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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 책VS책] 예술과 삶!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 삶과 맞닿아 있는 예술

by 앰코인스토리.. 2024. 2. 16.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
삶과 맞닿아 있는 예술

상상해 보세요.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이라던가, 아니면 근처 상가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혹은 거대한 빌딩 앞에 제복을 입고 서 있는 경비원이 알고 보니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작가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시골 동네에서 혼자 살면서 매일 낡고 펑퍼짐한 옷을 입고, 맨발로 산책을 다니는 할머니가 알고 보니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춤꾼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상상만 해도 재미있네요. 그런데 이런 재미있는 상상이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랍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의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는 실제로 10년 동안 뉴욕의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책에 담아냈어요. 원래의 직업이 <뉴요커>의 기자였으니 글 솜씨가 무척 좋겠구나 싶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미술사에 대해서도 박학다식할 뿐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를 오래도록 어루만진 시선이 글에 녹아 있습니다. 저자의 삶을 다룬 에세이가 아니라 한 권의 예술 비평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제주도에 사는 여든 넷의 할머니는 작년 말에 「생의 마지막 날까지」라는 책을 썼지요. 스물 여덟 살에 ‘그 나이에는 무용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뉴욕에서 춤을 배우기 시작해 세계적인 무용가로 거듭난 홍신자의 책입니다. 여든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아 자신의 장례를 모티브로 작업을 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요. “내가 서 있는 그 자체가 춤이다.”라고 말하면서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일상에서 예술의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고, 삶을 예술처럼 살아낸 이들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 조현주 역  |  웅진지식하우스

 

패트릭 브링리는 20대에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였지요. 성공적으로 <뉴요커>에 입사하고, 야심만만하게 미래를 설계하던 젊은이였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배려심 깊던 형이 시한부 암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는 병원을 오가며 형의 투병 생활을 지켜보게 되지요. 자신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던 날, 형의 장례식을 치룬 패트릭 브링리는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형을 상실한 고통 속에서 그는 가장 아름다운 곳을 동굴 삼아 도피합니다.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지요. 하루에 8시간 내지 12시간씩 가만히 서 있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10년을 서 있는 동안 300만 점의 예술작품들과 연 700만 명의 관람객을 만납니다.

 

고요하고 고독한 세계로 침잠했던 그는 아름답고 거대한 예술 작품들과 그 공간을 이끌어가는 보안 예술가들과 어울리면서 다시금 일상을 일구어 갑니다. 10년 동안 예술이 건네는 위로를 받으며 자신의 상실을 어루만지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가 잔잔하지만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책을 읽다 보면 당장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날아가 그가 말한 그림들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어집니다. 아마 그의 친구였을 경비원들과 웃으며 눈인사를 하게 되겠지요.

 

춤추듯 순간을 살고, 자유롭게 죽음을 맞이하기

「생의 마지막 날까지」

홍신자 지음  |  다산책방

 

무용가 홍신자는 내딛는 걸음마다 이슈를 만들어 냅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호텔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운명처럼 보게 된 춤 공연 때문에 자신도 춤을 추기로 결심합니다. 남들 모두가 만류하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한 홍신자는 작품마다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세계적인 전위 예술가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지요.

 

홍신자의 첫 작품은 언니를 생각하며 무대에 올린 <제례>라는 작품이었어요. 시집을 가서 딸 둘을 낳은 언니는 심장병으로 10년 가까이 투병을 하다가, 서른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홍신자는 인생의 1/3을 병석에 누워있다가 죽은 언니의 한을 풀어주고 싶어 <제례>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언니의 한이자, 여자의 한이자, 자신의 한을 그렇게 풀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죽음과 삶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나선형의 대각선>, <순례>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지요.

 

홍신자 선생은 2020년, 여든이 되던 해에 자신의 장례를 미리 치룹니다. 살면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연습이지요. 여든이 넘은 홍신자 선생이 써낸 이 책을 읽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젊고 자유로운 에너지로 자신만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죽음과 가까워지는 법을 배우고, 인생을 예술로 만들어갈 영감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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