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 철철 넘치던 때의 일이다. 추석을 맞아 시골집에 내려가 늦은 저녁을 먹고 있자니 목소리가 울렸다. “아~에~동민 여러분~! 예고해드린 대로 내일 3시부터 한송정에서 노래자랑대회를 개최하오니 동민은 물론 차례를 지내려고 고향에 오신 분들도 빠짐없이 참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부터 이장님께서 확성기로 홍보를 해 와서,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노래자랑이 열릴 날만 기다린 것 같았다.


추석 당일, 점심을 먹고 나니 마을 앞 개천 옆에 있는 한송정에서 새마을 노래가 연이어 들려왔다. 우리 형제도 나락을 팔아 사온 신발과 새 옷들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벌써 이곳에는 동네 어른, 아이들과 서울이나 대구에서 다니러 온 선남선녀들로 빼곡했다. 우리 동네는 워낙 커서 편담, 가운데 담, 안담으로 나뉘어 은근히 경쟁도 하는 곳이라, 초등학교 사정으로 가을 운동회가 열리지 못할 때 한하여 몇 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 하는 노래잔치는 그 열기가 대단했다.


“자! 지금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송정 노래자랑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박수!” 드디어 사회를 맡은 우호아재(휴가를 나와 군복을 깔끔하게 다려 입은 데다 번쩍번쩍 빛이 나는 헌병 파이버를 삐딱하게 쓰고 폼 나게도 허리에는 권총까지 찼다)의 개회선언과 함께 1번 타자로 대구에서 섬유공장 사무원으로 근무한다는 영희가 양장을 쫙 빼입고 등장했다. 곡목은 <섬마을 선생님>.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누굴 찾아 왔던가. 총각선생님~” 당시엔 노래방 기계가 없었던 고로 반주는 신인가수로 등단했다는 안담의 홍기가 기타로 대신했다. 곡조에 맞춘 열창과 연이어 터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흥을 더해갔다.


다음은 동네에서 노래를 가장 잘한다는 주근깨투성이의 경자네 아줌마가 몸뻬 차림으로 나와서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시상품들을 진열해놓은 책상 뒤에 쪼그려 앉아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밋자루 내던지고서~”를 구성지게 불러댔다.


노래자랑 중간에 행해진 고고파티는 젊은이들의 무대였다. 대도시에서 다니러 온 총각들이 기타 가락에 맞추어 ‘트위스트 김’ 흉내를 내며 손발과 엉덩이를 신나게 흔들었다. 아가씨들은 총각들이 손을 잡아끄는 대로 한사코 도망친 것은 그때가 60년대였기 때문이리라. 한쪽에서는 차례 음식과 함께 “형!”, “아우!” 하면서 거나하게 막걸리판도 벌어졌다. 20여 명의 열띤 노래와 함께 한없이 밝기만 하던 해가 서쪽에 붉게 기웃거리고 있을 무렵,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던 행사가 끝이 났다. 채점이 진행되는 동안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의 동요가 고향을 떠나 있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드디어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예상대로 1등은 가운데 담의 경자네 아주머니. 라디오를 선물로 받았다. 2등은 편담의 영기 형이 남진의 <가슴 아프게>로 설탕 한 박스를 받았으며 3등에게는 밀가루 한 포대씩이 주어졌다. 등외에게도 세탁비누 하나씩 돌아갔다. 그러나 수상자건 등외건 참가자 모두 손뼉 치고 격려하고 축하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고 즐기고 행복했으니.


