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고 오는 것은 플라스틱 가방이다. 그 안에는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장난감이 20개나 들어있다. 가족들과 놀다가 시시해지면 방에 들어가서 게임을 하자고 조르지만, 여러 번 규칙을 알려주어도 헷갈리는 나 때문에 토라지기 일쑤다. 그러고는 혼자서 상대편 역할까지 하면서 즐긴다. 자동차가 카드를 만나 순간적으로 변신하는 로봇 장난감인데, 작년부터 어린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나도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6개를 사주었는데, 7개월 전 조카딸 집에 다녀와서는 소유욕이 강해졌다. 손자보다 한 살 많은 형이 40개를 보여주면서 호기심을 증폭시킨 탓이다.


조카사위는 20대에 도제로 들어가 사진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30대 후반인 지금은 강남에서 웨딩 삽을 운영한다. 알짜배기 땅에 지은 넓은 공간을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신기한 장난감에다 먹을거리에 빠져들어서 10시가 넘어 집에 가자는 데도 손자와 손녀는 더 놀다 가겠다며 졸랐다고 한다. 특히 손자는 변신로봇에 푹 빠져서 자고 갈 테니까 먼저 가라고 떼를 썼단다. 동일한 원리의 변신 기능으로 자동차의 모양과 크기만 달라질 뿐인데, 왜 그렇게도 열광할까?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통한 선전에 현혹되었나 보다. 녀석은 자기는 28개밖에 없는데 아빠가 사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말 잘 들으면 한 달에 2개씩 12개를 사주마.” 손가락 걸고 확인도장까지 찍고 약속한 것을 이번에 지키게 된 것이다.


우리 세대는 빈곤한 환경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에서 얻은 막대기나 돌멩이로 장난치면서 놀았지만, 지금의 어린이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최첨단 문화를 접하면서 살아간다. 녀석이 유치원생이었을 때는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 흉내를 낸다고 ‘꿀꿀이 삼 형제’와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할아버지, 내가 할게.”라며 중간에서 가로채더니 나보다 더 길게 더 재미있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녀석 또래일 때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똑같은 이야기를 10번씩이나 반복해도 까르륵 웃으면서 들어주었는데 말이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어 녀석에게 들려줄 거라고 오래전부터 보관해 온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이솝 이야기」, 「노란 손수건」 같은 서적을 없애버렸다.


휴대전화만 해도 그렇다. 아내는 최신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만 데이터 이용에는 애비 어미 것을 가지고 논 손자에게 한참을 뒤처져 있다. 옆에 있으면 동영상 촬영이나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를 어떻게 불러오느냐고 묻기 일쑤다. 어제는 손자와 통화하면서 녀석이 쓴 일기와 같이 보라고 해도 모르니까 한참을 설명해주더니 “할머니, 앞으로도 모르는 게 있으면 전화하든지 문자로 보내세요.” 한다. 우리네야 3G급인 폴더 폰도 버거워하고 데이터 이용은 컴퓨터에 의존하지만, 손자 녀석은 애비 폰으로 동영상 찍고 보기, 책 읽기, 음악 듣기, 길 찾기 등도 해결한다. 조금만 더 지나 자기 스마트폰을 가지면 지구 반대쪽에 일어나는 사건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을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실린 이상한 글자들이 무슨 뜻인지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만날 때마다 성숙해진 손자가 부럽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unity >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피소드] 가족의 힘  (0) 2016.12.21
[시 한 편] 사는 것은  (0) 2016.12.14
[에피소드] 40  (0) 2016.12.07
[시 한 편] 그렇게 살자  (0) 2016.11.30
[에피소드] 김장  (0) 2016.11.23
[시 한 편] 꽃잎  (0) 2016.11.18

Comments : 댓글을 달아주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