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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conductor/스마트 Tip

[세상을 바꾸는 발견들] 절대 정밀도의 원자시계? 9,192,631,770번의 진동으로 1초를 정의하다!

by 앰코인스토리.. 2026. 5. 21.

9,192,631,770번의 진동으로 1초를 정의하다!
절대 정밀도의 원자시계

 

▲미국에 본사를 둔 시계 회사 바티스 하와이(Bathys Hawaii)는 자체 원자시계를 탑재한 손목시계 시제품인 세슘 133(Cesium 133)을 개발했습니다. (사진출처 : phys.org)

인류의 역사는 ‘시간 측정’의 정밀도를 높여온 여정과 궤를 함께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읽기 위해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농경시대에 시간은 곧 생존을 위한 자연의 신호였습니다. 또한, 항해술이 발달하며 인류는 바다를 정복하기 위해 바다에서도 오차가 적은 해상 시계가 필요했습니다. 바다에서 경도를 정확히 측정할 시계가 없어 많은 배가 좌초됐기 때문이지요.

 

경도를 측정하는데 왜 정확한 시계가 필요한 걸까요? 지구는 24시간에 360도를 회전하므로, 1시간은 경도 15도의 차이임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꼭 필요한 것은 출항 시점의 정확한 시간이 되겠지요. 배가 어디에 있든 현지 태양시와 기준 시간을 비교하면 경도가 나옵니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심한 흔들림과 온도 변화, 습기, 마찰 변화 등으로 시계는 수 분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바다에서도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는 기술은 바다를 정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출처 : www.michlmayr.com

영국은 상금까지 걸며 해상에서 정확히 작동하는 시계를 만들기 위해 애썼고, 존 해리슨에 의해 ‘크로노미터’가 개발되었습니다. 그 결과, 영국 해군의 작전 수행 능력은 월등히 앞서 나갈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가장 먼저 정확한 해상지도를 완성하며 대항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시계 개발이 단순히 정확한 시간 약속의 의미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과학의 영역임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지요.

 

20세기 초, 수정(Quartz)의 압전 효과를 이용한 수정 시계가 개발되어 시계를 대중화하는데 기여했지만, 외부의 온도 변화나 미세한 충격에도 진동수가 변하는 등 분명한 한계가 있어 절대적인 정밀도를 필요로 하는 현대 첨단 과학의 요구에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외부 환경에도 결코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의 절대 기준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원자를 떠올렸지요. 원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 규칙적인 에너지 전이 진동을 통해 우리가 찾는 그 절대 시계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 194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Isidor Isaac Rabi)입니다.

 

▲라비가 1962년 노벨상 수상자인 존 바딘(왼쪽)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오른쪽)와 함께 있는 모습. (사진출처 :  thehourglass.com)

그는 원자핵이 외부 자기장에 반응해 특정 주파수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원자 빔 자기 공명법’을 발견하여 태엽 대신 원자의 일정한 진동을 측정 도구로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이후 원자시계 기술로 또 한 번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데요, 198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노먼 포스터 램지(Norman Foster Ramsey)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원자가 두 개의 서로 다른 지점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간섭 현상을 이용해 주파수를 측정하는 ‘분리된 진동장법’을 개발합니다. 이는 상호작용 구역에서 원자가 오래 머무를수록 정밀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던 라비의 방법 대신 원자시계의 정밀도를 수백 배 이상 끌어 올릴 수 있었지요. 가장 안정적인 원자량 133의 세슘원자를 사용해 특정 상태에서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시간을 1초로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두 차례의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원자시계는 극한의 정밀도로 완성되어가며 1997년 스티븐 추(Steven Chu)와 클로드 코엔 타누지(Claude Cohen Tannoudji) 등이 ‘레이저 냉각 및 포획 기술’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상온의 원자는 초속 수백 미터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측정이 매우 어려운데, 사방에서 이들에게 레이저를 쏘아 원자의 에너지를 빼앗으면 원자는 절대 영도(0K)에 가깝게 온도가 낮아집니다. 이렇게 얼어붙은 원자들은 마치 허공에 멈춘 듯 제어되어, 과학자들이 원자의 진동수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게 되지요. 이 기술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GPS 위성 내부에 탑재된 원자시계의 핵심 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일은 과학으로 만들어진 기적이지요.