잠시나마 마을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고 고향의 정을 물씬 느끼게 해준 소박하고 순수한 축제였던 고향 마을의 노래잔치는 내게 더없이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제는 수몰로 인하여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추석을, 그렇게 가슴에 묻는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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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년한 딸이 결혼하면 근심·걱정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일시적인 착각이었다. 그래도 밝은 면이 더 많아졌으니 축복받은 일 아닌가. 나와 아내의 생일이 2주 간격이라 아들네가 외식에다 선물까지 챙겼는데, 올해부터는 내 생일은 아들네가, 아내는 딸네가 챙겨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서 즐거운 날이 배가 되었다. 지난 토요일이 딸네가 집으로 초대한 날이었다. 하루 전에 사위까지 반차를 내서 음식물을 장만했다고 하여 기대가 컸는데, 마침 주말농장을 가꾸어 놓았다고 해서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자동차로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 같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서울의 한복판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주차장을 벗어나 농장으로 가고 있자니 아들 가족이 정문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를 발견한 손자가 “할머니!” 하며 달려와서는 양팔을 벌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내와 나를 한꺼번에 감싸 안는다. 약간 경사진 언덕의 오른쪽으로 300평이 넘을 것 같은 농장이 네 곳이나 되었다. 사위와 딸의 농장 덕에 우리도 상추와 고추, 토마토까지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방울토마토를 발견한 순간부터 손자, 손녀는 물 만난 고기다. 허겁지겁 달려간 손자는 양손 가득 고추를 움켜쥐었고 토마토가 만만한 손녀의 양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팻말로 구분해놓은 여러 구역에는 고추, 상추, 토마토, 오이, 가지, 옥수수, 호박이 싱싱한 모습을 드러냈고, 땅콩, 고구마, 감자는 넝쿨이 무성하게 뻗어 있었다. 아내와 아들은 딸네가 땀 흘려 물주고 가꾼 작물들이 맺은 열매가 신기하고 감격스러운지 스마트폰에 담느라 분주하다. 며느리가 “땅콩의 열매가 어디 있는지 안 보이네.”하기에 “땅콩은 말 그대로 땅속에 열매가 달리는 콩이야.”라고 알려주며 웃었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구세대와 서울에서만 살아온 세대와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농장마다 한쪽에는 아담한 정자가 있고, 그 옆에서 바비큐를 즐긴 흔적이 보여 아들네와 딸네는 자연스럽게 다음에는 우리도 바비큐를 하자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아내는 잡초들을 헤쳐 가며 쇠비름을 채취하는 데 여념이 없다. 봉지마다 고추와 가지, 토마토와 오이를 가득 담고 난 손자가 물 호스를 발견하고는 신이 났다. 우리 집에 와서도 화분에 물주고 빈 통에 채우는 것을 빠뜨린 적이 없는 손자다. 아비에게 물을 틀라고 하고는 호스를 고추밭으로 향했는데, 셈이 많은 손녀가 같이 잡겠다고 달려드는 바람에 오이 따던 사위가 물벼락을 맞았다. “승하야, 고모부 옷이 다 젖었잖아.”라고 고모가 나무라는 데도, 물 뿌리는 재미에 흠뻑 빠진 손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물이 더위 먹었나 봐.”라고 해서 가족 모두가 웃음보를 터트렸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케이크를 앞에 놓고 축하노래를 부르는 손자, 손녀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서 놓치기 아까웠다. 반찬 중에는 언제 삶아 무쳤는지 내 앞으로 쇠비름이 놓여있었다. 요즘처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고추장으로 버무린 쇠비름에다 찬밥을 넣고 비볐던 추억이 남달라서 매년 한두 번씩은 먹게 되는 별식이다. 손자에게 “이게 몸에 좋은 음식인데 먹어볼래?” 했더니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지더니 벌겋고 긴 줄기를 발견하고는 “이거 지렁이잖아.”라며 기겁을 한다. 잎은 작으면서 줄기가 길고 억세서 경상도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만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못살던 그때의 입맛을 손자가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다니, 얼마나 얼빠진 할아버지인가?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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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경로석에 앉은 노인들의 새끼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굽은 여성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아마도 손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골절이 된 결과일 거라며 무심코 넘겼다. 그런데 최근에 내 왼쪽 새끼손가락이 15도 정도 굽게 되니 이야기는 달라진다.


