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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먹방이 대세인 시대에 음식이라는 코드로 책읽기

by 앰코인스토리 - 2016. 5. 18.


'먹방‘이니 ’쿡방‘이니 이런 줄임말을 쓰는 시대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먹거리가 아무리 풍부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결식아동의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쪽방촌 할머니들이 하루 한 끼로 살고 계신 시대니까요.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방은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배고픈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지요. 방송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먹방은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의 계급이라는 이데올로기까지 주입하기 때문입니다. 블로그나 SNS에 쏟아지는 맛집 사진, 혹은 음식을 배경으로 한 셀카도 이를 대변합니다. 인기 있는 음식점에 가서 핫한 음식을 맛보고, 사진으로 남기고, 다른 이들에게 인증을 해야만 트렌드세터(유행선도자)로 대접을 받습니다. 방송뿐만 아니라 도처에 식욕과 욕망이 버무려진 ’푸드 포르노‘가 범람한다는 지적에 끄덕이게 됩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먹방에 열광하는 걸까요?


먹방은 기존의 요리 프로그램이나 맛집 소개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요리 프로그램이 요리를 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그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취지에서 출발한다면, 먹방은 미각 대신 시각을 중요시합니다. 먹으면서 느끼는 맛이 아니라 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타인이 무엇인가를 먹는 행위를 지켜보고 열광하는 거지요. 실제로 자신이 배가 고픈지 아닌지는 상관없어요. 


먹방은 육체적 허기가 아니라 정서적 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로저 굴드는 식탐이 많은 환자를 심리적으로 치료하면서 ‘정서적 허기’라는 개념을 주장했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사람들이 이를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음식을 탐하는 것이 바로 정서적 허기입니다. 비만 전문의 박용우도 현대인을 위협하는 새로운 질병인 '음식 중독'에 대해 연구하면서 심리적 배고픔에 대해 설명합니다.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은 진짜 배가 고파서 음식을 찾는 생리적인 배고픔을 모르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주위에 널려있는 음식을 얼른 입으로 가져갑니다. 


무엇을 먹는다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육체적 욕구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거나 허기진 위장을 채우면 되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육체의 배고픔보다는 욕망의 허기에 더욱 빠져 있습니다. 넘쳐나는 먹방, 쿡방, 맛집 셀카는 더 비싸고 더 좋은 음식을 잘 먹고, 더 많이 먹고자 하는 욕망의 반영입니다. 


음식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라고 하지요. 맛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먹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인지, 우리는 왜 이렇게 먹는 것에 연연하는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 우리의 허기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 정신적인 것이라면, 먹방이 아니라 ‘먹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만큼은 눈으로 요리를 먹는 대신, 눈으로 음식이라는 코드를 읽어봅시다. 



미감(未感), 혹은 미감(美感)

「미감」 

이주은, 이준 지음, 예경


제목이 아주 감칠맛 납니다. 이주은이라는 저자는 「그림에 마음을 놓다」와 같은 베스트셀러로 유명합니다. 미술을 공부한 그녀는 그림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글로 고스란히 풀어놓지요. 공저자 이준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유명 셰프입니다. 둘이 만나 이야기하는 「미감」이라니! 그림과 요리를 어떻게 접목했을까 궁금하시지요? 책에는 동서양 미술 작품 속에 담긴 음식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래전부터 화가들에게는 음식과 식탁의 조화가 근사한 그림의 소재였습니다. 예를 들면,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에 나타난 주막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이태백이 읊은 시에 나타난 술 이야기, 술 하면 떠오르는 화가 장욱진의 술버릇 이야기까지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음식과 술에 대한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어느 순간 책 속으로 풍덩 빠지게 되지요. 예술 속의 음식을, 음식 속의 예술을 만나는 경험이 신선합니다.



이 책을 읽지 않고 맛을 논할 수 있을까

「미각의 제국」 

황교익 지음, 따비


요즘 방송에 많이 나오셔서 유명해진 푸드 칼럼니스트 황교익 선생의 책입니다. 이 분은 방송에서 솔직한 말씀을 가감 없이 하기로 유명하지요.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에 출연해, 맛이 없으면 대놓고 맛없다고 하시는 바람에 지금까지 녹화해 놓고 잘린 방송프로그램도 많다고 해요. 음식과 맛을 다루는 책이지만 맛집 소개도 없고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지도 않아요. 심지어 음식 사진조차 없어요. 하지만 어떤 책보다 풍부한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지혜가 담겨있지요. 한 가지 단어를 두고 한 챕터를 이끌어가는 힘이 대단합니다. 된장, 고추장에 대한 글이야 그렇다 치고, 와인, 막걸리, 콜라와 돈가스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분석도 대단합니다. 문장이 정성스럽고 수려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미각의 조정자인 ‘아내’라던가, 가장 처연한 음식인 ‘걸식’에 대한 글은 철학적이기도 합니다. SNS나 블로그에 맛집 소개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읽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허기를 품격있게 채워줄 인문학 만찬!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어크로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7만 명이 수강했다는 인기 교양 강의의 주제가 참 재미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이자 세계적 석학인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에 대해 언어학적으로 접근합니다. 언어학적인 접근이면서도 심리학적이고 경제학적인 다방면의 통찰을 담고 있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무심하게 읽는 식당 메뉴판에는 우리의 무의식을 움직이는 전략이 담겨 있다던가, 포테이토 칩 포장지 문구에서 계급의 사회학을 읽는다는 식입니다. 인기 있는 맛집 블로거들이 사용하는 리뷰의 언어에서 심리학을 읽습니다. 예를 들면, 리뷰에서 ‘유혹적’이라던가 ‘섹시한’이라는 성적 언어가 더 많이 등장하는 레스토랑일수록 음식 가격이 더 높았다는 분석도 나오지요. 재미있는 언어적 예시로 가득한 이 책을 읽고 나면 더는 식당의 메뉴판이나 홍보성 맛집 블로거에 속지 않고, 언어의 속에 감춰진 은유와 감정,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해독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될 겁니다. 


간절하게 그리운 따뜻한 밥 한 그릇

「내 인생의 밥상」 

원재훈 지음, 바다출판사


시인이자 소설가 원재훈이 쓴 에세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가슴이 살짝 저려옵니다. 빙그레 웃는 얼굴이 순수한 시인은 마치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슬고슬한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독자에게 권하는 듯합니다. 그저 담담히 추억들을 하나씩 꺼냈을 뿐인데 어느새 눈앞에는 자장면인지 짬뽕인지 모를 추억이 한 그릇 아른거리고, 생선구이와 김치를 집는 젓가락이 눈물 나게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소설가 김훈은 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밥은 절박하고도 간절하다. 먹거리에 관한 원재훈의 이야기는 그 모든 절박함을 아우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재훈의 밥 이야기로부터 달아날 수가 없다. 이 책이 나오면, 나는 또 원재훈과 함께 자장면을 먹으러 가야 한다.”라고요. 이 책을 읽으면 아구아구 먹어대는 먹방을 보며 허기를 달래지 않아도, 밥 한 공기에 간장 종지 하나만 놓고도 꼭꼭 씹어 행복을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 배나영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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