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맹추위에 외출하기도 귀찮고 불안해서 요즘 들어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게 홈쇼핑의 여행상품선전이다. 다녀온 곳을 추억에 잠기게 하고 못 가본 곳은 풍경만으로도 기분을 업그레이드해준다. 어느 채널이나 ‘본 상품은 국적 항공기라 품격이 다르고 마일리지도 ○○○○만큼 제공됩니다.’ 비싸지만 혜택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객을 모집하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차보다도 많이 타본 국적 항공기의 마일리지가 수십만 마일을 넘었다. 해외 출장은 주로 이등석을 이용했다. 국내선은 5년간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울산이나 포항 아니면 김해로 날아다녔다. 당시는 제2국적항공사가 취항한 지 일천하여 정상적으로는 편도에 500마일이 제공되었지만 2회에 한 번쯤은 1,000마일씩 제공-지금과 비교하면 5배 정도의 수준이다-하여서 눈송이처럼 불어났다.


국내선은 앞쪽에서 2, 3번 줄이 VIP석인데 내게도 혜택이 주어져서 왕회장이나 국회의장의 옆에 앉아가는 영광(?)을 누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품질 문제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기에 출장이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대학 동기들이 여러 곳에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어, 실보다는 득이 커 지금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고진감래’랄까? 90년대만 해도 그동안 싸인 보너스 마일리지로 수월하게 아내와 아들이 미국을 여행하고, 우리 부부는 태국을 이등석으로 편안하게 다녀왔으며, 친구와는 시드니 4박 5일간의 모든 비용을 마일리지로 해결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수속 중에 본인도 몰랐던 ‘200번째 탑승을 기념하여 라운지 무료이용권을 드린다.’고 하여 일행들의 부러움을 산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국내선은 물론 국제선의 탑승장도 시장처럼 변하고 쇼핑에도 마일리지가 주어지면서 공짜 여행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매년 한 번 꼴은 해외여행을 다녔기에 무료나 승급을 요청했지만, 영업소 직원조차도 어떤 기준으로 배정되는지를 모른다면서 ‘이 기간에는 좌석이 없습니다.’로 일관했다. 국내 여행에도 사용하고 침구류와 워킹화를 구매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용할 곳이 영화 구경이나 항공사가 운영하는 호텔과 리조트로 한정되어 있다. 쉬운 게 영화 예매인데 이건 이해가 힘들 정도로 마일리지 차감이 많다. 궁여지책으로 자식들을 패밀리회원으로 묶었지만, 여전히 수십만 마일이나 남아서 애물단지로 변한 지가 오래다.


그런 차에 막내 처제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언니 집으로 간다는 소식에 아내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5개월을 남겨둔 시점이라 ‘이때다.’ 싶어서 영업소를 찾았더니 15일간을 체크하고는 하루가 그것도 이등석으로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내는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않아서 내가 동행하기를 원하는 장거리 여행도 비토 놓는 처지라 원하는 좌석이기도 하다. 처제들과 상의를 거듭하여 그저께 매표를 마쳤다. 7명이 동행인데 바로 아래 처제도 같은 등급으로 가기로 했기에 아내는 기백 만 원 가까이 절약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탑승 때는 웃음으로 환영해 주더니 사용할 때는 찬밥 신세니 이것도 갑질 아닌가 싶다. 여전히 삼식이 신세에 오랜만에 아내한테 점수를 따서 당분간이나마 편안하게 밥 얻어먹을 처지가 된 것 같아 실소를 금치 못한다.


사외독자 /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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