며칠간을 그대로 지켜보다가 살이 뭉쳐서 부푼 부분을 주물기도 하고 반대쪽으로 굽혔다 폈다를 여러 번 반복하니 5도 정도로 회복되는 것 같았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원상태로 변하면서 신경이 쓰인다. 좀 심하게 만지면 통증도 느끼게 되어 같이 헬스 하는 여성 분에게 보여줬더니 자기도 10년 전에 그런 현상이 있어 쑥 찜질을 하고 침을 맞았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한의사와 상의하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한의원을 찾으려니 침이 두렵고, 외과를 가자니 저번처럼 퇴행성이라고 할까 봐 망설여진다. 3년 전이었을 거다. 한여름인데도 오른쪽 팔의 윗부분이 시려서 동네 의원을 찾았더니, 팔다리 운동을 여러 번 시키고는 퇴행성이라며 그 정도는 친구 삼아 지내란다. 어쩔 수 없이 여름에도 잠자리에 들 때는 긴 팔 셔츠를 걸치거나 수건으로 동여매기를 계속했지만, 새벽이면 그 부분이 쓰리고 아려서 잠은 고사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두 시간 정도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으니 신기하다면 신기한 이런 것이 퇴행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자칭 종합병원을 달고 산다는 아내가 머리와 목이 아팠다가 팔다리가 쑤신다는 말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아서, 내가 동네의사처럼 말을 하면 ‘도와줄 생각은 하질 않고 스트레스만 주는 몹쓸 사람’이라는 원망만 돌아온다. 말이야 쉽지, 통증을 동반하는데도 그게 위로라고 건넸으니 ‘잠든 마누라 코털 뽑기’ 아닌가.


미루고 미루다가 생전 처음으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손을 만져보고 굽혀보고 하더니 두꺼운 원서를 펼쳐 보이면서 백인에게 많이 찾아오는 ‘듀피트렌 구축’이 생소한 병명과 함께, 국내에는 치료제가 없으니 심하면 뭉친 살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하므로 대학병원을 소개해주겠지만, 심하지 않으니 당분간을 지켜보잔다. 그런데도 엑스레이 두 장에다 주사 주고 물리치료하고 처방전까지 내미니 문제가 많은 것 같아 걱정이 따랐지만, 골절에는 이상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단골 약제사는 별것 아닌 약이라고 위로하면서, 주사에다 처방전까지는 과다하다는 반응을 보이므로 과잉진료라는 느낌도 들게 하는 묘한 병이다.


인터넷에서 뒤졌더니 ‘이 병은 손바닥의 피부밑 건막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면서 손의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는 병이다. 대부분 50~60대의 남자에게 많이 발생하며, 당뇨•음주와 관련이 있고 유전적 영향도 10명 중 1명꼴로 나타나며 주로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백인에게 많다.’라고 되어있다. 치료제로는 2013년 말 FDA 승인을 받은 ‘지아플렉스(Xiaflex)’가 서양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클린턴 전 대통령이 페니스가 구부러지는 일명 바나나 페니스라고도 하는 병을 얻어서 이 약으로 치료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친구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내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영원할 것처럼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주위 분들의 별세나 병세를 알게 되면 내게도 예고 없이 닥쳐올 병이고 불행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60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으니 늙기는 늙었나 보다. 다음 달 중순,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 손자가 제 어미와 미국의 이모한테 놀러 간다는데, 손자 간식비에 치료제 구매할 돈까지 생각해 넣은 봉투를 건네야 할까 보다.


이 녀석이 2년 전에는 싱가포르를 여행하고 와서 “할아버지! 그곳에는 길에도 종이 한 장 없고 코도 안 커다란 사람들이 영어를 엄청 잘해!”라고 했었다. 그때부터 외국에 대해 궁금해하기에 지구의를 사주었더니, 지난 월드컵에 참여한 32개국의 나라와 수도를 거침없이 기억해서 가족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이번 여행 뒤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벌써 흥미가 간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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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타자, 김우열!”


짝짝~짝짝짝~! 어느 일요일 오후, 나의 왼쪽무릎엔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오른쪽에는 네 살배기 딸아이가 앉아, 흑백TV가 중계하는 OB:삼성의 야구경기를 보면서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OB를 응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아들은 OB어린이 야구단에 가입하여 청과 홍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파란재킷을 걸치고는, 시도 때도 없이 “홈런타자, 김우열!”을 부르짖고 다녔다. 그 열기도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시들해지니, 나 역시도 야구에서 멀어졌다.


