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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싸리비

by 에디터's 2020. 12. 8.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연다. 차디찬 찬바람이 순식간에 방으로 밀려 들어온다. 한기를 느낄 만큼의 겨울바람이지만 머리는 맑아진다. 이불을 탈탈 털고 침대보를 깨끗한 수건으로 훔쳐낸다. 간밤에 쌓였던 나쁜 덩어리가 한꺼번에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해서 과연 얼마나 깨끗해질 수 있겠느냐 반문을 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저 뭔가 묵은 찌꺼기를 긁어내는 정도라면 만족한다.  
영하 10도 이하의 찬바람을 며칠 맛보고 나니 일어나자마자 창을 여는 것을 주저했지만, 오늘만은 아침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줄 정도의 순한 바람이었다. 여전히 밖은 어둡다.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한겨울의 전형적인 풍경이 아무런 소음 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10여 분 지나자 방의 공기가 순환되었다 싶어 문을 닫고 나니 하루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마음이 들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오랜만에 4층 계단을 쓸어볼 생각을 했다. 마스크를 끼고 장갑을 끼고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먼지와 얼룩, 그리고 때로 가득한 계단 하나하나를 쓸어내려 가자, 계단의 원래 색깔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단 오를 때는 몰랐지만 위에서 차곡차곡 쓸어내리고 보니 꽤 많은 쓰레기가 만들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이가 없다 보니 지나간 시간만큼 먼지와 때가 쌓여 있었나 보다. 깨끗해진 계단을 다시 밟아 올라가다 보니 마당이 생각이 났다.  

시골집이 다 그러하듯 마당 하나씩은 품고 있었다. 곤히 자고 있노라면 적막을 깨는 빗질 소리가 시작된다. 누군가가 하루를 시작한 것이다. 고요한 적막을 깨우는 그 소리는 사각사각 리듬을 타면서 한동안 계속되었다. 마당을 쓰는 것은 싸리비였다. 시내에 좋은 비도 많이 나와 있어서 돈 몇 푼 주면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한사코 싸리비를 고집하셨다. 한가로운 주말이면 아버지는 가까운 산에 가셨다. 한두 번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싸리나무였다. 잘 뻗어 있는 싸리나무 줄기를 골라 잘라내셨다. 많이 욕심을 내지 않으셨다. 싸리비 서너 개 분량만 얻으면 산에서 내려오셨다. 잘 마른 싸리나무를 엮은 후 위와 중간을 끈으로 잘 동여매면 빗자루가 뚝딱 완성되었다. 훌륭한 마당 비의 탄생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두세 번 왔다 갔다 왔을 뿐인데 주변이 깔끔해졌다. 왜 싸리비를 고집하는지 그때야 알게 되었다. 마루 옆에 두세 개 싸리비는 항상 자리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밥상머리에서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침의 시작은 비다. 묵은 어제와 결별을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비질로 시작해야 한다.”  

아버지의 그런 가르침이 각인되어서였을까. 지금도 아침이면 마당을 쓰는 심정으로 창을 열고 주변을 청소하는 것이다. 비록 싸리비를 만들어 앞마당을 쓸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고 자부한다. 다음 주는 일주일 내 영하권이라는 일기예보가 나와 있다. 창을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청소로 하루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싸리비의 교훈만은 가급적 실천하려 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