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중반, 때 아니게 한반도를 강타한 것은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라 불리는 바이러스 감염증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보니, 한국(Korea)의 머리글자 KO를 따서 ‘코르스’라고 해야 한다는 우스개까지 등장했습니다. 전염병은 메르스 이전 인류의 탄생 무렵부터 줄기차게 우리를 괴롭혀 왔습니다. 인간이 전염병을 조금이나마 다스리게 된 것은 과학의 힘입니다. 생물학과 화학의 발전은 의학에 응용되어 전염병 치료를 가능하게 했고, 공학에 이르러서는 원인을 차단해 발병을 막아주었습니다. 감염을 차단하는 도시와 건축 설계를 통해서 말이지요. 이번에는 세균학의 시조인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를 살펴보려 합니다. 현대인의 위생 환경을 재설계하도록 기반을 마련한 사람으로서 폭넓은 의미의 엔지니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의 진짜 주인공은 사람 사이에 감염되는 질병입니다.
사진 출처 : https://goo.gl/0Bo58E
날씨가 더워지면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골치를 앓습니다. 참외며 수박이며 아이스크림 껍데기까지, 먹을 땐 참 좋았는데 집안에 잠시만 두어도 초파리가 꼬입니다. 150년 전쯤의 사람들처럼 초파리 자연발생설을 믿게 되지요. 우리의 직관과 달리, 초파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껍질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유충이 붙어 있거나 어디서 날아오는 것이지요. 1861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라는 과학자가 「자연발생설 비판」이라는 책을 발표하며 세균설을 입증해 낸 이후로 우리 인간은 이전과 다른 세계에 살게 된 셈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포함해 훨씬 넓어진 세계에서요.
공기를 떠다니는 세균이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인간이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 또는 페스트가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메르스의 원인으로 구박받은 낙타처럼, 페스트는 쥐벼룩을 옮기는 들쥐가 주범이었습니다. 메르스가 그러하듯 병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든 질병을 멀리 옮기는 것은 사람입니다. 의학이 발달해 역학 조사를 벌이고 감염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종종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죄 없는 희생자가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메르스 이후 의료계 종사자의 자녀들을 따돌린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듯 말입니다.
중세 유럽 페스트 때는 유대인이 표적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에 따라 손과 발을 깨끗이 씻었기 때문에 사망자가 적어서 더욱 밉보였던 것 같습니다. 병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사람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사악한 공기를 막겠다고 환기를 시키지 않거나 오물을 치우지 않고 약으로 쓰는 바람에 페스트는 더 번져갈 뿐이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공포로 인한 광기야말로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전염병인가 봅니다.
미생물은 공기와 물을 통해 인체로 들어간다
미생물에 관해 사람들이 그다지 많은 것을 알아내지 못한 채 몇백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19세기 초인 1822년,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루이 파스퇴르가 태어났습니다. 루이의 할아버지는 농노, 아버지는 가죽을 가공하는 무두장이였습니다. 그림을 잘 그렸던 소년 루이는 어찌 된 일인지 화학을 전공으로 택했습니다. 프랑스 최고의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지요. 루이 파스퇴르가 최초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849년의 주석산 연구부터입니다. 음식과 와인의 나라 프랑스답게 파스퇴르는 포도주가 너무 빨리 산화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한 양조업자의 의뢰를 받게 됩니다.
“알코올 발효는 효모가 일으키는 것이고, 잡균들이 번식하면 맛이 변한다.”
오늘날에는 참 쉽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을 밝혀낸 것이 파스퇴르입니다. 저온 살균하여 맥주나 와인의 변질을 막은 것이 파스퇴르의 공인 것이지요.
잠시 프랑스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깜짝 놀랄 일이지만, 당시 산부인과 의사들은 산모에게서 아이를 받은 후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산모가 의사의 손을 통해 병균에 감염되어 죽어 나갔습니다. 조산원보다 병원의 산모 사망률이 더 높았지요. 1846년 헝가리의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가 여기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의사들에게 손 씻기를 지시하자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제멜바이스는 20대 의사였기 때문에 선배 의사들은 한사코 손 씻기에 저항했습니다.