가끔 시간 죽이기로 중계방송을 본 적이 있고, 최근 들어서는 학부모의 자격으로 연고전이 열리는 잠실야구장을 찾아 일 년에 한 번 함성을 지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김성근 씨가 3년간이나 꼴찌를 독차지하던 한화 감독으로 복귀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스컴을 장식하면서 서서히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감독으로서의 이력이 남달랐고 연령이 나보다 네 살이 많은 노인이었기에 어떻게 골치 아픈 팀을 이끌어갈지,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라 흥미가 고조되었다.


4년 만에 프로야구 판에 돌아온 그는 단숨에 리그의 지형도를 바꿔나갔다. 파격적인 선수기용과 특유의 ‘지옥훈련과 특타’를 앞세워 한화를 리그 중위권으로 이끌고 있다. 어제까지 31승 중 20승이 역전승이고 승률도 5할을 넘었다. 수년간 바닥에서 허덕이던 한화가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나를 포함한 한화 팬들이 ‘김성근식 야구’에 푹 빠져들고 있다. 1회에 2~3점을 주어도 바로 따라 붙고, 6~7회까지 3~4점 차이가 나도 벌떼 같은 불펜진과 특타로 달궈진 방망이로 승리를 움켜쥔다. 다른 팀이라면 벌써 채널을 돌렸을 거지만, 포기를 모르는 근성과 계속되는 짜릿한 역전에 마지막 이닝까지 눈을 돌릴 수 없다.


3연패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팀이지만, 선발진이 쉽게 무너지는 것과 같은 투수를 5일 사이에 3번이나 내세우는 무리에 ‘혹사 논란’까지 일어나고 있어 아슬아슬한 시간이다. 그러나 불리한 불펜진의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어깨를 툭 치는 할아버지 같은 모습에 웃음으로 대하는 선수들의 얼굴에서 믿음과 신뢰를 엿볼 수 있는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그래서인지 요사이는 월요일을 빼고는 즐겁다. 지난달부터 전 경기가 인터넷으로 중계됨을 알고는 그 시간만 되면 만사 제쳐놓고 PC 앞으로 간다. 1시간 정도 보고 나면 집사람과 즐겨보는 연속극을 봐야 하고, 9시면 습관대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므로 궁금증을 가슴에 묻은 체 꿈나라에서 헤맨다.


아침 6시 30분경에 <아침에 스포츠>를 라디오로 듣는데, 노인이 이긴 날이면 온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걸 느끼면서 PC를 켠다. 결과를 먼저 보고 하이라이트와 팀 승리에 관하여 ‘다음’이 요약한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두 시간이 금방이고, 신문의 스포츠 기사를 더하면 벌써 아침 드라마 시간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한화가 5위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 승률을 끝까지 지켜서 가을야구도 같이 하길 바라고 또 바란다. ‘늙은이가 한 분 돌아가시면 도서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는 입술 서비스에 불과하지만, 그가 승리하는 것은 늙은이의 경험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을 달군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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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만 먹고 나면 야구공 하나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묵직한 야구공은 살 돈은 없어, 학교 근처 체육사에서 야구공 모양을 한 테니스공을 샀었지요. 선수들이 던지는 커브 슬라이브를 유심히 봐두었다가 써먹는다며 엄지손가락과 검지 가운뎃손가락을 그럴싸하게 만들고 나서, 멋진 폼으로 포수를 향해서 던졌습니다. 하지만 커브나 슬라이브는 궤적부터 다른 공인데 항상 똑같이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 야구공을 가지고 실밥을 잡고 손목을 사용하는 공들이었지만 고사리손으로 흉내만 내다보니 그 공이 그 공이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시작한 경기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매 순간 임했던 생각이 납니다. 흙 바닥을 여러 시간 뛰어다니다 보니 옷은 흙먼지로 가득했고, 살은 새까맣게 타서 옷으로 가려진 부분과 햇빛에 노출된 부분이 확연히 차이가 났었습니다. 그래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해서 이기면 정말 기분이 좋아 방방 뛰면서 집까지 가게 되었고, 지는 날에는 집에 가는 내내 그 진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잠자리에 들면 온통 게임을 진 생각뿐이었지요.


