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서 잠깐잠깐 일을 봐줄 때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불현듯 옛날 생각들을 소환해주기 때문이다. 쌀을 안치기 위해 밥물을 맞추고 있는데 누군가가 쓱 하고 들어왔다. 맨 끝 방 남자였다. 오십 대 후반의 남자로, 점심을 위해 주방으로 들어오는 듯 보였다.
재빨리 밥솥을 들어 올려 전기밭솥 옆으로 가져갔다. 그가 요리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용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어 들었다. 순간, 나는 멈칫했다. 20여 년에 보는 물건 때문이었다. 바로 ‘옛날 소시지’였다. 어디서는 ‘분홍 소시지’라 부르기도 하는 그것이었다. 밥반찬으로는 최고의 음식이었던 그 소시지를 정말 오랜만에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감개무량할 정도였다. 무척 기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덩달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옛날 밥반찬으로 최고였고, 도시락 반찬에는 이보다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도시락을 서너 개 한꺼번에 싸야 했던 엄마의 고민도 한 방에 날려 보냈던 것이 바로 이 ‘옛날 소시지’였다. 길이가 길어 여러 개 도시락도 뚝딱이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엄마의 시름을 덜어주었으며, 요리도 간편했다. 달걀을 풀어 2~3cm 크기로 썬 소시지와 대파를 섞으면 되었다. 달걀물이 들은 소시지를 달궈진 프라이팬에 얹고 서너 번 뒤집고 나면 요리는 완성되었다. 달걀과 하모니가 그렇게 잘 맞는 음식이 없을 정도였다. 부드럽고 식감도 좋고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그 소시지는 정말 모두의 걱정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
“이 소시지가 아직도 나오네요.” “네, 저는 그냥 날것으로 먹는 것도 좋아해요.” 그리고 보니, 한참 이 소시지를 좋아했을 때는 간식 삼아 비닐을 벗기고 바로 먹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옛날 소시지’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 것이 고마워서였을까. 그는 스스럼없이 말문을 열고 한동안 소시지 찬양을 늘어놓았다.
그는 프라이팬에서 달궈진 소시지 하나를 넌지시 내밀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주는 음식을 마다할 수는 없어 건네주는 소시지를 바로 받아 들고 호호 불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오랜만에 한입 베어 문 소시지 맛이 나도 솔직히 궁금했다. 그 옛날 그 맛 그대로일까. 떨리는 마음에 눈을 감고 잠시 음미해 보았다. 그때 그 시절의 식감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소시지의 맛과 향이 참 정겨운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그 맛을 나는 다시 기억해 내었다. ‘그래, 이 맛이야!’
“정말 맛있네요. 저도 참 좋아했던 소시지였어요.” 그는 개선장군이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있었다. “가격은 어느 정도나 해요?” “크게 비싸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높은 가격은 아니었다. 비싸고 좋은 재료를 소시지들이 경쟁하듯 나오면서, 은근슬쩍 뒷방으로 물러나게 되었던 탓에 가격 인상률이 높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옛날 소시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는 이 맛을 잊지 못해 찾고 있다는 것이리라.
복고풍이라는 명목으로 뜨거운 인기를 구가했던 과자나 라면이 재등장하는 것을 비추어 볼 때, 옛날 소시지도 그 뜨거웠던 명성을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세월이 흐르고 지금보다도 더 먹거리가 풍성할지라도 어린 시절을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그 명맥만은 쭉 이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낯선 이와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짧지만 큰 행복을 얻은 느낌이 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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