 

▲사진출처 : tunbury.org

기계식 톱니바퀴에서 진추, 수정, 원자로 끊임없이 진화해온 시계의 진화의 핵심은 ‘항상성’에 있습니다. 지구의 회전 속도는 조석 마찰이나 지각 변동에 의해 미세하게 변하기 때문에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삼았던 과거의 시계는 정확하다고 볼 수 없었지요.

 

만약, 우리가 여전히 부정확한 지구의 자전에 시간을 맞춘다면 현대 기술 문명은 순식간에 마비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0만 분의 1초라는 찰나의 오차만 발생해도 GPS 위치 정보는 약 300미터 이상의 오차를 냅니다. 이는 단순히 길을 잘못 드는 문제를 넘어, 자율주행차의 충돌 사고나 정밀 유도 미사일의 경로 이탈 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요.

 

또한, 수나노 초의 오차는 초고속 금융 거래에서 데이터 충돌을 일으켜 수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5G 및 6G 통신망의 동기화를 무너뜨려 네트워크 전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습니다. 시간의 오차는 단순히 ‘오차’를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 있는 일이지요.

 

▲스트론튬 격자 광학 원자 시계 (사진출처 : www.nist.gov)

미래의 시계는 얼마나 더 정확해질까요? 놀랍게도 더 정확하게 맞춰진 시계가 가능해졌습니다. 현재의 세슘 시계를 뛰어넘을 차세대 기술로 ’광격자 시계(Optical Lattice Clock)‘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2005년과 2012년 노벨 물리학상을 휩쓴 ‘광주파수 빗(Optical Frequency Comb)’ 기술과 양자 제어 기술을 기반으로 가능해졌지요.

 

기존 원자시계가 마이크로파를 사용했다면, 광격자 시계는 마이크로파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의 광학 영역 레이저를 사용합니다. 레이저 빛으로 만든 격자(그물) 안에 수천 개의 원자를 가두고 동시에 진동을 측정하는 이 시계는 우주가 탄생한 138억 년 전부터 작동했어도 단 1초도 틀리지 않을 정도의 경이로운 정밀도를 자랑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수십억 년 동안 누적 오차가 1초 이하에 이를 정도의 정밀도입니다.

 

차세대 원자시계는 단순한 시간 측정을 넘어 초정밀 중력 센서로의 활용 가능성도 가집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데, 광격자 시계는 매우 작은 높이 차이로 인한 시간 변화까지 측정이 가능하여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하면 지하 질량 분포 변화를 탐지해 자원 탐사나 지각 변화 연구에 활용 가능성이 있지요. 또한, 지진 및 화산 활동의 조기 경보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고, GPS 없이도 우주선의 위치를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어, 심우주 항법 기술의 핵심 요소로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해외 주식의 실시간 매수, 자율주행차의 안전거리 확보, 심지어는 전력망의 블랙아웃 방지에 이르기까지 사실 원자시계가 관여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 표준기관들은 찰나의 오차를 잡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원자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요. 인류가 시간을 더 세밀하게 쪼개고 정밀하게 측정할수록, 우리는 우주의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결국, 원자시계는 인류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문명을 한 차원 더 높이 끌어올리려는 끊임없는 도전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시간의 표준: 세슘 원자시계에서 광격자 시계까지" (2025)

- NobelPrize.org, "The Nobel Prize in Physics 1944, 1989, 1997, 2005, 2012 - Lectures and Background"

- NIST(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How Atomic Clocks Work and Why They Are Critical for GPS"

- Science, "Optical lattice clocks: The future of timekeeping and geodesy" (2024 Review)

- NASA JPL, "Deep Space Atomic Clock: Navigating the Solar System with Precision" (2024)

- 동아사이언스, "1초의 미학, 노벨상이 빚어낸 원자시계의 세계" (전문 과학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