프로야구가 하는 날은 TV를 혼자 독차지하고 누구도 다른 채널을 돌리지 못하도록 리모컨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오는 선수 한 명의 이름을 적고 수비 위치며 타율까지 받아 적었습니다. 야구하는 세 시간 동안은 오로지 TV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설가가 공 던지는 방법이라며 직접 시범을 보일 때면 그 노란 테니스공을 얼른 가져와 똑같이 잡아보기도 했습니다. ‘너희는 내일 다 죽었어! 내가 드디어 신무기를 장착하는 순간이구나!’ 까먹지 않으려고 그림 솜씨도 없으면서 노트 옆에 공 모양과 손을 서툴게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벼르고 별렀던 타자가 등장하자, 콧대를 납작하게 할 신무기에 온갖 힘을 최대한 주고 멋지게 던져봅니다. 타자의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고 삼진으로 물러날 때 그 희열과 쾌감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 내가 해냈구나! 해냈어!’라는 그 성취감은 끝내줬습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고 야구할 시간도 없어졌지만, 가끔 시청하는 야구를 볼 때마다 꼬마 시절 열정 하나로 운동장을 누비면서 야구에 미쳐 살던 그때가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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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끼리 부부동반으로 '쿤밍(곤명)'을 다녀오기로 하고 여행준비를 하던 중, 동생의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취소시키고 부랴부랴 예약한 곳이 '황산'이다. 몇 년 전, 초등학교 동기들과 동행한 '장자제(장가계)'가 그리도 좋아서 일찌감치 점 찍어 놓은 곳이기도 하다. 장가계는 올려다보아서 좋고, 황산은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가슴 깊이 묻어둔 0순위 여행지다.


지난주에 다녀온 3박 4일 여행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공항을 10여 분 거리에 두고 여행가 직원은 "비행기 연결문제로 1시간 반 정도 지연된다."고 전한다. 예정대로 출국 수속을 받고 나니 다시 30분이 지연되어, 결과적으로 4시간 넘게 면세점을 돌고 돌았다. 귀국하여 구문을 훑어보니, 아시아나 직원의 구차한 변명은 "히로시마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여객기의 활주로 이탈사고의 여파"가 우리 비행기까지 파급된 것이다.



여행객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실리도 얻지 못한 채 출국하여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청대 옛날 거리다. 책상 크기만 한 벼루 말고는 인구 25만 명의 소도시라서 그런지 인사동 골목에 비하면 조촐하다. 이곳은 1년에 70일 정도가 맑다는데, 어제의 우중충한 날씨와는 확연히 다른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하늘이다. 한 시간 걸려 도착한 케이블카 승차장에는 이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우리보다 네 배나 높은 목소리를 낸다는 한족들 사이에 묻혀서 1시간 40분간의 고생 끝에 8인승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1,600m까지 10여 분을 오르면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감탄사뿐이다. 1979년 덩샤오핑(등소평)이 반바지 차림으로 등정한 후 1985년부터 내외국인에게 개방되고, 199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대형사진이 홍보하고 있었다.


