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오늘은 특별한 일을 해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거창하고 일은 아니다. 소소하지만 왠지 뿌듯할 것 같은 일이다. 사전 작업 차원에서 어제는 책상을 정리하며 꼭꼭 숨겨져 있던 녀석들을 싹 다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내일은 꼭!’이라며 다짐했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부지런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들었던 것이 잠깐 후회되었다. 가위를 찾았다. 칼보다는 가위가 편할 듯싶었다. 금방 나타날 것만 했던 가위는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엔 그렇게 쉽게 보이던 물건이었건만 정작 필요한 때는 애를 먹인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커터 칼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 쓴 치약을 집어들었다. 오늘 특별한 일의 주인공이다. 다 쓴 치약 튜브는 4개가 되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개수가 늘어났다. 튜브 끝을 잘랐다. 안쪽에는 여전히 치약이 남아있었다. 칫솔로 치약을 긁어내니 칫솔모에 가득 묻어 나왔다. 양치질을 할 충분한 분량이었다. 장난기 있는 친구 녀석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핀잔을 했을 것이다. “지구를 구할 것도 아니면서 무슨 유난을 그렇게 떠니?”하고 말이다.
몇 년 전이었다. 한 시사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으로 나온 주인공은 지방에서 상경해 미용을 공부하는 친구였다. 돈을 벌어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독하게 생활하는 그녀의 일상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절약정신을 강조하고자 등장했던 것이 바로 치약이었다. 그녀는 다 쓴 치약 튜브를 갈라 마지막까지 다 긁어 모았다.
그 영상 이후로 나도 치약 튜브를 갈라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남아있던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절약정신의 표본을 삼거나 지구를 지켜보자는 위대한 한 걸음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고를까 저걸 고를까 어떤 향일까 요모조모 따지고 어렵게 고르는 게 치약이고 한 번 사면 한 달 정도는 함께해야 하는 친구이며 동지인데 끝이 허망하면 왠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까지 싹싹 비워 깨끗한 모습으로 치약을 보내주는 일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새로운 치약과의 만남이 더욱 설렐 것 같았다.
튜브의 치약을 다 긁어 모아 양치질하는 날은 유난히 이가 잘 닦는 느낌마저 든다. 하얀 거품 속에 보이는 이들이 더욱 빛이 난다. 마치 100m 달리기 하는 선수가 10m를 앞두고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 달리듯, 치약도 그런 마음이리라.
이제 새로운 치약을 사야 할 시간이다. 이번에는 어떤 치약이 좋을까, 선반 앞에서 한참을 고민할 것이다. 부디 끝까지 좋은 기억이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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