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나라 필리핀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에서 먹던 제철음식이 무척 생각나는데, 그중에서도 해산물이 가장 그립다. 필리핀은 더워서 그런지 회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고급 회라고 일컫는 라푸라푸(다금바리의 일종)도 한국에서 흔한 광어나 우럭보다 더 식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마 더운 바다에 살면서 꼬들꼬들해야 할 살들이 늘어져서 그런가 싶다. 특히 요즘 같은 12월이 오면 철 만난 과메기, 굴, 방어 등이 너무나도 먹고 싶어진다. 비린내가 나는 해산물에 두루 잘 어울리는 와인이 있을까?


사진출처 : www.spyvalleywine.co.nz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추천하고 싶다. 소비뇽 블랑은 샤도네이와 함께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대표적인 청포도 품종 중 하나인데, 오크통 발효가 아닌 스테인리스 통에서 양조한 소비뇽 블랑은 특유의 풀 깎는 냄새와 열대 과일에서 나는 향이 섞여 있으며 맛은 약간의 산도와 드라이함이 받쳐주는 청량감이 특징이다. 특히 청정지역 뉴질랜드에서 나오는 소비뇽 블랑이 최고다. 마치 푸른 초원 위에 서 있는 소녀의 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풀 향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 같다고나 할까.


한국에 있었을 때 겨울이 되면, 가끔 굴이나 과메기를 먹기 위해 와인 지인들과 BYOB모임을 하곤 했다. (BYOB란 Bring Your Own Bottle의 첫 자들을 따놓은 것으로 각자 자기 와인을 가져와서 함께 맛보는 모임을 의미한다) 매우 다양한 와인들이 등장하고 괜찮은 와인들도 많지만, 나에게 스파이벨리 소비뇽 블랑(Spy Valley Sauvignon Blanc)은 나름 비장의 무기였다. 클라우디베이, 킴크로프트 등 많이 접해봤을 듯한 와인들보다 좀 희귀한(?) 이 와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참고로, 스파이밸리란 뉴질랜드 남섬 말보로 지역에 있는 계곡의 이름으로, 여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전송된 암호 위성신호를 모니터하는 커다란 돔 형태의 흰색 건축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스파이밸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사진출처 : www.thelivingmoon.com


예전 홈페이지에는 저 사진이 있었는데 지금 들어가 보니 아래와 같은 설명만 있을 뿐이다.


사진출처 : www.spyvalleywine.co.nz


필리핀에서의 와인 가격은 참 착해서 스파이벨리 소비뇽 블랑은 18,000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현재 국순당에서 수입하고 있고 70,000원 정도로 나와 있지만, 와인장터나 세일할 때 사면 30,000원 초반에 구매할 수 있으므로 그리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닐 것이다. 국순당 와인 담당이 누군지는 몰라도 참 좋은 와인을 골랐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괜찮을 거라 기대해본다.


사진출처 : www.spyvalleywine.co.nz


필리핀에서는 벌써 5번 이상 스파이벨리를 만났는데 그때마다 필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처음 소비뇽 블랑을 접하는 분이라면 갓 깎은 풀냄새와 드라이함이 거북할지는 모르지만 과메기나 굴과 함께라면 환상의 마리아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도 1년 동안 개인적으로 새로운 만남과 변화, 도전이 함께하였고, 와인과도 새로운 만남과 변화, 도전을 경험하였습니다. 도전적인 새로운 만남이 저에게 늘 즐거움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굴곡이 있기에 좋은 만남들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겠지요. 앞으로도 더 다양한 와인들과 부대끼며 그 경험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인에 관한 짧은 지식의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6년 새해에는 더욱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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