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여 개의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잠시 쉬어가라는 뜻을 담은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길이 1m 정도의 좌판과 등판이 받침대로 형성되어 있는 평범한 의자다. 어른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길이이긴 하지만, 세월이 오래된 탓에 가운데 좌판은 움푹 내려가 있다.
처음에는 노란색 계통의 페인트칠이 있었고, 주변의 나무색들과 고려했는지 푸른빛이 도는 노란색이었다. 하지만 여름이면 비를 맞고 겨울이면 눈이 쌓이고 한여름엔 뙤약볕에 온종일 있다 보니 지금은 색이 무척 바랬다. 처음에 이 의자를 누군가 들고 올라오면서 참 꼼꼼하게 고정시켜 놓았는지, 받침대는 땅과 잘 밀착되어 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의자에 걸터앉았다. 산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고, 평지보다는 경사도가 있는 탓에 몇 분 동안 숨을 골라야 했다. 고개를 들어 전방을 응시했다. 의자 앞으로 보이는 전경이 아름다웠다. 의자 앞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가로막지 않아 꽤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채 1m도 앞도 볼 수 없을 때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처음 이 의자를 설치했던 누군가도 이런 점을 고려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상까지 오르고 다시 내려가는 길, 내가 앉았던 그 의자에 배낭을 멘 등산객이 쉬고 있다.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물을 마시고 있었다. 힘든 산행 중 마시는 물맛은 얼마나 꿀맛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참 등산객이 많았던 시절을 회상해 보면 주인은 따로 없었지만 그 의자에서 추억들이 만들어졌다. 산에서는 모두가 친구가 된다는 말처럼, 배낭에 싸온 과일 하나, 고구마 한 개도 서로 나누는 미덕이 있었다. 땀을 닦으며 일어서려는 순간, 뒤따르던 등산객이 의자에 앉자마자 가방을 열어 꺼냈던 고구마를 받아들던 기억이 있다. 찰나의 망설임도 아주 잠시, 산사람의 착한 얼굴 속에서 호의는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이 의자 위였다. 이 바랜 의자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런 추억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
유명 관광지에도 의자들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유튜버가 바다가 보이는 언덕을 소개하면서 앉았던 의자가 생각난다. 그냥 서서 바라볼 수 있는 풍광이었지만, 의자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그 좋은 광경을 오래 지켜보게 되었다. 의자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음으로 해서 그곳에 오는 이들을 위한 배려심이 아닐까. 그런 배려를 받은 이들은 그런 배려심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게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1년하고도 365일 동안 의자는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 환한 미소를 띄고 있을 것이다. 지쳐서 힘들어 있는 이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사할 것이다. 세상의 고달픈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무상무념을 할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도 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힘내서 열심히 달려보라고 말없이 응원할 것이다. 삶이 힘들어질 때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을 찾아 이 의자에 앉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나를 다시 찾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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