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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 책VS책]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춤추는 조국

by 앰코인스토리.. 2022. 11. 16.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춤추는 조국

 

여러분은 고향이 어디세요? 고향은 보통 '태어나서 자란 곳'입니다.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없더라도 태어난 곳이면 고향이지요.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서 태어났으므로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의 다른 뜻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제 또래들은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어르신을 만나면, 눈치껏 아버지의 고향과 어머니의 고향이 어디인지 대답하곤 했어요. 고향의 또 다른 의미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동네’라고 노래를 부르면 고향은 꼭 그렇게 아련하고 아름다운 곳일 것 같습니다. 영어로도 고향은 홈타운(hometwon)이라고 해요. 고향은 어쩌면 내가 돌아갈 집이 있는 곳, 아버지든 어머니든 따뜻하게 반겨주는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조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조국은 나라나 국가와는 느낌이 참 다르지요? 사전에서는 조국을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혹은 ‘자기의 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라고 합니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나라가 아니더라도 나의 뿌리가 되는 나라, 혹은 나의 존재를 증명해줄 나라가 조국인 셈이지요. 그렇다면 나라가 없을 때 태어난 사람들의 조국은 어디일까요? 그리운 고향이 있는 곳이 조국일까요, 아니면 태어난 모국이 조국일까요. 고향과 조국이 다를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쪽을 조국이라고 선택해야 할까요. 심지어 조국이 나를 냉대할 때, 조국이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 때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재미있게도 영어로 조국(motherland)을 번역하면 ‘모국(motherland)’입니다. 영어로는 모국과 조국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고, 조국이 있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던 이 두 단어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만드는 책 두 권이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올랐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파친코」라는 두 책입니다.

 

아버지의 고향에서 발견한 ‘사램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창비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니, 제목 참, 마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의 인기에 발맞춰 제목을 정한 그저 그런 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시민 작가가 이 책을 ‘올해의 책’이라며 극찬한 후 주위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이 책을 언급하며 감탄해 마지않았지요. 얼마나 재미있길래 읽은 사람마다 침을 튀기며 칭찬을 하나 싶었습니다. 슬쩍 들춰본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는 ‘사램이 오죽하면’이라는 말에 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에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조국을 위해 싸웠던 유물론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가 죽은 뒤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3일 동안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인 시골 마을 장례식장에 모여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의 녹진한 삶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넘나듭니다. 현실주의자이자 도시에서 내려온 딸이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담담하게 서술하는 장례식장의 풍경은 웃프기 짝이 없습니다.

 

낄낄거리면서 한 장을 읽다가, 다음 장을 넘기면 눈물이 핑 돌았다가, 다시 눈물을 훔치며 박장대소를 하다가, 또 눈물이 나와서 코를 풀게 됩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마치 우리 아빠 같고, 엄마 같고, 삼촌 같고, 이모 같고, 언니 같고, 동생 같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등장인물들과 정이 담뿍 들게 됩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아버지의 고향에서 딸이 느끼는 생경한 감정들을 ‘항꾼에’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하염없이’ 살아가는 힘이 되실 듯합니다.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모국의 의미란

「파친코 1, 2」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인플루엔셜

이민진 작가는 재미교포이자 교포 1.5세대로 30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2017년 책이 출간된 후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BBC 같은 주요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최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에 올라 많은 사람이 수상을 기대하기도 했지요. 온갖 타이틀을 달고 있는 유명한 책이었건만 솔직히 재미교포가 쓴 재일교포 이야기가 그다지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 같았지요.

 

그러다가 애플TV에서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 <파친코>가 공개되었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동양인이 아니라 꼭 한국인이 출연하는 조건으로 드라마 제작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한국 배우들이 영도를 배경으로, 자갈치를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모습,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보면서 궁금해졌습니다. 왜 우리의 이야기 제목이 <파친코>여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당장 책을 읽었지요. ‘파친코’는 자이니치로 살면서 벗어날 수 없었던 굴레이자,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자이니치나 파친코는 더 이상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의 일부였습니다.

 

고향이란, 모국어란, 자이니치란, 조국이란 무엇일까요.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책의 첫 문장을 곱씹어 봅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우리의 삶 자체만큼 거대할 수 없지 않을까,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만큼 존엄하고 숭고한 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 함께 버텨낸 삶 하나하나가 바로 역사이고, 고향이고, 조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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