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작동원리 또는 기계가 돌아가는 원리를 말하는 것을 ‘메커니즘(Mechanism)’이라고 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메커니즘에 기반하여 작곡되고 연주되어집니다. 인간의 감정을 instrument(도구, 기구, 악기)를 사용하여 표현을 하도록 만들어진 잘 짜인 매커니즘입니다. 영어의 Instrument가 악기(樂器)라는 뜻과 기계(機械)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도체를 다루는 우리와 같은 엔지니어들에게는 꽤 친근한 단어가 기계입니다. 라벨의 <볼레로(Bolero)>는 반복되는 기계적인 리듬감으로 유명한 곡입니다. 단순하면서 반복적이고 일정한 음율이 마치 시계가 동작하는 것처럼 연주됩니다.
라벨, 볼레로(Bolero)
영상출처 : https://youtu.be/og4PkQGvC70?si=Boo27qVIKEgGOBNC
시계(時計)는 인간이 휴대하기 가장 쉽고 가벼운 기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웨이러블 기계가 있어서 시계의 효용가치가 많이 떨어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시계가 부의 상징이자 매너의 척도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시계란 “시각과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 전반을 의미하며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장치“라고 합니다. 시계 부품의 주를 이루는 무브먼트는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시계의 구성을 보면, 시계를 구동시키는 심장 같은 무브먼트(톱니바퀴, 기어, 태엽)와 유리 케이스, 문자판, 바늘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복잡하면서 정교한 도구들이 모인 집합체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작곡가와 악보, 악기, 연주 공간들이 모여 인간의 감정 흐름을 표현합니다. 시계(The Clock)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 있습니다. 하이든의 교향곡 101번 <The Clock>입니다. 교향곡 2악장 전체에 걸쳐서 똑딱거리는 리듬 때문에 <시계>라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이든(Haydn) 교향곡 101번 시계 중 2악장 Andante (Symphony No 101 in D “The Clock”)
영상출처 : https://youtu.be/tyO5RyhavNU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은 인간의 감정 또는 사상을 표현하는 음악 뿐만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다양한 형태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기차(汽車)를 주제로 작곡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기차가 등장한 것은 1814년 영국의 스티븐슨이 증기 기관차를 발명하면서부터입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에서 기차가 나타는 것은 19세기 음악가들에 의해서입니다. 기차는 당대 최고의 기술이 종합된 거대하고 경이로운 물건이었습니다. 기차는 증기 기관차(Steam locomotive)의 줄임말이지만, 현재는 증기 기관 외에 다른 동력을 사용하여 궤도를 달리는 차량을 통칭하고 있습니다.
신세계 교향곡으로 널리 알려진 드보르작(Antonin Dvorak)은 기차 애호가로 유명합니다. 1850년 여덟 살의 드보르작은 마을에 철도가 놓이면서 기차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이후 유명해진 후에도 틈만 나면 기차역에 들러 모든 열차의 차종과 제원, 노선도, 시각표 등을 외우기도 하는 등 기차에 대한 특별한 애착보였다고 합니다.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 바퀴를 보면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라는 <유모레스크>는 기차 소리와 이 곡의 반복 리듬이 거의 일치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을 정도입니다.
유모레스크(Humoresque)란 19세기에 유행하던 음악 장르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유머를 담은 음악입니다. 18세기부터 19세기는 산업혁명의 발달로 인해 사회가 전반적으로 기계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작곡가들은 이러한 산업화 현상을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다루고자 유모레스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어 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반항기가 가득한 음악적 사춘기를 연상하게 하는 작곡을 많이 하게 됩니다. 스케르쪼(Scherzo), 즉흥곡(Impromptu)들이 비슷한 류의 장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드보르작(Dvorak), 유모레스크(Humoresque Op.101 No.7 in G-Flat Major)
영상출처 : https://youtu.be/WSmQ5jkCT7w
요즘에 들어서 가장 핫한 뉴스가 AI 인공지능에 대한 뉴스일 것입니다. 반도체 관련된 일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뜨거운 관심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 AI가 현대문명의 새로운 자리를 차지해 가는 것 같습니다.
AI가 발전되면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직업 중에 미디어 직무 분야가 있습니다. ChatGPT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글쓰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입니다. 몇 개의 간단한 음정을 AI에게 입력하면 AI는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실제로 Aiva Technologies에서는 AI 기반의 작곡을 발표하여 공식적인 작곡 음악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Aiva Technologies, I am AI(Variation)
영상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gzGkC_o9hXI
AI가 작곡했다고 기계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인 음악이 아니고 마치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같이 감정 조절이 잘 표현된 곡입니다. 제목이 <I am AI>인데 마치 ‘나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AI가 작곡했다는 정보를 배제하고 이 음악을 듣는다면 기계가 만들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AI가 작곡한 곡 중에 드보르작의 115개의 작품 음악을 교육받고 분석하고 패턴을 추출한 후 이를 토대로 만든 곡이 있습니다. 창작이 아닌 데이터를 분석하여 짜집기 형태의 작곡이지만, 전혀 새로운 형태로 드보르작의 음악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Aiva Technologies, Dvorak From The Future World
영상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zsa9P4qkpzU&t=250s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직은 AI의 작곡에 대해 ‘창작물’이라고 정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창작이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며 특별한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 하에 작곡되어진 음악이라는 것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교육(Deep Learning)되어진 패턴을 코드로 변환하여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감정의 상태(희로애락)와 의식의 흐름을 도구(Instrument)를 이용해 인간인 작곡가가 표현한 것을 서로가 공감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클래식 음악 중에 가장 인간의 희로애락을 잘 표현한 음악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중에 표제(제목)를 직접 표기한 것은 교향곡 6번뿐입니다. 각 악장에도 1악장은 시골에 도착했을 때 유쾌한 감정,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은 시골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뇌우, 폭풍, 5악장은 폭풍 후의 기쁜 감사의 기분이라고 표제를 베토벤이 직접 악보에 붙여 놓았습니다. 기계적이거나 인공지능적인 아닌 순전히 인간적 감정에 의한 음악의 표현입니다. 특히 3악장의 경우, 경직되어 있거나 답답한 현실의 기분을 자연스레 해소시켜주는 느낌을 줍니다. AI가 모르는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악장입니다. 음악으로 잠시 고향 시골 마을로 떠나볼까요? 기계적인 일상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마음의 쉼을 찾아보는 만추(晩秋)가 되기를 바랍니다.
베토벤(Beethoven) 교향곡 6번 전원 3악장(Symphony No.6 “Pastoral” 3rd movement)
영상출처 : https://youtu.be/YAw40X12tck
※ 사진출처 : 어도비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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