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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참치캔

by 앰코인스토리.. 2025. 10. 30.

사진출처 : freepic.com

참치를 보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고등어가 국민밥상을 차지하고, 가끔씩 갈치와 생태를 볼 수 있었고, 오징어와 낙지, 꼴뚜기만을 즐겨 먹었었다. 참치는 참 먼 나라 생선으로만 여겨졌더랬다. TV에서 큰 원양어선이 참치를 잡아 올리는 화면이 나올 때 ‘참치라는 생선도 있구나!’ 알게 되었다. 그러다 통조림이 등장하면서 정말 신기하게도 참치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워낙 커다란 녀석이라 그 큰 놈을 통조림에 한 마리를 다 담을 수는 없고, 극히 작은 양으로 나누어 담다 보니 그 형체와 모양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살색 빛깔을 내는 참치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뚜껑을 따면 캔 안에 가득 담긴 참치는 참 먹음직하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지인이 선물이라며 참치캔 세트를 선물로 주고 갔을 때, 상자 가득 담겨진 참치캔을 보며 한없이 기뻤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한꺼번에 많아진 참치들을 보면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 엄마와 궁리를 했던 적도 있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물려가고 있을 때쯤이라 참치를 돼지고기와 대신해 보자는 결론이 이르렀다. 물론 김치찌개는 돼지고기 비계가 들어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참치로 밀어부친 것이었다. 청량고추, 파, 다진 마늘이 함께 들어간 김치찌개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참치캔의 기름을 쏙 빼고 담백한 참치만이 찌개에 들어가면서 생선 특유의 비린 맛이 없고 국물의 느끼함도 사라졌다. 김치 본연의 맛을 살리고 참치의 영양을 한꺼번에 취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밥 두 공기를 싹싹 비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은 참치캔을 하나 꺼내어 뭘 할까 고민했다. 김치는 다 떨어져서 찌개를 만들 상황은 아니다. 찌개라는 선택지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 옛날 김치찌개를 재현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쉽다. 참치를 밥에 넣고 고추장과 비비면 훌륭한 비빔밥이 완성되겠지만, 왠지 참치를 그냥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라면을 하나 사왔다. 라면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아마 인터넷을 뒤져 참치로 해먹을 만한 요리를 찾아보면 꽤 많은 요리 방법이 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튀긴 면이라 최대한 참치의 기름을 따라내는 방향으로 택했다. 참치캔을 열고 채망 위에 참치캔을 쏟았다. 채망 아래로 기름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채망 위 참치살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지 않았다. 기분이 좋았다. 생물이나 통조림이나 신선한 것을 먹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가끔 고등어나 꽁치 통조림을 열며 실망한 적도 있었다. 흐물흐물해진 살을 보면 왠지 찝찝했기 때문이다.

 

기름이 빠지고 본격적으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을 넉넉하게 넣고 팔팔 끓으면 면과 스프를 집어넣었다. 참치를 어느 시점에 넣을까 잠시 고민되었다. 참치살을 살리는 방향이 좋겠다는 생각에 청량고추와 파를 넣는 말미를 선택했다. 일찍 넣어 오래 끓이면 진한 국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국물을 많이 먹을 생각이 없었기에 참치살도 최대한 건져 먹을 수 있도록 가열시간을 줄였다.

참치의 향과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한 숟가락 국물을 떴다. 보통의 라면보다 감칠맛이 났다. 참치 한 젓가락을 떠보았다. 기름기가 사라진 참치는 다소 퍽퍽했지만 씹는 식감이 좋았다. 라면을 한 단계 진화시킨 느낌마저 들었다. 라면 홀로 있었을 때의 허전함이 사라지고, 풍성하고 알찬 맛과 향이 느껴졌다. 라면에 부족했던 비타민과 단백질이 골고루 담기다 보니 한 젓가락 한 젓가락에 기운이 샘 솟는 듯했다.

 

어느새 참치는 우리와 가까워졌다. 캠핑에서는 비상식량으로, 일상에서는 맛있는 밥 반찬으로, 홀로 혹은 함께 해도 잘 어울리는 참치는 언제까지나 곁에 두어야 할 친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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