사진 출처 : https://goo.gl/KAJQ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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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스꽝스러운 비극은 축축한 기체에서 우연히 병균이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을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어디선가 병균이 옮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우연이라는 믿음이었지요. 1861년 루이 파스퇴르가 공기 중에 떠도는 미생물이 적절한 환경의 액체를 통해 증식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 과학계에 던진 충격을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백조 모양의 S자목 플라스크에 액체를 담아두면 공기는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미생물은 통로가 막혀서 상하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한 멸균 실험이 인류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했습니다.
파스퇴르의 영향은 영국의 외과의사 조셉 리스터(Joseph Lister)에게도 도달합니다. 리스트는 1865년부터 외과 수술을 할 때 손뿐 아니라 수술도구, 수술복을 석탄산으로 소독합니다. 수술복에 묻은 피를 고귀한 상징으로 여겼던 동료 의사들의 비웃음을 사면서도요. 리스터는 훗날 파스퇴르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미생물이 인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파스퇴르의 방법론은 점차 유럽 사회의 지지를 받기 시작합니다. 많은 과학자가 비슷한 실험 결과를 얻은 덕분이기도 합니다. 1865년 영국을 시작으로 1894년 프랑스를 거쳐 유럽 도시들에 하수시설이 일반화됩니다. 비록 콜레라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죽어 나간 이후였지만요. 오염된 물이 질병의 원인이고, 상하수도를 분리해 잘 처리해도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가 알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백신으로 병을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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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자연발생설을 뒤집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또 파스퇴르의 세균설이 질병을 막는데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봤습니다. 파스퇴르의 직접적인 공헌 중 하나는 닭 콜레라 백신의 발명입니다. 닭에게 콜레라 주사를 놓는 실험을 하다가 한 연구원이 깜박 잊고 주사를 늦게 맞혔다고 합니다. 약해진 콜레라균을 맞은 닭에 항체가 생겼다는 사실이 발견됩니다. 파스퇴르는 이 연구를 발전시켜 광견병 백신을 발명했습니다. 이전 같으면 죽었을 사람들이 파스퇴르로 인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루이 파스퇴르는 여러 대학의 부장과 학장을 거쳤고, 평생에 걸쳐 연구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생전에 인정받은 과학자였지만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딸 셋을 일찍 잃기도 했고 1868년에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의 연구는 멈추지 않았지요. 1895년 만 73년의 삶을 마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말입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긴 루이 파스퇴르의 장례는 프랑스 국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조국인 프랑스 맥주가 독일 맥주보다 맛있기를 바라서 발효 연구를 더 열심히 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지요. 물론, 당대의 과학자들과 경쟁하며 연구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것은 옥에 티로 남아있습니다.
여전히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물로 루이 파스퇴르가 지목되곤 합니다. 그의 사후 100년 동안 세균과 바이러스만큼이나 이를 막는 백신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메르스로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오만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자면 좁은 공간에서 공기로 전파되는 질병을 막기 위해 손을 자주 씻고 접촉을 피하라는 당연한 수칙을 지켜야겠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편견에 사로잡혀 질병의 예방을 거부한 어리석은 인간의 후예입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잠시 우리가 사는 주변을 둘러봅니다. 마실 물, 씻을 물, 버릴 물이 분리된 수도관, 냄새와 미생물의 침범을 막는 세면기와 싱크대의 S자형 트랩, 물 없이 씻는 알코올 세정제,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방진 마스크가 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해낸 루이 파스퇴르의 후예로서 많은 것들을 발전시켜 왔네요.
메르스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감염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소리 없이 고생하는 의사부터 간호사, 응급요원, 병원 청소 노동자까지 의료 관계자 모두를 응원합니다. 세균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의 일원으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연민과 격려를 보냅니다.
글쓴이 김희연은_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다. 자기 과시에 지나지 않는 착한 글이나 빤한 이야기를 피하려고 노력하며 쓰고 있다. 경력에 비해 부족한 솜씨가 부끄럽고, 읽어주는 독자에게는 감사하며 산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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