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향이 솔솔 풍기고 빨간 고춧가루 빛깔이 아름답고 식초의 상큼한 맛을 내는 녀석이 있습니다. “내가 주인공입니다.”라며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설 수는 없지만 음식의 풍미를 한껏 높여주는 데 한몫을 하곤 합니다. 바로 ‘파 무침’입니다. 지글지글 불판에서 삼겹살이 익어갈 때면 양념이 베인 파 무침에 마늘 한 조각 얹고 쌈장까지 올리면 맛있는 쌈은 70%는 완성됩니다. 거기에 잘 익은 삼겹살 한 점을 중앙에 올려 놓으면 풍성한 쌈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동그랗게 말아 입안에 집어넣고 나면 입 안 가득 행복해집니다. 고기의 쫄깃쫄깃함과 마늘의 사각거림과 파 무침의 양념이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룹니다.
삼겹살이 불판 위에 올려질 때 고기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후추를 톡톡 뿌리는 손님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보다는 파 무침과 함께 싸 먹는 쌈이라면 그런 불편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정도입니다. 파와 마늘은 특유의 향과 맛으로 인해 한식 이곳저곳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고기와도 이리 잘 어울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나 파 무침까지 가는 과정은 참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한때 엄마와 아버지가 하는 식당에서 일을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삼겹살집이다 보니 저녁 장사에 쓰일 파를 꽤 많이 구입해야 했습니다. 파 서너 개라면 할 만할 수 있겠지만 장사에 쓰이는 파의 양은 상당했습니다. 가족 모두 달라붙어 묶여 있는 단을 풀어 뿌리 부분을 자르고 물에 씻어 커다란 쟁반 위에 올려 놓으면 수북하게 담겼습니다. 그리고는 라면 안에 송송 써는 파의 형태가 아닌 뿌리와 줄기를 함께 할 수 있도록 길쭉길쭉하게 썰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파는 썰면 썰수록 양파처럼 눈물샘을 자극하는 성분이 품어져 나왔기에 몇 번 썰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한동안 눈을 들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울면서 파를 썰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파 써는 게 워낙 어렵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파채를 써는 기계를 큰 마음먹고 사시기도 했습니다.
장사가 시작되면 그렇게 썰어진 파를 담은 그릇에 엄마는 맛있는 양념으로 파 무침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너무 많이 무쳐 놓으면 아삭거리는 맛이 사라진다며 파의 숨이 죽지 않도록 상황을 봐가며 무쳤습니다. 고기와 먹어도 맛있었지만 파 무침만으로도 훌륭한 음식이었던 터라 파 무침에 반해 찾아온다는 손님도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 파 무침에 대한 기억이 남아선지, 후배가 “삼겹살 먹으러 가죠. 제가 사겠습니다.”하면서 팔을 잡아끌 때면 후배에게 “그 집은 파 무침을 맛있게 하나?”라 먼저 묻곤 했습니다.
후배는 고기는 기름장이 최고라며 불판에 고기를 올리기 무섭게 기름과 소금을 섞어 기름장을 만들고 쌈은 내 쪽으로 밀어 넣었을 때 나는 파 무침에 눈길을 먼저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젓가락 파 무침을 집어 입 안에 넣고서 음미해 보았습니다. ‘괜찮네.’라는 느낌이 들면 합격점을 주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게눈 감추듯 고기를 없애는 후배를 보면서도 쌈에 파 무침, 마늘, 고추와 고기를 얹어 입에 넣었습니다. 파 무침과 삼겹살이 잘 어울리지는 느낌에 온몸이 행복해졌습니다. 먹성 좋은 후배는 혼자서 2인분을 거뜬히 해치우는 모습에 놀라면서도 참 맛나는 음식과 함께 한 고기 저녁 만찬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습니다. “여기 괜찮죠?”하는 후배의 말에 엄지를 들어 화답을 보이자 후배의 얼굴에 환해졌습니다. 오랜만에 먹어본 파 무침의 사각거림이 나의 얼굴에도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고기와 좋은 단짝을 이루며 고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파 무침이 그리워진 김에 파 한 단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야겠습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Community >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토에세이] 호주 시드니 (10) | 2024.01.09 |
---|---|
[포토에세이] 승촌보 일출 (0) | 2024.01.04 |
[포토에세이] 42개월이 만든 눈사람 (0) | 2023.12.26 |
[포토에세이] 바다 (0) | 2023.12.19 |
[포토에세이] 설렘의 계절, 겨울 (0) | 2023.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