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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밤

by 앰코인스토리.. 2022. 11. 23.

▲사진출처 : 크라우드 픽

가을을 담뿍 안은 커다란 밤이 눈에 들어왔다. 늦가을을 오롯이 담아 색깔도 단풍빛을 담은 밤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를 맞이한 것이다. 벌레가 많아 농약을 많이 친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밤에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실제로 씨알이 굵은 밤을 비싼 가격에 주고 사도 한 소쿠리 찌면 10열에 한두 개는 밤벌레를 발견하곤 실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찬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늦은 오후에 횡단보도 앞에 자리를 깔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한참동안 자리를 지켰을 아주머니를 생각하니 뭐라도 하고 싶어졌다. 선행이라는 말을 꼭 듣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였지만 이미 마음은 거기로 가 있었다. 직접 쓴 글씨로 5,000원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그릇에 가득 담긴 밤을 보니 그 정도가 5,000원어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밤들이 윤기를 내고 있었다. 내가 밤을 사는 모습에 호기심이 갖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릇 하나에 담긴 밤의 양은 조금 모자를 듯싶어 하나 더를 얘기하자 아주머니는 기쁜 얼굴을 하며 봉지를 꺼내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덤이라며 밤 몇 개를 더 담아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꽤 묵직했다. 10분 거리의 집까지 오른손, 왼손을 몇 번이나 번갈아 옮겨야 했다.

엄마는 밤을 보시고 좋아하셨다. 입 안이 궁금하던 차에 잘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후다닥 밤을 찌기 시작하셨다. 찐 밤도 맛은 있지만 솔직히 날이 추워질 때는 군밤이 더 생각나서 밤 몇 개는 빼놓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냄비 뚜껑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와 함께 밤의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냄새만으로도 밤을 잘 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엄마 한 그릇, 그리고 나 한 그릇 앞에 두고 수북이 쌓인 밤을 깠다. 갓 쪄낸 밤을 만지는 것조차 쉽지는 않았다. 작은 과도를 가지고 단단한 껍질을 하나하나 걷어냈다. 노란 빛의 알맹이가 드러났다. 튼실한 밤 알맹이였다.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흠잡을 데 없는 알맹이를 통째로 입에 넣어 보았다. 달고 부드러웠다. 파근파근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목이 메이지 않을 정도의 느낌마저 좋았다. 또 하나를 까고 다른 하나를 까보아도 벌레 흔적은 없고 매끈한 밤알갱이가 드러났다. 엄마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밤이었는지 속도를 내서 드셨다.

낯선 곳에서 우연하게 맞이하는 만남에 뜻밖의 좋은 결과를 낼 때가 가끔씩은 있다. 비싸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 있는 결과물을 맞이하고 나면 기쁨이 두 배일 때가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찐 밤이 거의 없어질 때쯤 미리 빼놓았던 날밤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프라이팬을 꺼내고 밤에 칼집을 몇 군데 넣었다. 나무 주각으로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껍질이 터지는 소리를 냈다. 노란 알맹이도 보였다. 다 익었다고 생각이 들쯤 불을 끄고 안방으로 향했다. 군밤을 보자 엄마도 좋아하셨다. 찐 밤과는 또다른 맛이었다. 물기가 적어 알맹이는 좀더 고소한 맛이 강했다. 군밤까지 다 먹고 나니 저녁 생각은 없어졌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밤맛을 제대로 경험하는 하루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횡단보도의 그 아주머니를 다시 찾아볼 생각이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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