐 약한 부분을 떼어 낼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팔을 만들고 다리를 이어 부치면서 제대로 된 모양으로 완성되어 가자 형언할 수 없는 설렘이 물밑 듯이 밀려왔다. 한참 동안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다 보니 손발에 쥐가 나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TV에서 보는 것과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로봇이 완성되고 스티커를 붙이고 나니 근사한 완성품이 되었다. 비록 걸을 수는 없지만 TV에서 볼 때처럼 버튼만 누르면 주먹이 발사되고 주먹 안에 큰 칼을 꽂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책상 위에 두고 한참을 째려보았다. ‘요 녀석 너는 오늘부터 나와 영원히 가는 거다!’ 조립 장난감 만드는 재미에 빠져들자 설날 세뱃돈을 타면 비행기를 샀고 삼촌이 놀려 와서 용돈이라고 쥐여주면 탱크를 사서 만들고 심부름해서 용돈을 받으면 헬리콥터를 샀다. 점점 어려운 장난감에 도전하게 되었고 본드 칠을 하기도 했고 물감도 칠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짓수가 늘다 보니 나중에 처치 곤란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될 때쯤 장난감은 모두 치우란 엄마의 말씀에 여기저기 만들어 놓았던 장난감을 한데 모으자 사과박스 3~4개가 필요했다. 이제 성인이 되어 조립 장난감에 대한 흥미는 잊고 살고 있지만 키덜트 시장이 커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처럼 그 옛날 조립 장난감에 열성을 보였던 꼬마들이 많았었던 거 같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긴 하지만, 추억만은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아닐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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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


살아있음에 감사해 하며

살아왔음에 감사해 하며

살아갈 날들에 고마워하며...


이렇듯 저렇듯

우리네 삶


머물러있는 자아만이 나를 나무라면

그 시건방짐에

몇 곱절 경의를 표하건만...


도약의 나래를 펼치는

그런 또 다른 자아가 있기에

우리는 이 삶 결국 살아내는구나!


살아 있음에 감사해 하며...


글 / 품질보증2팀 박영진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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