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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도너츠

by 앰코인스토리 - 2019. 11. 15.

 

전통시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간판도 없는 도너츠 가게가 있습니다. 마을버스가 지나는 2차선 도로와 접해 있다 보니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는 곳입니다. 하지만 도너츠 하면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를 떠올리고 사람들의 발길도 거기로 몰리는지라 아는 이들만 찾는 가게입니다. 

정오를 막 넘어가는 시간이 되면 안주인이 예쁘게 빚은 도너츠 모양을 들고나옵니다. 협소한 가게 안에는 도너츠를 구워낼 가마솥을 놓을 자리가 없어서였을까. 인도와 맞닿은 곳에 가마솥이 놓여 있습니다. 맑은 기름으로 가마솥 반을 채운 후, 주인장의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불을 만들면 하루 장사가 시작입니다. 하얀색 반죽이 가마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 무섭게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지글지글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정확한 시계가 없어도 안주인의 눈대중이면 금방 먹음직스러운 도너츠가 만들어집니다.
고운 빛깔의 도너츠들이 커다란 채로 끌어 올려지면 보기도 좋고 먹기도 도너츠로 8부 능선을 넘게 됩니다.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채만 보고 있어도 안주인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그대로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매번 같은 시간 도너츠 가게를 지나갈 때면 한두 명의 손님은 갓 만들어진 도너츠를 찾습니다. 안주인의 넉넉한 인심 속에 도너츠 가득 설탕을 묻혀내면 바로 한입을 베어 물 수 있는 도너츠가 완성입니다.
맛집이라면 많은 메뉴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처럼, 그 가게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도너츠와 꽈배기뿐입니다. 안주인께서는 손님들이 올 때마다 힘주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반죽은 내가 직접 만들어요.”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열다 보면 도너츠를 10여 번 튀겨낸다고 하니, 많은 양의 반죽을 만들어야 하기에 거기에 대한 자부심을 손님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겁니다.

시골의 늦가을은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온이 급하강했습니다. 그래서 저녁때가 되면 연탄을 때기 시작했습니다. 아랫목이 식는다며 엄마는 이불을 펼쳐 놓곤 하셨고, 그 온기를 이용해 늦가을 간식으로 도너츠를 만들어 주곤 하셨습니다. 방과 후 안방으로 들어서면 이불 위로 불쑥 솟은 것이 보이면 오늘 저녁에는 도너츠를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때도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빚은 반죽을 헌 옷으로 몇 번씩 동여매고 아랫목의 가장 좋은 자리에 놓아두곤 하셨습니다. 비록 모양은 예쁘지 않았어도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밴 도너츠는 참 맛이 있었습니다.
5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도너츠 가게 앞을 지나갑니다. 몇 번이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치고 반복했었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어머니의 도너츠와 견주어 보기 위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인상 좋은 안주인이 반가이 맞이해주었습니다. 구수한 인심과 정이 넘쳐나는 전통시장답게 하나를 덤으로 얻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져가는 데 불편하지 말라고 봉지를 하나 더 겹쳐준 덕에 따끈따끈한 도너츠를 집까지 무사히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나눠 먹는 도너츠. 물론 엄마표 도너츠와는 비교를 할 수 없지만, 주인장의 수십 년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은 그 맛은 일품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이 맛을 찾아 도너츠 가게에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