한 시간여를 걸으면서 눈요기를 하고는, 신이 빚은듯한 거암 괴석에다 기송까지 품은 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오악을 돌아보면 다른 산들이 눈에 안 차고, 황산을 돌아보면 오악이 눈에 안 찬다."는 명나라 지리학자 서하객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상에서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황산의 숨은 비경을 엿볼 수 있는 서해 대협곡 탐방시간이 다가왔다. 주어진 자유시간은 두 시간, 일행은 여성 11명에 남성이 5명이다. 여성 6명은 출발점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동행한 여성 3명과 남성 2명도 중도 포기했다. 1,600m 출발선에서 1,450m를 오르내리는 1환까지 나를 포함한 3명이 다녀왔고, 1,380m 지점인 2환의 모노레일 반환점까지는 40대 부부만이 완주했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잔도에서 바라보면, 멀리서는 웅장한 바위산이 다가오고,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아래로는 아기자기한 만물상이 펼쳐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기가 막히는 여러 폭의 산수화다. 너무도 청명한 날씨 탓에 골짜기를 휘감아 도는 운해를 볼 수는 없지만, 신비한 속내는 속속들이 눈에 들어왔다. 깎아지른 절벽에는 난간조차 없는 곳이 많아 약간만 비틀거리면 천 길 낭떠러지라, 현기증이 염려되어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고 심호흡을 거듭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설치해 놓은 view point를 한 곳도 빠짐없이 모두 들렀다. 이런 절경을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수직 절벽에 도대체 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중국의 기술력이 여전히 궁금하다.


그래도 2%의 아쉬움이라면, 1환의 반환점을 2환의 반환점으로 착각하고 돌아선 것과, 편하게 내려오면서 절경을 볼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동조한 여행객들 때문에 계약서에 적힌 코스의 다양한 풍경을 더 감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탈 수 있다는 50인승의 태평 케이블카는 1시간 45분을 기다려야 했고, 하강하면서 본 풍경은 오를 때 운곡 케이블카에서 본 것과 대동소이했다.



나머지 이틀간은 예상대로 흐리고 비가 내렸다. 황산 근교에 있는 5A급(우리로는 5성급)국가 지정문화재 4곳과 박물관을 답사했다. 500억 원(?) 가치의 아름다운 분재와 당대 500인의 나무조각상을 보유한 '포가화원'을 제외하고는 봐도 그만 보지 않아도 섭섭할 것 같지 않은 문화재들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 한국인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지난해만 17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외국 비행기로는 KAL과 OZ만 운행된다는 이곳이야말로 후회 없는 관광지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숙제를 해결하고 나니, 더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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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나는 좋은 말, 아름다운 말을 보면 메모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심지어, 그 좋아하는 드라마보다는 정말 잘 만든 광고가 흥미롭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 냈을까? 어떻게 이런 말을 넣을 생각을 했지?’ 혼자서 감탄하며 놀라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시간 날 때마다 하는 일은 ‘좋은 네이밍을 지어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네이밍을 짓는 것이지, 온종일 머리를 쥐어짜도 의미와 뜻에 부합하는 단어를 끄집어내기는 어렵다. 의뢰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야 하고, 단어도 한두 개, 그리고 거기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강렬한 느낌까지 받게 하여야 하니, 이건 글을 쓰는 창작과정과 맞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쥐어짜 내도 나오지 않던 단어가, 책을 펴면서 우연히 본 낯선 단어로 인해 그 고민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혹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 속에서 찾아질 때의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 ‘아! 이거네!’ 까먹을까 싶어서 서둘러 휴대전화를 챙겨 저장한다.


막상 그 단어들을 다 꺼내 이렇게 저렇게 짜 맞추는 시간이 다가오면, 또 한 번 많은 생각을 한다. 과연 이 단어를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일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각인될 수 있는 단어가 될까? 고민의 터널 속에서 한참을 헤맨다. ‘괜찮아. 이 정도면 됐어.’라고 생각하고 응모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 보면, 뭔가 좀 허전함을 느끼게 되고 다시 한 번 수정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예전에 어떤 개그맨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수없이 반복하고 대본을 수정해서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무대 오르기 전까지 대본을 또 한번 수정한다고 말이다. 농부가 씨앗을 뿌려 김을 메고, 잡초를 뽑으며 들짐승을 쫓고, 비와 바람의 악조건을 이겨내며 튼실한 열매를 맺게 되듯, 하나의 완벽하고 멋진 말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수많은 과정과 노력이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머리 쓰는 일은 좀 그만해야겠다 싶다가도, 오늘 배달되어 온 신문 속에서 낯선 단어를 찾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이 일에 많은 애정을 품고 있구나 느끼게 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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