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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아욱된장국

by 앰코인스토리.. 2023. 5. 30.

사진출처 : 크라우드 픽

우리 아침 밥상에는 아욱된장국이 자주 올라오곤 했었다. 파란 빛깔을 머금은 아욱은 된장과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많은 재료를 마다하고 아욱을 자주 고집했다. 어느 날인가 소쿠리 가득 쌓인 파란색 물체를 보고 화들짝 놀랐었다. 당시 파란색 생물체 스머프가 한참 인기를 얻고 있었던 탓에 파란색 빛깔을 띤 물건이면 눈에 확 들어왔을 때였다.

 

커다란 잎과 줄기가 온통 같은 빛깔을 내는 걸 보면서 참 신기했었다. 널따란 잎은 살짝 데쳐 호박잎처럼 쌈을 싸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는 “이게 아욱이다.”라면서 아욱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다. 큼직큼직한 크기라 한 소쿠리를 가득 채웠다 해도 양은 많지 않다고 하셨다. 여느 채소처럼 손질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아욱을 왜 엄마는 선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배추만 해도 씻고 다듬고를 반복하면서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지만, 아욱이란 놈은 찬물에 몇 번 씻고 나면 그뿐이었다. 줄기와 잎이라 뿌리채소처럼 흙이 씹힐 일도 없었다. 물기를 머금은 아욱은 색깔이 더 선명하고 또렷해졌다. 채소마다 특유의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아욱은 밖으로 내뿜는 향은 거의 없었다. 채소면 늘 나는 풋내가 약간 발현되는 정도였다. 국으로는 정말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딱 맞는 채소였다. 몇 번 물기를 털어낸 아욱을 먹기 좋게 자른 후 커다란 솥에 집어넣으셨다. 엄마가 직접 담근 구수한 된장 맛을 아욱은 그냥 담아갈 모양이었다.

 

두부김칫국만 해도 참 많은 준비와 정성, 그리고 재료들이 필요했지만, 아욱된장국을 지켜보니 된장과 아욱, 그리고 엄마의 비법 들깻가루가 전부였다. 그 흔한 다진 마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다진 마늘은 어떤 음식을 하든 함께 들어가 맛의 풍미를 높이곤 했지만 아욱된장국에서는 팔짱을 끼고 있어야만 할 처지였다. 소금간이나 간장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너무 간단했다. 너무 오래 끓이면 아욱이 물러질 수 있어 적당한 불 조절이 필요했다. 과연 이런 재료를 가지고 국의 맛이 날지 몰랐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 엄마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셨다. 많이 해왔기에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으리라. 밥상 위에 올라온 아욱된장국을 마주하고 보니 새삼 느낌이 달랐다. 그동안 그냥 밥상에 올라와 있는 아욱국을 보다가 그 과정을 보고 나서 맞이하는 아욱된장국은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아왔던 그림에서 감흥을 느낄 수 없고 늘 들어왔던 음악이 일상화되면 그냥 무뎌지듯, 밥상에서 보던 똑같은 국을 똑같은 시간에 받아 들면 맛을 음미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코끝에 스며드는 된장국의 향이 참 향기로웠다. 와인을 마시는 법을 누군가가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냥 마셔도 될 술을 왜 향기를 맡고 잔에서 한 바퀴를 돌리는 행위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던 때가 후회되었다. 너무 무심했었다. 뜨거운 김이 아욱과 된장의 조화된 향을 밀어 올렸다. ‘아 맛있다!’ 저절로 탄성이 나올 뻔했다. “뜨거우니 천천히 먹어.” 엄마의 말소리가 귀에 울렸다. 깊은 맛이다. TV에서 음식 평가사들은 음식 본연의 진한 맛이 우러나올 때 내뱉곤 했었다. 그런데 나도 그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이상의 단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내는 것만이 위대하다고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들깨의 향이 된장에 잘도 버무려졌다. 고소한 맛을 내는 것은 순전히 들깻가루의 역할일 것이라 생각했다. 다소 식은 밥을 수저로 떠 한 숟가락씩 국그릇에 말았다. 국그릇 밖으로 국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수저씩 옮겼다. 하얀색 백미가 파란색과 노란색 속에 어우러졌다. 국그릇을 거의 비울 때쯤 조미료가 들어가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먹을 때는 참 맛있었는데 다 먹고 나면 물 한 컵 정도는 먹어 입안을 헹궈야 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욱된장국은 뒷맛도 깔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된장국이라 뒷맛이 불편할 수 없었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의 힘이었다.

 

가까운 가게에서 아욱을 집어 들었다. 시장을 몇 바퀴 돌면서도 찾지 못했던 아욱을 발견한 것이다. 잽싸게 아욱 두 묶음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욱의 그 모습은 변함이 없다. 넓적한 잎과 긴 줄기는 옛날 추억으로 그대로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엄마의 반응이 궁금하다. 많이 기뻐하실 듯하다. 엄마도 아욱된장국을 참 많이 해주고 싶었으리라. 오늘 저녁 식사가 참 많이 기대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